1. 진주종과 송아지
"배우고 생각해보니 그때 할머니가 앓았던 것이 진주종이었던 것 같아."
약사이신 아빠가 말했다. 오늘은 할머니의 기일이다. 작은 고모의 기일이기도 하지만 이 날은 보통 할머니에 대한 짧은 기억을 들을 수 있다. 올해는 아빠가 11살, 그러니까 아빠의 엄마가 돌아가시기 7년 전 찍은 사진 앞에 앉았다. 하얀 한복을 입은 할머니 옆에서 어린 아빠는 뭔가 우물우물 먹고 있다. 47년 전의 모습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아빠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나에게 아직도 생경하다.
"날이 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성냥 뒷 꽁지에 휴지를 갖다대로 귀 안을 계속 그적 그적 긁어내셨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매일을 그렇게 하셨거든. 그러면 그 휴지가 아빠 앞에 소복하게 쌓이던 게 기억이 나."
"너무 가난해서 저 때 누가 아빠한테 47년 후에 지금 아빠처럼 살 거라고 얘기하면 코웃음 치면서 미친놈이라고 했을 거야. 운동회 같은 거였는데, 누가 사진기를 가져올 생각을 안 하던 때지. 근데 이 날은 할머니가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거기 있던 사진사한테 돈을 내고 찍은 사진이야."
이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나는 절대 잊지 않고자 얼른 검색창에 진주종을 쳤다. 진주종에 대해서 좀 제대로 읽어보려는데 아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 아빠는 가톨릭 신자고 나에겐 수녀님이신 고모도 계신다. 기일에는 제사 대신 연도를 짧게 드리는데 그냥 성호경 긋고 짧은 글을 읽는 의식이라 준비부터 마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톨릭에서 중요한 의식이라 나도 앉아서 읽는다.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글이지만.
<그때에는 사람들이 송아지들을 당신 제단 위에 바치리이다.>
위령 기도문 시편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에게 이 문장은, 47년 전 할머니의 증상을 곱씹으며 홀로 진단을 내려보았을 아빠의 진주종 이야기의 감동이 순식간에 지워지는 순간일 뿐이었다. 감동이 끝나는 그 순간이 너무 선명한 나머지 맛으로도 느껴지고 그림으로도 그려졌다. 황당하고 허무한 감정이 느껴졌다. 연도가 끝난 후 나는 참을 수가 없어 말했다.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이 의식이 할머니 이야기의 감동을 한순간에 지워버리고 말아서 아쉽다고. 기일이 죽은 이를 생각하며 기억하는 날이라면 아빠의 이야기로 끝냈어야 했다고. 아빠는 이 의식이 아빠에게 중요한 것이고 아빠의 엄마 기일이니 자식으로서 내가 그냥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아빠가 내 모든 말과 행동에 동의하지 않아도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함께 해주는 것처럼.
가톨릭 연도는 나에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불멸성을 위한 부질없는 수단에 호소하는 의식일 뿐이지만, 아빠의 저 말은 맞는 말이었다.
2. 신부님의 코스모스
15살에 읽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행성 운동 궤도에 대한 케플러의 끈질긴 집착과 그 끝에 그가 얻어낸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열매에 대해 적은 부분은 아직도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한다. 이 책은 나에게 신앙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나에게 신앙이 본래 없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별생각 없이 부모님과 다니던 성당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성당은 나에게 행복한 기억이다. 따뜻함과 고요함이 좋고 갈색 공간 안으로 색을 바꾸며 들어오는 햇빛도 나쁘지 않다. 어릴 때 성당을 가면 미사 시간에 몰래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성당 건물 뒤 혹은 계단과 계단 사이에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혼자 숨어서 노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수녀님이나 신부님과 눈이 마주치면 나는 못 본 척했고 그분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성당을 다니지 않는 지금도 나는 크리스마스가 좋다.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우고 있는데, 처음 배운 세곡이 전부 캐럴이다. 여름에 나는 여름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다. 성당을 다녔던 이유는 신앙이 아니라 그게 나의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나는 어딜 가든 코스모스 이야기만 꺼냈었다. 특히 성당에서 그랬다. 책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잘 기억을 나지 않지만, 그때 잠시 성당에서 친해진 언니들이 있어 그 언니들의 권유에 따라 주임신부님을 만나보기로 했다. 의심 가득한 여자아이를 구원해주고 싶었을까? 그날 신부님이 지내는 작은 방에서 나눈 짧은 이야기는 지금껏 변치 않는 나의 가치관을 만들었다.
그 두꺼운 책 하나가 충분한 칼과 방패인 듯 자신만만하게 들고 갔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작은 악마처럼 나는 신부님 앞에 그 책을 턱 내려놓고 무작정 이 말부터 꺼냈다.
"이 책을 읽고도 신을 믿을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
노란 머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그 신부님은 뭔가 인자함 그득한 미소로 허세 넘치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칼과 방패를 힘없이 녹여버린 그 미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신학교 다닐 때 이 책 배웠어요. 이거 말고도 이런저런 과학, 철학책 다 읽고 배웠던 게 생각나요. 그때 학생들 많이 믿음을 잃고 나갔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이 원래 학생의 반은 됐으려나? 나는 이 책을 읽고 신앙심이 더 깊어져서 사제가 됐어요."
신부님 앞에 앉아있던 자신만만한 여자아이는 안쓰럽게도 말문이 막혔다. 책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그 책으로 사제가 된 사람과 남쪽에는 같은 책으로 성당을 떠날 준비를 마친 사람이 앉아있었다. 둘 사이 미묘한 긴장감을 아랑곳하지 않고 30년 가까이 나이를 먹은(당시) 이 책은 가만히 존재할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니까 빅뱅 이후 우리 인간의 존재에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마치 가느다란 실 위를 커다란 공이 균형을 맞추고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복잡한 우연을 만드는 건 신일 수밖에 없다.' 나한테는 이 책이 신에 대한 명백한 증거였어요."
"우연은 신이 익명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아인슈타인의 말과 함께 내 머릿속에는 순간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커다란 태양과 같은 공이 암흑과 같은 시공에서 하얀 실을 태연히 굴러가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코스모스처럼 어떤 책은 개인의 신념을 가리지 않고 친밀하고 중요한 말을 전한다.
3. 무명의 그리스도인
목사이신 아빠의 친구분께서 우리 집을 찾아온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미 수년 전 신부님과의 대화 이후 종교에 대한 무분별한 반감이나 혐오가 많이 사그라든 상태로 과학과 철학 책 읽는 것에 빠져있을 때였다. 정확히 내 나이가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20대 초반쯤이었을까.
그분은 믿음이 없는 나에 대해 이미 들었을 것이다. 그분이 나에게 했던 말은 이뿐이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쉬운 길을 택한 거지. 어려운 길을 길게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거고. 내 입장에서 그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 [무명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평생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왔지만 이 급진적 가톨릭 신학 이론을 나는 이날 처음 듣게 되었고, 이는 가톨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몇 안 되는 뼈대 중 하나로 남아 몇 년 전 이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짧게 전시를 했다.
<무명의 그리스도인, 느린 여행자들>, 2018
4. 신의 초상화
시리즈 이름을 고민 끝에 <신의 초상화>로 정했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글이라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어쩌면 계실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의미는 뒤에 더 적을 것이다. 내가 이 시리즈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까지 살면서 듣고 보고 겪어왔던 과학과 종교의 줄다리기 게임에 대한 글이다. 칼 세이건과 노란 머리 신부님 덕분에 어린 시절 추억 이상으로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커졌다. 그리고 수년간 다양한 종교의 신자와 비신자들을 만나 인터뷰해왔고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부족하지만 이제는 나의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아 하나씩 적을 생각이다. 전공자도 아닌데 감히 이런 글을 쓰려니 매우 큰 부담과 걱정이 마음을 누른다. 그래도 쓰고 싶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쓸 것이다. 글을 읽는 분들 중 혹시 이 분야에 대한 학식이 뛰어나신 분이 계시다면 "이 친구가 <과학적 사고를 하면 과학자, 철학적 사고를 하면 철학자>라는 마음으로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적당히 정리하려고 노력했구나"하고 너그럽게 넘어가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