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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Nov 26. 2024

아직 손에 잡힐 듯한 꿈은 아니지만..

편하게 쓰는 글

33살 여성입니다. 한국에 2013년도에 돌아와서 약 12년을 지냈어요. 그전에 외국 생활을 조금 했고요. 영어를 잘 하니까 한국에서 어린 아이들부터 고등학생 아이들까지 과외를 했어요. 굉장히 오랜 기간을 했는데, 집중적으로 이 일만 한 것은 한 3년 정도인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작가로서 소소하게 활동하면서 투잡 식으로 했으니까요.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얼마나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정말 존재 자체만으로 너무 소중해요. 아이들의 사랑과 믿음을 얻어야 수입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일을 10년 넘게 하며 저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본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일을 하니 공감 능력과 소통 능력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도 10년이 넘으니 약간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제 원래 꿈은 미술, 글 작가였으니까요. 언젠가부터 부업이었던 수업이 주수입을 주는 일이 되고, 제 원래 꿈은 잃어버리고 살아온 듯합니다. 마지막 3년 정도는 과외 수업만으로 한 달에 500만 원 넘게 벌었지만, 그럴수록 이게 아닌데, 잘못하다가 이게 나의 평생 인생이 되려나, 내가 그걸 원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2022년 수업을 줄이자는 생각을 하고 모든 걸 멈췄습니다. 별 계획도 없이요.


아이들이랑 작별 인사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와 5~6년 넘게 했던 아이들이나, 초등학생 때 만나서 고3 수능을 앞둔 시기까지 함께 했던 학생들은 제가 이제 수업을 관둔다고 하니 "선생님, 정말 행복하고 건강하셔야 돼요."라고 마지막 인사하는데 진짜 눈물나더라고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달라고 저를 잡는 아이들은 결국 놓지 못하고 올해까지도 수업을 했습니다. 두세 명이긴 했지만요.


저는 미국에서 좋은 미술 대학을 다녔지만, 학비에 현타가 와서 마치지 않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돈을 벌기 시작하니 딱히 학위에 대한 욕심이나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렇게 대학 중퇴 상태로 살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학위를 따고 싶어서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이번 학기에 졸업이에요. 그래도 성적을 잘 받아놔서, 새로운 삶을 꿈꿀 때 대학원도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꼭 이민은 아니더라도,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요즘에 특히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가장 큰 것은 결혼과 출산. 사실 저는 한국에서 그걸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잘 그려지지가 않아요. 제 친구들 중 결혼을 한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그마저도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은 모두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저는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인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20대를 보내고 나니 결혼하지 않아도 그 친구들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타지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이에요. 나와 똑같이 검은 머리와 밝은 피부를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저는 익명이 되지 못하고, 어딜 가나 느껴지는 외모 강박 주의와 극심한 경쟁 사회, 참 견디기가 어려워요. 외국 생활을 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단순하고 피상적이지만 그런 익명성 획득으로 느낄 수 있던 자유로움이었어요. 약간의 불안함이 동반된, 그래서 더 생생한 그 자유로움이요.


최근에 부모님 친구 아들이 호주로 떠나버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냥, 호주 여행을 갔는데, 너무 좋았고, 여기서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대요. 부모님께 말했고, 흔쾌히 허락하셔서 그냥 떠났대요. 그 친구는 나이가 적당해서 워킹 홀리데이로 갔고, 가서 몇 개월 있어보니 너무 좋아서 워홀이 끝난 뒤에도 계속 있고자 준비 중이래요. 처음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저도 그냥 그렇게 떠날 걸 그랬나 봐요. 2년 전에 수업을 관둘 때, 약한 마음으로 '몇몇 아이 조금만 더 수업해 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떠날 걸 그랬나봐요. 그 때는 워홀이 가능한 국가들도 남아있을 수 있었을텐데.


스트레스를 받으니 소리에 예민해져요. 제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모든 소리에 코티솔이 올라가는 느낌이 팍팍 들어요.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 평소와 다름없이 짖는데도 제가 혼 내게 돼요. 아이가 주눅 드는 걸 보니 죄책감이 드네요. 너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이곳을 못 견디고 있는 건데. 너무 미안하다.


매달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지방에 내려가요. 그렇게 한지도 3년이 되어가네요. 프리랜서인 유일한 손자니까, 너무 보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안마해 드리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한 일주일 있다 와요. 별거 아닌데 그렇게 하면 효손 타이틀도 얻고요. 한국을 떠날까 고민했을 때 가장 걸렸던 부분인데, 이제는 그조차도 저의 마음을 막지 못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2년 전에 떠나고 싶다 생각했을 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거든요. 두 분이 저를 붙잡을 걸 알고, 가고 싶어도 그런 저런 이유로 안 갈 것을 아니까요. 지금 눈물이 나는 건,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럼 저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지 않을까 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벌써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별할 마음에 눈물이 나는 거예요.


미혼에, 33살, 프리랜서에, 사회학 전공자. 대학원이 아니고는 떠날 수 있긴 할까? 고민이 많아요. 방법이 잘 보이지는 않아요. 이 이야기를 했더니 외국 사는 친구들과 조언자분들이 다 결혼하는 방법이 제일 현실적이지 않겠냐 그래요. ㅋㅋㅋ 그건 쉽니? ㅋㅋ



어쨌든, 심란하고 붕 뜨는 마음잡지 못하고 일단 내년 초, 3개월 동안 유럽을 가기로 했어요. 원래는 3월 말에 볼로냐에 있을 아동도서전을 가고자 1년 전에 계획했던 여행이었는데, 최대한으로 늘려서 가려고요. 체코 프라하와 포르투갈 리스본에 한 달간 살기로 했어요. 나머지 국가들은 1주, 2주 정도로 있어야 하고요. 다른 일정 때문에 가는 거니까..


오래전부터 저의 꿈의 도시였어서 그냥 큰 고민 없이 선택했어요. 12년 만에 다시 살아보는 외국 어떨지 궁금해요. 그간 여행은 다녔지만, 길어야 2주 정도였으니까, 다르지 않을까요?


지금 가장 큰 두려움은, 그렇게 3개월 다녀온 뒤 "이제 됐다. 한동안 이 기억으로 살 수 있겠다." 하는 충족감에 떠나고자 하는 마음의 탄력을 또 잃어버릴까 봐 그게 두려워요. 그럼 저는 또 그렇게 12년을 여기서 살아내버리지 않을까? 45살이 되어서 다시 떠나고 싶으면 그때의 나는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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