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보호자가 되었다.
짙은 안갯속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던 내 인생의 한 달 반이 있었다.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나름의 힘든 일도 잘 겪어냈다 생각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좀 더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안정된 삶을 위해,
소소한 행복을 찾기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항상 아등바등 살아야 했고, 그렇게 살고 있었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나날의 연속이었는데 사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수술, 뇌경색, 중환자실 이 단어들이 아빠 옆에 붙을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4월 첫째 주 거짓말 같이 아빠의 호칭은 '환자'로 변했으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수식어들이 붙기 시작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단어들이 들리고, 단어가 주는 위압감에 마음 졸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모든 게 처음이라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다가, 어느 날은 눌러둔 마음의 둑이 터져버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일상을 반복했다. 늘 가장 크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는데 평생 본 적 없는 낯선 표정과 얼굴들은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부모님과 나,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역할이 바뀌는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어렴풋 짐작하고 있었지만,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막상 오니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한 내가 얼마나 어린애처럼 살아왔는지 다시 돌아보게 됐다. 뱉어내는 말들을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조차 오로지 우리를 향한 걱정만 담겨있는 마음을 감히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돈을 더 벌기 위해 머리 아프게 고민하며 살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생기고, 어딘가에 헌신하고, 행복을 찾기 위해 쉼 없이 탐색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교하며 사는 삶. 저절로 모든 것에 겸손해지는 순간들이 오면 무용지물인 것을 느끼고 체감했던 그 순간들을 잊지 않고자, 이렇게 기억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