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오전 9시 30분까지는 기상해서, 10시까지 정신을 차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새벽엔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다. 가슴 졸이는 승부차기와 메시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까지 다 보고 나서야 잠이 들었던 나는 아침에 눈치 없이 울려대는 알람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아, 이걸 괜히 한다고 했던 걸까? 미루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미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 다닐 때나, 출근을 할 때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살고 남는 시간만 쓰면 됐는데, 막상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 되자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고 생활 계획표를 그리기로 했다. 거창하진 않지만 매일 놓치지 않고 할 것, 그리고 그날 하고 싶은 일은 아침에 정해서 공유하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던 것을 데일리 루틴으로 만들었다. 책 읽기와 운동, 다이어리 쓰는 것은 놓치지 않고자 다짐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생활 계획표
- 오전 9시 30분 기상
- 오전 10시 ~ 오후 12시 : 데일리 투두리스트 정리, 독서 30분 이상, 영어 원서 2쪽 읽기
- 오후 2시 ~오후 6시 : 데일리 투두 실행하기
- 오후 8시 운동하기
- 오후 9시 ~ 오후 12시 : 유튜브 보기, 다이어리 쓰기, 넷플 보기 등
정말 대략적인 계획이었고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하고 최대한 맞춰서 살기로 다짐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도 코어 힘을 기르고, 그 힘으로 운동 방법을 터득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며 스스로에 대한 코어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리가 받은 미션지는 간단했다.
- 오늘의 기분, 내가 해온 일, 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등등
- 내가 좋아하는 것
- 내가 싫어하는 것
- 회사를 다니면서 하지 못했던 것
- 하고 싶은 것
- 먹고 싶은 것
- 배우고 싶은 것
정말 평범해 보이지만 의외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모르겠는 게 나인 기분이었다. 본인 스스로를 정의하고 답변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 내가 뭘 먹고 싶더라? 생각하는 것에 꽤나 많은 시간을 소요했을 정도였으니 수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동안 왜 '나'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별할 건 없지만 매일의 기록이 나름 의미가 있어 정리해 본다. 매일 단톡에 주고받았던 투두리스트!
12월 19일 : 포스팅 글감 정리하기, 독서 20분, 영어원서 구매하기 + 북클립 구매 갓생을 위한 첫날이니 가볍게 시작 그리고 회사를 다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계속 미뤄두었던 허리디스크 치료도 꾸준히 받기로 다짐하고 한의원 출석을 함께 시작했다.
첫 주에는 티스토리 블로그 키우기에 대한 의지가 넘쳐서 글 쓰는 방법을 찾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콘텐츠 생성해 낸다는 재미가 있어서 나름 알찼던 한 주!
모든 프로젝트에는 회고가 필요하고, 회고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멤버들이었기에 우리는 한 차수씩 끝낼 때마다 구글 미트를 통해 얼굴을 보며 회고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 멤버가 결성되고 다 같이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단톡방에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 보는 멤버도 있었지만 낯선 느낌이 아니어서 신기했다.
1차 회고를 하며 특별한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유지되는 이유에 걸맞게 다들 하루가 알차게 느껴진다는 공통된 공감대를 형성했다. 나머지 두 명의 멤버는 열심히 구직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서 찐 백수처럼 노는 것은 나밖에 없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각자의 답변을 공유했는데, 사실 나는 그때까지 미션지에 대답하지 못한 항목들이 몇 개 있었다. 처음 미션지를 받아 들었을 때부터 고민이 되었지만 이게 싫어한다고 할만한 게 맞나? 좋아하는 것의 범주는 뭐지? 등등 이런 생각으로 쉽사리 써 내려가지 못했다. 그러나 짧은 미팅 후 공유 된 다른 멤버들의 답변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었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 나만 또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말 그대로 정답 없는 질문들이었고 어쩌면 정답은 나만 아는 그런 질문들이었는데도 질문의 의도가 뭘까를 곱씹으며 정답을 찾아가고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을 비워내기로 다짐했으면서도 이런 질문에서조차 완벽을 찾고 있던 모습이 우스웠다. 그리고 멤버들의 답변을 보고 생각을 비워낼 수 있었고, 거침없이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만약 이런 공유의 자리가 없었다면 다른 사람의 답변이 궁금해도 절대 알 수 없었을 거고, 난 계속해서 심플한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갇혔을 것 같다. 역시 회고와 공유란 생각을 확장하게 만드는구나를 느끼며 백수 1주 차 마무리!
첫 시작부터 잘 살아냈었으니 앞으로의 일정도 꾸준하게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