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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an 27. 2023

꿈은 없고요,
그냥 일하고 싶습니다.

내가 일하는 목적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싫어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꿈이 뭐야? 하고 싶은 일이 뭐야? 그 일 왜 하는 거야?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질문이겠지만 나한텐 너무나 숙제같이 느껴졌던 질문이었다. 남들이 거창한 목표와 답변을 쏟아낼 때 나는 "그냥"이라는 말 밖에 되뇌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남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열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일쑤였다. 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걸까, 왜 남들처럼 지금의 일이 동기부여가 아닌 것일까 하는 자책도 많이 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잘못 됐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위축되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는 것이 내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목표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충분했으니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더 심해졌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일을 하는 이유가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았고, (물론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5년, 10년 후의 미래까지 생각해 일을 하며, 지금의 순간들을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한 번씩 1on1을 하게 될 때면, 상사는 내게 "앞으로 뭐 하고 싶으세요?"라고 종종 물어봤었는데 그때마다 우물쭈물하게 되는 것도 너무 싫었다. 이런 고민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다 보니 나의 답답증을 유발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고, 취업 준비에 재당면하게 되니 더 큰 고민이 되었다. 이런 고민을 혼자 간직하던 중, 선배를 만나 고민을 털어놨는데 이런 답을 얻었다. 



"세상엔 생각보다 '그냥' 무언가를 시작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그거 엄청 대단한 거야"






목적이 뚜렷해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해 보면 시작의 목적이 없이 일단 했던 것 같다. '그냥' 주어졌으니까 특별한 목표나 기대치가 없이 일단 하는 거고, 나에게 주어진 일이니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완벽하고 싶었다. 이런 성향과 목적성을 결합해 생각의 전환을 하다 보니 그냥 이게 나라는 사람이었던 것뿐이다.


1. 내적, 외적의 동기부여 없이도 무엇이든 일단 한다.

2. 생각보다 그냥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한다.

3. 주어진 일을 '잘'하고 싶어서 최소한의 결과물이 완료인 사람이다.

4. 어떠한 일에도 기복 없이 묵묵히 한다.

5. 완료하기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6. 완료하는 동안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배워나가고 극복하는 사람이다.

7. 책임감으로 더 나은 것을 위해 과정 속에서 목적을 찾는다.

8. 과정 속에서 탐구하고 배워가며 셀프 리더십을 발휘한다. 


시작하는데서 이유를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는 끝맺음의 이유를 찾으며 완료선을 따라가고 있던 것이다. 어떤 시작점의 이유가 있든 없든 나는 그저 일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 않았을까. 결국 조직에서는 최우선적으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고, 완료해내면 되는 것이지 그 안에서의 셀프 동기부여가 무엇이든 일을 하는 목적성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현실에서는 상사가 지시한 일을 맡아서 처리하다가(Must), 경험을 쌓는 동안 잘하는 일이 생긴다(Can). 그 일로 인해 성과와 인정이 쌓이면 내가 하고 싶은 일(Will)과 마주하게 된다. … 

… 마치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군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어도 괜찮다.


이 대목을 마주하자마자 저절로 심장이 뛰었는데, 내가 하고 있던 고민과 생각들에 대한 지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학생 때부터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해야 되는 일만 착실히 수행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미션을 받아왔으니 늘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일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부분이고, 그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일의 순서가 달랐을 뿐인 건데 왜 꼭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나는 아직도 Must의 일을 묵묵히 '그냥' 하고 있을 뿐이고, 그 안에서 Can이 쌓여가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결과의 목적을 향해 걸어간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남의 Will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함정에만 빠지지 않고 과정 속에서 목적을 찾으며 묵묵히 지금처럼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긴 인생의 끝에서 진정한 일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아직도 Will을 찾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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