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얼그레이 마들렌
특히나 힘든 한 주였다.
Nine to six. 키보드만 타닥타닥 울리는 사무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3시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아웃룩을 보니 처리해야 할 메일 그새 또 쌓였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숨을 쉬었던가? 갑자기 내 주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고 헐레벌떡 달려온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이 어떤 조직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칼퇴를 하고 베이킹을 해야지.
가리비 모양의 마들렌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중과 인내가 필요하다. 반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물들을 레시피대로 정확하게 그램 단위까지 측정하여 나열한 후 하나하나씩 믹싱 볼에 부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미리 재료들을 준비하지 않고 그때그때 준비하다 보면 동선이 엉켜 더 오랜 시간을 반죽을 만드는 데에 소비하게 된다. 게다가 그램 수를 모두 재고 한 번에 믹싱 볼에 재료들을 넣으면 엉켜왔던 머릿속이 풀리는 시원한 느낌도 느낄 수 있다. 레시피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녹인 버터에 얼그레이 티백을 우려내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는 우쭐한 감정도 재미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렇게 하는 레시피들이 무궁무진했지만)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쌀쌀한 밤, 창 밖은 어두운데 부엌에서 나는 버터와 홍차 향이 기분이 좋다. 파우더 슈가, 박력분, 계란, 버터, 얼그레이 티백으로 이루어진 반죽이 반죽기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면 나는 나로서도 완전하구나 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음식을 하는 동안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9시부터 6시까지의 회사에 있는 시간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집중한 결과는 그저 나름의 보람과 월급으로 돌아오지만 나의 노력이 온전히 보상해 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퇴근을 하고 요리를 하자고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 집중을 할 때 나는 숨을 쉬고 있다. 게다가 요리에 투자한 일분, 일초가 내 뱃속으로 들어온다는 만족감과 '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하는 성취감이 합쳐져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분명 힘들었던 한 주였는데... 마들렌을 만들 때 식감을 더 잘 잡아주기 위해 꿀 10g을 넣는다. 앞으로의 요리들이 하루하루를 잡아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