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하고 싶어 지는 영화 속 패션과 손민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
영화 속 패션은 시대별 패션 유행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다양한 예술 작품에게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많은 이들의 로망이 되곤 한다.
개봉한 지 30년 가까이 된 영화 <레옹> 속 레옹과 마틸다 스타일은 각 캐릭터 이름이 붙은 스타일로 수많은 패러디, 오마주를 양산하고 <레옹>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레옹 스타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아이코닉한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 외에도 디자이너 지방시가 의상에 참여한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오드리 헵번의 블랙 드레스 스타일, 영화 제목 자체가 옷 스타일 이름이 되어버린 <사브리나> 등이 영화와 패션의 교집합이 완벽할 때 일으키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요즘 들어 자주 언급되는 영화 <클루리스> 속 90년대 프레피룩과 하이틴 패션이나, 혹은 패션 영화하면 열 중 아홉은 가장 먼저 꼽지 않을까 싶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앤 해서웨이 변신 장면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많은 이들에게 잊히지 않는 패션 스타일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영화 이외에도 <섹스 앤 더 시티>, <귀여운 여인> 같은 유명 패션 영화들은 많지만 위 영화들에 비해서 패션으로는 덜 유명할지라도 유난히 콱 내 마음속에 박혀버린 영화 속 패션이 있다.
아니 이 옷을? 왜 굳이? 싶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양껏 담아 꼽아본 내가 따라 입고 싶은 영화 속 패션, 그리고 이들을 손민수하기 위해 애썼던 TMI가 담긴 내 이야기.
<킬 유어 달링> 데인 드한의 헤링본 코트
6년 전, 영화관에서 <킬유어달링>을 보고 난 뒤 영화관에 나와 내가 가장 먼저 검색했던 것은
"데인드한 헤링본 코트"였다. 2시간 남짓한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맴 돌던, 데인드한이 검정 풀오버에 자주색 컬러의 스카프와 함께 대충 걸쳤던 저 헤링본 오버사이즈 코트.
<킬 유어 달링> 은 1940년대 미국, 비트 세대 (Beat Generation) 문학가들의 대학 시절을 담은 영화로 그들의 친구이자 영감이자 뮤즈가 돼었던 루시엔 카를 연기한 데인드한이 입은 저 헤링본 코트는 루시엔 카의 퇴폐미와 시대상을 완벽히 표현해준다블라블라발라랍ㄹ라 개뿔, 쓸데없는 설명은 필요 없고 그냥 정말 예뻤다.
영화를 본 뒤 저 코트와 똑같은 코트를 사기 위해 미친 듯이 구글링을 했지만 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기 때문에 따로 제작된 의상일게 뻔해 내가 살 수 있는 기성복일 리는 만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사실 확인은 안됐지만 이 코트는 당시 2014 s/s 프라다의 캠페인 모델을 하고 있던 데인드한을 위해 프라다가 만들어준 프라다 코트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 얘기를 듣자 똑같은 코트를 사겠다는 마음은 단숨에 접어버렸고 가질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이 헤링본 코트는 나의 엄청난 위시리스트 + 로망이 돼버렸다. 세상에 나와있는 헤링본 코트는 많지만 데인드한이 입고 있는 저런 색감과 적당히 빈티지하고 적당히 따뜻한 톤의 너무 자잘 자잘하지 않은 스케일의 헤링본 패턴을 가진 코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오버사이즈나 레트로 무드가 유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하기는 더 힘들었다.
그러다 2년쯤 흐른 뒤, 영국에 체류할 당시 가을 옷을 사기 위해 들어갔던 런던의 한 빈티지샵에서 남성복 코너를 구경하던 중 저것과 진짜 89% 유사한 헤링본 코트를 발견했다. 기장감과 작은 디테일들은 다르지만 헤링본 무늬가 진짜 딱 데인드한이 입었던 것처럼 웜한 갈색빛이 돌고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롱 헤링본 코트가 남성복 코너에 딱 걸려있었다. 몇 년간 꿈에 그리던, 상상 속 유니콘 같았던 코트를 발견해 감격하며 바로 착용해봤다. 하지만 그땐 지금만큼의 오버사이즈가 유행했던 게 아니라 남성복 코트라서 어쩔 수 없이 내 몸엔 과하게 넓은 어깨와 + 당시엔 너무 어색했던 종아리 덮는 긴 기장은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영국의 추운 날씨와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두께와 까끌거림 없는 원단이 너무 완벽해 구매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빈티지인데도 300파운드가량 하는 그 가격은 한 푼 한 푼이 아쉬웠던 당시 나에게는(aka 거지) 무리인 금액이라 아쉽지만 포기했었다.
하지만 <킬 유어 달링>을 다시 보거나, 겨울 대비용 코트를 찾아 헤맬 때나, 그 코트보다 훨씬 못생긴 헤링본 코트를 볼 때마다 늘 내가 놓친 런던에서의 그 코트 생각에 눈물이 난다..... 살면서 그만큼 데인드한 코트랑 비슷한 헤링본 코트를 만나긴 힘들 거다... 런던에서 그 코트를 안 산 나에게 데인드한 코트를 구할 방법은 <킬 유어 달링> 의상팀 창고를 터는 방법밖에 없을 거란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늘 아프다. 그리고 그땐 부담스러울 정도로 오버사이즈였지만 아빠 옷 같은 오버사이즈 아우터가 유행하는 지금 입는다면 그만큼 예쁠 코트는 없을 거란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그리하여 난 이번 겨울에도 이와 비슷한 코트를 찾아 헤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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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라이즈 줄리 델피의 슬립 드레스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영화 <비포선라이즈>
로맨스 영화의 고전이자 인스타 갬성피플들의 갬성 영화로 많이 언급되지만 클래식이란 괜히 클래식이 아닌 것. Before Sunrise, 기차에서 처음 만난 남녀 두 주인공이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일어나는 일들이 담은 영화기 때문에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단벌신사다. 그중에서 여주인공인 셀린을 연기한 줄리델피가 영화 내내 입고 다니는 저 갈색 슬립 드레스. 분명 <비포선라이즈>는 패션으로 많은 언급이 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90년대 중반이란 영화 속 시대와 분위기, 그리고 서사를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저 빈티지한 색감의 갈색 드레스는 나에겐 그 어떤 영화 속 패션보다 아이코닉한 패션이다. 제시와 셀린이 기차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스쿱넥의 반팔 티와 슬립 드레스를 함께 입은 것도 좋지만 (첫 번째 사진) 둘이 같이 밤을 보낸 뒤 레이어드 티셔츠 없이 드레스만 입고 빈티지한 색감의 오버사이즈 체크 셔츠를 허리에 두른 저 모습을 정말 사랑한다 (두 번째 사진). 게다가 저 땋은 머리는 내가 제시여도 반할 수밖에 없을법한 아름다운 모습.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여행할 때 주인공들이 갔던 카페, LP 서점, 공원 등을 돌아다니며 자체 <비포선라이즈> 성지순례 투어를 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줄리델피처럼 갈색 슬립 드레스를 입고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이후 비포선라이즈 같은 일이 한번 일어난 적이 있었다.
혼자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던 중, 마르세이유에서 니스로 가는 아주 조용한 기차 안이었다. 그 날 내가 탔던 기차는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 급행열차처럼 마주 보고 앉는 의자 칸마다 미닫이 문이 달려있는 8-90년대 영화에서 많이 볼법한 옛날식 기차였다. 그곳에 앉아 몇 시간 뒤면 도착할 니스 숙소 예약을 점검하고 있는데 탑승할 때 지나쳤던 옆칸에 있던 젊은 남자가 내 칸으로 오며 정중하게 이 칸에 앉아도 되냐 물었고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했다. 미국인인 그 남자는 나와 똑같이 마르세이유에서 니스로 가는 중이라 했고 나에게 미국인스러운? 이런저런 스몰톡을 걸기 시작했다. 마침 혼자 여행하며 심심했던 차에 서로의 문화나 여행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이동 시간을 덜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 남자는 니스 도착하면 같이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고 마침 니스에서 큰 일정도, 계획도 없던 나는 늦은 저녁 도착한 니스의 시내 한 레스토랑 야외테이블에서 그 남자와 식사를 했었다. 늦여름의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에서 너무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완벽한 밤 날씨에, 앞에는 기차에서 만난 대화가 잘 통하는 낯선 남자. 텍스트만 보면 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이는 뭐든지 즉흥적으로 이뤄졌던 내 여행에서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어줬다.
그 남자는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고 미국인이라는 것과 영어를 쓴다는 점 이외에는 <비포선라이즈>의 에단호크, 제시와는 1도 공통점이 없었기에 정말 밥만 맛있게 먹고 헤어졌지만 (저스트 후렌드)
나의 최애 영화와 기차, 여행, 낯선 사람, 프랑스 같은 이런 키워드들이 일치한다는 경험이 생겼다는게 그냥 기분이 좋았었다. 아마 그때 셀린과 비슷한 슬립 드레스까지 입고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는 아주 큰 착각과 과몰입에 빠질 수도 있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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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 마크 주커버그의 파자마 로브
세번째는 페이스북 창업 스토리를 담은 영화 <소셜네트워크>에서 마크 주커버그 역할을 한 제시 아이젠버그가 입고 나온 이 파자마 룩이다. 이 룩은 자신의 사업 파트너인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에게 과거 망신을 줬던 투자자를 만나러 가면서 입었던 옷이다. 무서운 성장세를 기록하던 초기 페이스북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투자자에게 숀 파커 대신 복수하기 위해 “늦잠을 자서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리고 숀 파커가 너 엿 먹으래요”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가는, 어쩐지 굉장히 신난 마크 주커버그가 긴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뉴욕 고층 빌딩으로 들어간다. 정말 잠깐 지나가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제시 아이젠버그의 모습은 옆을 지나는 행인들의 오피스룩과 더욱 대조되는데, 이 장면은 영화 맥락과 상관없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다. <소셜네트워크>는 절대 패션 영화도, 패션을 참고할 만한 영화도 아닌 하버드 공대생의 전형적인 너드룩만 가득한 영화이지만 이 장면을 본 이후로 나는 "나도 마크 주커버그 같은 파자마 로브를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심어졌다.
잠과 부다페스트
때는 n년 전 혼자서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3주 정도는 호텔, 카우치서핑, 한인민박만 쓰느라 한 번도 호스텔 도미토리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부다페스트에서 난생처음으로 호스텔 도미토리를 쓰게 됐는데 그곳은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한 파티 호스텔이었다. 전날 급하게 예약했던 다른 호스텔이 풀 부킹이라 쫓겨난 뒤 어쩌다 보니 가게 된 곳이었지만 정말 재밌는 파티를 할 수 있다는 후기가 가득하기에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정말 나에게 운이 안 따라줬는지 체크인하고 ATM에서 잠깐 돈 뽑으러 간 사이 호스텔에 있던 인원들 모두 선상 파티를 하러 떠나버렸고 나는....... 텅 빈 호스텔에 혼자 남게 되었다. 파티 못 간 서러움과 그 날 온천을 하고 와서 노곤 노곤해진 몸 때문에 그 날은 정말 일찍 잠에 들었었다.
그러다가 새벽 2시쯤, 방에서 헐리우드 영화를 틀어놓았는지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방은 6인 혼성 도미토리실이었고 2층 침대가 두 개, 1인용 침대가 두 개가 있는 방이었는데 새벽에 어떤 개념 없는 같은 방 게스트 중 하나가 이어폰도 안 끼고 영화를 보는구나 싶어 불만이 가득한 채로 뒤척이며 깨어났다. 그때 나는 두 개의 1인용 침대 중 하나를 쓰고 있었고 또 다른 1인용 침대와의 거리는 두 발자국 정도였다. 하지만 누가 틀어놓은 건 줄 알았던 헐리우드 영화 속 끈적한 베드신 사운드는 알고 보니, 내 바로 옆 침대에서 들리는 리얼 사운드였고, 어두운 방, 달빛 아래, 옆 침대 위에는 남녀 둘의 실루엣이 엉켜있었다.
당시에 안경 없으면 초점이 안맞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마이너스 난시 시력이긴 했지만 겨우 두 발자국 떨어져 있는 바로 옆 침대는 꽤 가까웠고 그 둘이 이불을 반쯤 덮은 채 나누는 그들의 키스, 스킨십, 전희, 체위, 그 외의 모든 섹스 과정을 나는 옆에서 실시간으로 관람/청취 해야 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이들을 말려주길 바랐지만 같은 방을 쓰는 나머지 게스트들은 아직 열심히 파티 중인지 나머지 2층 침대 두 개는 텅텅 비어있는 상태였고 그 방에는 오직 뜨거운 밤을 보내는 그 두 사람과 나뿐이었다.... 지금이었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가 퍼블릭 룸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했을 테지만 그 당시 20대 초반 애기였던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못 본척하며 이 상황이 꿈이길 바랐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라이브 섹스쇼 공연이 이뤄지기도 한다는데 가장 싼 티켓값이 50유로라고 들은 적이 있다. 공짜로 50유로가 넘는 공연을 나는 VIP석에서 본 셈이니 감사해야 할지, 즐거워해야 할지. 그날은 정말 혼란스러웠다. 뜨거운 밤을 보낸 그 커플이 지쳐 잠든 걸 보고난 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이 상황을 공유한 뒤 혼란스러운 마음을 붙잡고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여자의 친구들이 우르르 방으로 몰려와?? 기타 치고???그 여자의 이름에 노랫말을 넣어 부르며???? 잠을 깨우는 뮤지컬 같은 장면을 연출하면서 여자를 데려갔고???상반신 탈의 상태로 혼자 남은 옆 침대의 주인인 남자는 어쩐지 나에게 엄청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잠에 들었다.???? 대환장.
이렇게 내 생애 첫 호스텔이었던 부다페스트 호스텔에서 대환장 하룻밤을 보내고 피폐해지고 상처 받은 영혼을 쇼핑으로 달래고자 했다. 그렇게 들어간 호스텔 근처의 한 빈티지샵에 헝가리 돈으로 2000원밖에 안 하는 체크무늬 파자마 로브를 발견했다. 그 빈티지 로브는 영화 속 마크 주커버그가 투자자를 엿 먹이러 갈 때 입은 로브와 90% 정도 일치했고 말도안되게 싼 가격과 영화 속 싱크로율에 반해 바로 사버렸다.
이 에피소드 이외에도 사실 부다페스트에선 호스텔과 잠 관련 해프닝이 몇가지 더 있었다. 그리하여 마가 꼈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정말 혼란스럽고 이상한 일 투성이었지만이 곳에서 샀던 <소셜네트워크> 로브는 부다페스트 여행 중 유일하게 나에게 위로가 돼준 아이템이었다. 그러고 약 한달 뒤 이 로브는 그리스의 한 섬의 바닷가 노숙을 할 때 바닷바람을 막는데 아주 요긴하게 썼다는 비하인드도 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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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타임> 레드 웨딩드레스와 블루 수트
<비포 선라이즈>처럼 많은 이들에게 인생 로맨스 영화로 많이 소환되는 영화 <어바웃타임>
영화 속 레이첼 맥아담스의 사랑스러운 비주얼 덕에 예뻐 보이는 영화 속 패션이 참 많지만 역시나 가장 인상 깊은 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웨딩씬 속 남녀 주인공의 웨딩드레스와 웨딩 수트다.
전형적인 흰색 레이스 웨딩드레스와, 검정색 턱시도 패션이 아니라 좋기도 했지만 이 영화 속 패션이 더 마음 깊이 남았던 것은 이 결혼식 그 자체였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신랑 신부가 등장하고, 화창하고 새들이 지저귀고 꽃이 만발한 날씨의 완벽한 결혼식이 아닌, 신랑 아버지의 취향이 분명한 오래된 노래에 맞춰 걸어 들어오는 신부. 그리고 신랑 신부가 입고 있는 레드 컬러의 드레스와 스틸블루 컬러의 수트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조합. 그럼에도 그 둘의 표정은 여느 신랑 신부와 다름없이 행복해 보였다. 결혼식 후 열린 야외 피로연에서는 날씨 때문에 하객들의 모자가 날아가고 천막은 무너지며 물벼락을 맞으면서 완벽한 결혼식과는 더더욱 멀어져만 갔지만 그 누구도 화내거나 속상한 기색 없이 도리어 웃기만 한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비에 드레스가 쫄딱 젖어버려도, 애써 만들어놓은 피로연이 엉망이 되어버렸어도 그저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벽한 결혼식.
내가 가진 결혼에 대한 로망은 이제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 영화 덕분에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여전히 건재한다. 비록 영화지만 정말 행복해 보이는 주인공들 때문에 결혼식 속 이 레드 드레스와 블루 슈트 조합은 내 결혼식 때 꼭 따라 해보고 싶은 그런 옷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BH2w4ECi0
영화 속 패션이란 주제로 시작했지만 어쩐지 여행 썰이 더 길어져버린 이번 글.
못다 한 여행 썰은 또 다른 글에서 더 풀기로 하고,
다음 글에는 셀린과 에디슬리먼에 관한 이야기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를 중심으로 한 디올 3탄을 쓰려고한다
혹시 이처럼 본인의 취향이 잔뜩 담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패션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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