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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준 Apr 05. 2017

최고의 BI 디자인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지금만큼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았으리라. 한 입 베어 문 흔적. 사소해 보이는 그것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흔적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애플의 BI 디자인을 보고 아이작 뉴턴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아마도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만유인력의 법칙 수준으로 위대하게 평가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애플 최초의 BI 디자인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과 악의 지식을 알게 한 아담의 선악과를 떠올리는 사람도, 젊은 히피 잡스가 사과농장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프로그래머는 컴퓨터 공학의 선구자, 앨런 튜링 Alan Turing을 떠올렸을 것이다. 튜링은 시안화칼륨을 주사한 사과를 베어 물고 죽었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떠올렸든 간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애플의 BI 디자인을 자기 나름의 받아들이기 가장 좋은 형태로 마음에 새겼다. 스스로 새긴 것은 남이 새긴 것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롭 제노프 Rob Janoff가 그걸 알고 디자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CI든 BI든 간에 핵심은 아이덴티티 Identity다.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직관적인 디자인이 좋은 BI 디자인이라 여기기 쉽다. B2B 사업을 한다면 그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B2C라면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기억에 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직관적이면 단순하니까 더 기억에 잘 남지 않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이것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영어학습만큼 좋은 비유가 없을 것 같다.


영어 단어 외울 때를 생각해보자. 가장 직관적인 것은 단어와 뜻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영어 단어를 그런 식으로 외우지 않는다. 단어와 뜻 사이에 암기를 돕기 위한 무언가를 추가로 집어넣는다. 그림일 수도 있고 언어 유희일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벽에 알파벳 학습 포스터가 붙어있을 것이다. 알파벳 O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보라. 아마 O는 문어 머리 위에 그려져 있을 것이고, Octopus라는 설명이 곁들여 있을 것이다. 이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아마 Fatigue라는 단어를 이런 식으로 외울지도 모른다.


Fatigue 피곤 패티그, 패티김 할머니는 피곤해.


이런 방식은 영어를 언어로 체득하는 것에는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기억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뇌의 입장에서 사소한 모든 디테일을 기억하는 것은 낭비다. 기억하기 쉬운 특징을 잡아야 하는데 알파벳은 너무 직관적이라 특징이 안 잡히니 그림이나 언어유희를 넣어 기억하는 것이다. BI 디자인의 목적을 정체성의 시각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지만 고객에게 기억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최고의 BI 디자인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그 그림을 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연상된다.


심벌로 되어있으며 소비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하기 쉬운 디자인이 최고의 BI 디자인이다. 이렇게 창조된 BI 디자인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쉽게 변경되어서는 안 되지만 필요한 시점이 되면 꼭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의 핵심은 기존의 디자인에서 복잡한 요소를 제거해내는 것이다. 다음 그림을 보면 어떤 요소를 제거해야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제거했는지 보이는가? 모든 기업의 BI 디자인이 이런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최종적으로는 심벌만 있는 디자인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무턱대고 심벌만 그려서는 안 된다. 심벌과 브랜드 네임을 함께 매치시켜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심벌만 남기는 게 좋은 것일까?


햄버거, 커피, 자동차 같은 일반 명사를 보거나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버거킹, 스타벅스, 아우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의 뇌 속 햄버거 카테고리 첫 번째 포지션에는 버거킹이 있는 것이다.


기업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 첫 번째 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해 전략을 짠다. 그것을 포지셔닝 전략이라 한다. 포지셔닝 전략의 궁극적 목표는 자사의 브랜드가 일반 명사를 대체하는 것이다. 한때 미국에서는 게임을 닌텐도라 불렀다. 근래 러시아에서는 컵라면을 도시락(팔도 도시락 라면)이라 부른다. 이런 경우를 브랜드가 일반 명사를 대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브랜드가 첫 번째 포지션을 차지하거나 일반 명사를 대체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때가 BI 디자인에서 브랜드 네임은 빠지고 심벌만 남아야 할 시점이다.


심벌만 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브랜드 네임이 있을 때 그 브랜드는 그 제품의 아이덴티티로 머문다. 브랜드 네임이 사라지면 그 브랜드는 제품을 떠나 고객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커피의 아이덴티티였던 스타벅스가 당신의 아이덴티티인 스타벅스로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심벌을 보고 자부심과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안드로이드가 제품의 정체성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객 입장에서 안드로이드는 갤럭시에 탑재된 운영체제일 뿐이다.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제품을 아무리 자주 사용해도 안드로이드 브랜드가 삶 가운데 들어올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갤럭시는 알아도 안드로이드는 잘 모른다.


애플 심벌을 보고 자부심과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은 많다. 속된 말로 그들은 한국에서 앱등이라 불린다. 애플 브랜드는 맥북과 아이폰의 정체성이었다. 맥북과 아이폰이 많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을 때, 브랜드 네임이 없는 애플 심벌은 자연스럽게 앱등이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되었다.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사람은 이름이 가지는 중요도와 의미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고, 제품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고, 그 제품을 사용할 사람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심벌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과 힘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무관심해도 좋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BI 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Do you see a man skilled in his work? He will serve before kings; he will not serve before obscure men." - Proverbs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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