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좀스럽게 못난 짓을 하는 사람을 ‘좀팽이’라고 부른다. 좀팽이... 좀 낯설다. 좀팽이보다는 ‘쫄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쫄보 같으니, 쫄보 주제에...라는 말로 상대방을 낮춰서 부르는 걸 보면 어감이 좋아 보이지는 않네. 간혹 쫄보 같은 행동을 해서 주변 사람이 웃기도 하고, 쫄보 같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해서 혼자 울기도 한다.
쫄보 같은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웃게 한 적이 있다. 혹시 스카이워크에서 걸어본 적이 있는가? 바다 위를 걷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우리나라에는 스카이워크로 유명한 관광지가 몇 군데 있는데, 부산 오륙도에 있는 스카이워크도 포함된다. 절벽 끝에서 바다 쪽으로 유리로 만든 길이 쭉 뻗어 나간다.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초입에 들어서면 우선 다리부터 떨리고 심장이 쫄깃하다. 흘깃 아래를 내려다보면 파도가 발밑에서 출렁인다. 빙글빙글 어지럽다.
무의식적으로 손잡이를 잡게 되고 어깨는 구부정해지고 무릎은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 뭐 그렇게 쫄보 같이 행동하느냐며 지인들은 웃었지만, 나에게 스카이워크는 출렁다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에게는 단단하게 고정된 바닥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자꾸만 꿀렁꿀렁 상하로 움직이는 듯하다. 왜 여기 올라와서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한심스럽다가도 풍광에 빠져들고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당당하게 걸어도 되는데 괜히 졸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겪어보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생각지도 못한 현실에 부딪힐 때 쫄보 같은 마음이 삐져나올 때가 있다. 상상하던 모습일지 몰라서, 혹은 상상하던 모습 그 이상일지 몰라서 나 같은 쫄보는 일단 뒤로 주춤한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니까. 어쩌면 무서움과 두려움보다 당장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감당해야 할 현실을 회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회피하는 시간만큼 고통의 시간은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하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점은 경험이 쌓여서 현실 파악이 빨라진다는 사실이다. 어느 것은 회피하는 게 낫고 어느 것은 빨리 처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선다. 사람 사이에 감정이 뒤죽박죽 섞인 일은 웬만하면 회피하는 게 낫고, 해야 할 숙제는 눈으로 미루지 않고 손을 이용해서 후딱 시작하는 것이 낫다. 물론 내 경험에 의존해서 하는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힘든 점은 좀스러운 마음이 감당해야 할 책임감으로 덧씌워져서 뻔뻔함으로 발현되어야 할 때다. 속으로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떨리지만 겉으로는 대범한 척 행동한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힘든 수술을 끝낸 환자의 모습 앞에서 내 마음에 가면을 씌운다. 쫄보의 마음을 숨긴다. 어쩌면 어른은 그래야 하니까.
스카이워크에 처음 섰을 때 쫄보 같은 행동을 들켰지만 뭐 어떤가. 주변 사람과 한번 웃고 나면 그만이다. 피하고 싶은 현실 앞에서 쫄보 같은 마음을 들키면 또 어떤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아는 것도, 고통스러운 마음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잖은가.
힘들면 주변에 털어놔도 괜찮다. 쫄보면 어떤가. 마치 가면을 쓴 사기꾼처럼 행동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이를 먹는 어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한테 하는 말이고, 너한테 하는 말이다. 좀팽이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