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타는 여여사 Nov 11. 2020

갈림길에서

관계 이야기

갈림길에 섰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나뭇잎과 줄기에 색색가지 꼬리표를 붙여놔서 등산로 정도는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꼬리표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일단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3명만 모이면 그중에 리더가 생긴다고 하더니, 한 명이 이곳저곳 둘러본 후 왼쪽 방향을 가리킨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던 눈은 리더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서야 점차 안정을 찾았다.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고, 몇 발자국 더 갔더니 나뭇가지에 매달린 붉은색 꼬리표도 보였다.  

    

갈림길에 섰다. 섰다기보다 천천히 자동차의 속도를 줄였다는 말이 맞겠다. 내비게이션 기계음은 ‘잠시 후 우회전’이라는데, 좌측으로 먼저 꺾었다가 우회전인지 지금 바로 우회전인지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다. 길치와 방향치를 섞어 놓은 내가 운전하느라 고생이 참 많네.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뒤차는 연신 빵빵댔다. 하긴, 나한테나 짧은 시간이지 뒤차는 앞에서 뭐 하고 있나 싶었을지도 모르지. 에잇! 일단 우측으로 자동차 핸들을 꺾었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이런! 좌측으로 꺾고 바로 우측으로 꺾어야 되는 거였어. 좀 돌아가지 뭐, 시간도 많은데. 


요즘 갈림길에 설 때가 자주 있다. 산행을 할 때는 리더가 있었고, 운전을 할 때는 내비게이션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산으로!’라고 외치는 리더도 없고, 경로 이탈을 막아주는 내비게이션도 없다. 딱 부러지게 결론이 나는 갈림길이라면 결정하기도 쉬울 텐데, 긴가민가 하는 일들은 판단을 내리고 결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네. 갈림길에 서서 방황하는 나를 순간 이동시켜 편안한 곳으로 옮겨주고 싶은데, 나한테는 아직 그럴 능력이 없구나.


다시 그 산에 간다면 리더 없이 등산로를 찾을 수 있을지, 다시 그 도로에 들어선다면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다.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하는 일도 경험치가 쌓일수록 쉬워지고 정확도 역시 높아지는 법이겠지. 남이 내린 판단에 숟가락 살짝 얹어서 무임승차한 일들은 결국에는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해서 내 몸에 근육으로 꽉꽉 박아놔야 진짜 내가 한 일이 되는 듯하다.       

 

갈림길을 마주하면 무의식적으로 주변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강했는데, 알고 보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은 격이었다. 리더도 없고 내비게이션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미리 치밀하게 조사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일단 맨땅에 부딪쳐 본다. 기다려봤자 누가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답도 없으니 내가 하게 되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게 사람이라지만, 나란 인간도 참 간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달래 ver1.4 : 다른 의미의 간호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