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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Nov 10. 2020

진달래 ver1.4 : 다른 의미의 간호견

일상 이야기

종이 신문을 뒤적거리면 관심사가 아니더라도 눈으로 쓱 기사를 훑게 되는데, 인터넷 뉴스는 내 관심사를 귀신같이 찾아준다. 종이 신문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아파트 엘리베이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구청에서 나눠준 무료 신문을 본 적은 있는데, 언론사에서 발행되는 종이 신문을 본 지는 꽤 오래됐네. 관심 있는 뉴스를 검색하는 것만도 시간이 빠듯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여행이나 스포츠 관련 뉴스는 매일 찾는 편이고, 연예 뉴스는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클릭하게 시선을 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정치와 경제 뉴스를 읽게 된다는데, 정치 뉴스는 참 개판이고 경제 뉴스는 참 암울하다. 읽을수록 머리만 지끈거려서 그런지 취향과 취미에 맞는 뉴스만 골라서 읽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둘러싼 관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관심 있는 뉴스를 클릭하듯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자주 만나게 되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근황을 궁금해한다. 친구 엄마가 무릎 수술을 했다고 하면 어느 병원인지 묻게 되고, 뇌수술을 했다고 하면 집도한 의사를 묻게 된다. 친구가 당뇨 약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오만가지 상황을 알려주면서 오지랖을 떨 때도 있다. 너나 병원 좀 가라면서 곧장 타박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고 하면 더 신경이 쓰이는데, 그래서인지 진달래 할머니 얘기도 쉽게 흘려들을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진달래 할머니는 병원 생활을 오래 하신 듯하다. 매일 병원을 가 볼 수 없는 사장님은 전화 통화로 할머니의 상태를 체크하신단다. 혹시나 급한 수술을 해야 하면 할머니가 먹은 음식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 통화 내용은 음식 이야기로 채워질 때가 많단다.       


뭐 먹었냐고 물어보면 뭐 먹었다고 끝나지 않으려나. 반복되는 병원 생활에서 모자지간의 대화가 얼마나 이어질까 싶다. 사장님은 궁여지책 끝에 진달래를 출동시킨다고 한다. 진달래의 낑낑 대는 ASMR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윤활유가 될 때도 있고, 할머니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될 때도 있다.  


할머니는 얼마 전에 응급 수술을 했는데 큰 고비를 넘기고 회복 단계에 있다고 했다. 예상했던 것과 할머니의 상태가 달랐는지, 사장님은 급히 수술실 안으로 불려 가서 의사의 설명까지 들었다고 했다. 복부를 절개하고 누워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다녀오는 느낌이려나. 안 해도 되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는 사장님의 글에서 착잡함이 읽혔다.        


평소에도 진달래의 역할이 컸는데, 이번에는 진달래의 역할이 더 커질 듯하다. 사장님이 얼마나 곰살 맞을지는 몰라도 진달래가 내뿜는 기운 역시 할머니에게는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레트리버(Retriever)는 시각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안내견으로 훈련되는데, 진달래는 할머니의 병원 생활을 돕는 안내견 역할뿐만 아니라 ASMR 신호를 보내 간호까지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을지도 모르겠다.



역할이 많아졌으니 진달래는 사장님에게 당당하게 간식을 더 요구해도 될 듯하다. 돌아서면 배가 고파지는 청춘 아니던가. 사장님은 다른 걱정은 접어두고 진달래 입맛에 맞는 간식을 충분히 사놓을 걱정만 했으면 좋겠다.


위기 상황에서는 경험한 만큼 자연스럽게 대처 능력도 커질 테니, 세상에 안 해도 되는 경험은 없을 듯하다. 종이 신문을 뒤적이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터지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는 게 더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나 역시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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