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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Nov 07. 2020

아주 예쁜 인형

일상 이야기

마트료시카(Matryoshka). 이름은 낯설어도 막상 인형을 보면 ‘아~!’ 탄식이 새어 나올 것이다. 인형 안에 인형, 그 인형 안에 또 인형... 알을 깨고 나오는 박혁거세도 아니면서 6~7개의 인형이 계속 얼굴을 내민다. 얼핏 보면 다 같아 보이지만 한 줄로 세워놓으면 같은 얼굴이 없고 같은 포즈가 없다. 모두 제각각이다.      


마트료시카는 대부분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는데, 목각 인형에 새기느라 그런지 색감도 진하다. 멀리서 인형을 봤을 때도 이목구비가 뚜렷해야 하니까 가까이에서 보면 약간 과장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무대 화장을 진하게 한 뮤지컬 배우를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랄까. 꼭 사람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는 돼지코가 귀여운 마트료시카가 등장하잖아.       


마트료시카를 처음 보면 신기함 자체다. 인형 안에 인형이 숨겨져 있다고 누가 생각할까. 게다가 큰 인형은 그렇다 쳐도 맨 마지막까지 남은 인형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섬세한 기술과 정성이 보태져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인형의 크기가 작을수록 얼굴을 그릴 때나 꽃무늬를 그릴 때 정교함이 요구되는데, 이걸 보고 장인의 솜씨인지 공장에서 양산된 제품인지를 판가름할 수 있다.     

 

인형을 살 때 맨 마지막까지 열어서 하나하나 확인해볼까 싶긴 한데, 그래도 제일 작은 인형까지 확인해보길 권한다. 제일 큰 인형의 모습을 보고 맨 마지막 인형의 퀄리티도 비슷하리라 유추하는데, 가격이 저렴한 마트료시카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짝짝이 눈으로 변하기도 하니까. 제일 큰 인형의 화려하고 예쁜 모습만 보고 사람들이 사게 되잖아.       


관광지에서 파는 마트료시카는 대부분 공장 제품인데, 하나하나 벗기다 보니 마치 사람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예뻤다가 벗겨내면 낼수록 대충 하려는 심보가 보이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겠지. 처음에는 아주 예쁜 인형의 모습으로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덜 칠해진 모습까지 보이게 되니까. 초심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이병헌은 마트료시카 속에 자신의 진심을 넣었다. 큰 인형을 하나만 벗기고 편지를 넣었지만, 진심을 담은 그 인형은 제일 마지막까지 예쁘게 칠해져 있으리라. 화면에서 다 보이지 않았지만 제일 마지막 인형의 돼지코는 누가 봐도 돼지코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기를 바란다.

     

마트료시카를 본 조카는 계속 늘어나는 일 같다고 했다. 지 딴에는 한다고 하는데도 계속 늘어나는 공부 같은가 보다. 늘어나는 개수만큼 참...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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