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를 하던 선생님의 손이 삐끗하더니 손톱으로 칠판을 긁었다.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그 소리에 소름이 돋아 ‘꺄악! 악!’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은 미안하다며 바로 사과를 했지만, 짓궂은 선생님은 오히려 이쪽 칠판에서 저쪽 칠판까지 대각선으로 칠판 긁는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학교에는 참 싸이코 같은 선생님들이 많았어.
끼익... 칠판을 긁는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기분 나쁜 소리는 본능적으로 피하기 마련이다. 대나무 숲 사이를 통과하는 공허한 바람 소리, 늦가을 낙엽을 밟는 바스락대는 소리, 종이의 질감을 타고 사각거리는 글씨 쓰는 소리 등 세상에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소리가 많으니까. 편안한 소리는 뇌를 자극해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나에게 맞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 소리로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이 주위에는 꽤 많이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일을 할 때는 빗소리나 피아노 연주 소리, 바람 소리 등을 켜놓기도 하고, 늦은 밤에는 과자 먹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들으면서 본다고 해야 정확한 건가. 여하튼 마이크에 바싹 입을 대고 바삭바삭 과자 먹는 소리를 내는 유튜버를 보면 십중팔구 편의점으로 가서 좋아하는 과자를 사게 된다. 알면서도 이런 영상을 찾아서 듣게 되는 심리를 알 수가 없네. 자연의 소리가 힐링의 소리라면, 과자 먹는 소리는 힐링과 더불어 살도 찌게 한다.
먹방 유튜버는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소리를 만들어내지만, 오직 한 사람이 좋아할 만한 소리를 만드는 동물이 있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5살 암컷 진달래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에게서 6장의 턱받이를 받은 진달래는 ASMR을 선물한단다. 정성을 담은 턱받이를 날름 받지 않았다고 하니 예의가 있는 여사님이군.
우걱우걱 밥 먹는 소리, 달리고 나서 헉헉대는 소리,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낑낑대는 소리 등을 할머니에게 들려준다고 했다. 진달래가 내는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또는 상황에 맞게 연출하기 위해 업체 사장님은 꽤 진땀을 흘렸을 듯하다. 녹음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진달래가 ‘여기 있소!’ 하면서 소리를 내는 건 아닐 테니.
몸이 아픈 할머니는 녹음된 진달래의 소리를 들으면서 위로와 웃음을 얻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은 늘 진달래 곁에 있을 테니까. 내가 들었으면 ‘이거 뭐지?’ 했을 소리라도 할머니가 들으면 진달래가 기쁜지, 아픈지, 업체 사장님에게 구박을 받고 있는지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색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좋아하는 소리도 다를 것이다. 당신에게 위로와 웃음을 줄 수 있는 소리가 있는가? 딱히 떠오르지 않으면 나의 소리를 녹음해 보는 건 어떤가. 따스한 위로의 말도 좋고, 힘을 내라는 격려의 말도 좋고, 이도 저도 아니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알고 보면 우리는 늘 타인의 소리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으니 한 번쯤은 스스로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