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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26. 2020

진달래 ver1.2

일상 이야기

얼마 전에 진달래에 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아! 혹시나 해서 말인데, 5살 암컷 진달래 이야기가 주요 포인트였다. 업체와 일한 지는 두 달이 조금 못됐는데, 요즘 일이란 게 대부분 온라인이나 전화로 이루어져서 내가 업체를 찾아갈 일도, 업체에서 나를 찾아올 일도 드물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과 전화 통화도 한 번만 했고, 아직까지 사장님 얼굴도 모르네. 사장님 얼굴은 모르지만 어찌하다 보니 진달래 얼굴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본 셈이다. 게다가 사장님과 얘기를 하다 보면 대화 중에 꼭 진달래가 끼어 들어온다. 사장님 머릿속은 온통 진달래로 뒤덮여 있어서 그런가.      

 

업무 얘기 끝에 두 장의 사진을 또 받았다. ‘또’라고 하는 건 먼저 보내달라고 한 게 아니라 사장님이 신나서 보냈기에 하는 말이다. 오랜만에 친구 안부를 물었는데 친구가 딸의 사진을 여러 장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다지 예쁜 얼굴이 아닌데 대전에서 최고 미인이라며 너스레 떠는 친구를 보는 기분이랄까. 하긴, 요즘 반려동물의 입양과 양육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간간히 진달래의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지구에는 많은 생명체가 숨 쉬면서 공존하고 있으니 나 말고 다른 생명체의 일상을 엿보는 취미가 생긴지도 모르겠네.   

       

한 장의 제목은 ‘복면개왕’이다. 양쪽 귀만 남겨두고 일회용 용기로 얼굴 전체를 가렸다. 생각보다 얼굴이 작은데? 계란형 얼굴인가? 아니지. 개는 사람보다 좀 더 입체적으로 생겼으니 주둥이를 쭉 넣으면 얼굴이 다 가려질 법도 하다. 너저분하게 종이가 흩어져 있는 걸 보니 벌써 한 게임한 듯하다. 사장님이 일회용 밥을 주지는 않았을 테니, 다 먹은 용기 통에 코를 박고 혼자 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달래가 5살이라고 했는데, 사람으로 따지면 대략 35살쯤 되나? 돈 안 드는 취미생활을 가진 청춘일세.  

      

다른 한 장의 제목은 ‘달래는 배달 중’이다. 길에 버려진 박스를 입에 물었는데, 하필 다 먹고 버린 피자 박스다. 자투리 시간에는 쿠팡 이츠 도보 배달 알바를 뛴다는 사장님의 설명에 한참 웃었다. 30분 안에 배달되는지 물어볼 걸. 박스에서 음식물 냄새가 나니 진달래가 덥석 물었겠지. 사람들아!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본인이 가져온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가라! 안 그러면 진달래가 늦은 밤까지 청소해야 하잖아.

      

진달래 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지난 글에 다 쓰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다. 사장님 취향대로 보자기를 씌운 거 아니냐며 타박했던 턱받이는 할머니가 한 땀 한 땀 만들어주신 정성이 담긴 물건이었다. 여든이 넘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6개나 만들어서 보내셨다며, 사장님은 대화 중에 말줄임표를 여러 개 넣었다. 눈에 보이는 사진만 보고 가볍게 쓴 글인데, 사진 너머에 가슴 먹먹한 기억까지 담겨 있을 줄은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눈에 보이는 게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숨겨진 스토리까지 듣고 사진을 다시 봤는데, 어쩜 이렇게나 진달래에게 안성맞춤인 보자기인지. 딱이다, 딱! 그나저나 6개나 되는 턱받이를 받고 진달래와 사장님은 할머니에게 어떤 선물을 했을지 궁금하네. 날름 받지는 않았을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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