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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Nov 03. 2020

2% 부족할 때

관계 이야기

대학생 때 학생 과외를 여러 번 했다. 중학생한테는 영어, 수학을 가르쳤고, 고등학생한테는 수학을 가르쳤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과외는 대학생 알바로는 시급이 꽤 높은 편이다.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리고 학생 부모님과의 면담이 어색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니 차츰 적응했다. 학생 성적에 따라 과외 기간이 좌우됐지만, 그래도 1년에 한두 명씩은 가르쳤던 듯하다.      


과외비는 선불이었다. 돈을 지불하는 쪽은 대부분 학생 어머니였고, 돈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수다가 이어졌다. 성적에 대한 얘기도 하고, 학생의 성격에 대한 얘기도 하다가 마지막에는 늘 이런 말로 끝맺음을 했다.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2% 노력이 부족해요.』     


좋겠다. 머리 나쁜 나는 노력이라도 해야 겨우 원하는 것을 얻고만. 이 과외도 아파트마다 돌아다니면서 전단지를 수십 장 붙여 겨우 한 군데 전화 온 건데 말이다. 2% 노력만 더하면 지금보다 성적이 오를 텐데 그 노력을 안 한다며, 학생 어머니는 나에게 한탄 섞인 넋두리를 했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학생과 단둘이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시간만 때우다가 가라는 막가파 학생도 있었지만, 열심히 하는 학생도 분명 있었다. 2% 노력이 부족하다는 학생도 98%의 노력을 하고 있는 건데, ‘내가 열심히 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나를 지켜보는 것’은 그만큼 차이가 컸다.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미치겠어요.』     


대학생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어리지 않았나.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미치겠다는 학생에게 좀 더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를 수 있다며 앞이 보이지 않는 목표를 제시해 줬던 듯하다. 2% 노력이 부족하다는 학생의 부모님과 나는 다를 바 없었다. 돌이켜 보니 성적을 올려주는 과외 선생도, 그렇다고 학생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언니나 누나도 아니었네.    

   

프로야구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마어마한 강도의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늘 혹사 논란이 따르지만 정작 혹독한 훈련 기간을 거친 선수들은 그 당시가 행복했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몸 여기저기가 아팠고, 수천 번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살인지 굳은살인지 알 수 없는 상처들로 범벅이 됐지만, 김성근 감독에게 고맙다고 했다. 극한의 고통을 참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에게도 더 노력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2% 부족하면 안 되나. 100%를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잣대를 통과하지 못하면 왜 노력하지 않았다고 쉽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98% 노력을 다했을 수도, 2%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는데, 세상은 너무 야박하다. 해도 안 되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잖아.      

 

삐질삐질 땀까지 흘리며 일했는데 상대방은 내 노력이 부족하다며 더 하라고 했다. 제기랄.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고 빈 공간을 메웠더니, 그것 보라며, 노력하면 결국 다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꾸역꾸역’과 ‘2% 노력’이 같은 말인지 오늘에서야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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