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내내 모은 조각들을 겹쳤다
누아무띠에의 집들은 대부분 울타리에 집주인의 성을 써놓고 있었다. 할아버지 댁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다른 집과의 차이라면 솔직하게 진짜 성을 적지 않고 다니엘의 성과 비슷한 누아무띠에 감자의 품종 이름(La Bonnotte: 누아무띠에 특산품은 천일염과 감자인데, 감자는 발효시킨 해초를 비료로 주고 있어서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삶기만 해도 정말 맛있었다. 다니엘의 사촌도 집에 갈 적에 두 박스를 사서 차에 싣고 올라갔는데, 우리는 누아무띠에를 지난 후 가야 할 길이 멀어서 감자를 사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누아무띠에 섬에 간다면 감자를 꼭 드셔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을 울타리에 써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런 유머 감각이 참 좋았다.
여행을 하면서 나의 한국인 다움을 확인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첫 번째 순간은 누아무띠에에서 보낸 세 번째 날에 찾아왔다. 이날은 비가 왔고 하루 종일 쌀쌀했다. 물론 햇살이 없어서 바다도 차가웠다. 물 밖이 19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니엘과 함께 다니엘이 어릴 적 사촌들과 자주 찾았던 해변을 갔는데 부두 끝에서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 다이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뒤로 재주를 넘으면서 뛰어내리기도 했고, 기술 백화점이었다. 한 사람이 다섯 번이나 뛰어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멍하니 '그래서 저걸 왜 멈추지도 않고 하는 거야? 건강에 좋은가?'라고 했다. 물론 나도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재미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았지만 마치 붉은 신에 홀린 사람처럼 그저 다이빙만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니 혹시 재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서 한 말이었다. 다니엘은 긴 말을 하지 않고 '와우 우리 여자친구 정말 한국 사람이구나..'라고 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한국인 모먼트가 아니라 꼰대 모먼트 아니었나 조금 걱정스럽다.
누아무띠에에서 보낸 이튿날 나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전날 저녁에 과음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했던 사태였기 때문에 숙취 약을 이미 챙겨왔다. 새벽에 숙취 약을 먹고 팔다리를 주무르니 좀 살만해졌다. 내가 과음한 그날 저녁 할머니는 거미게 수프를 내주셨는데, 그 거미게 수프는 게를 통째로 갈아 넣은 것인지 엄마가 만들어준 4일 묵은 꽃게탕 맛이 났다. 꽃게탕은 며칠 끓이다 보면 연한 배쪽 껍질이 국물에 녹아 나서 더 단맛이 나고 가끔 그 녹아 나온 게 껍데기의 일부가 씹히기도 하니까. 거미게 수프에서 씹히는 아주 작은 게 껍데기가 엄마의 꽃게탕을 떠올리게 했다. 벌써 오래 만나지 못한 엄마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날 뻔했는데 다음날 숙취에 허우적대며 여쭤보니 할머니가 주신 수프는 슈퍼마켓에서 사 오신 거라고 했다. '나라가,,,달라도,,,손맛은 통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전날의 술 냄새 나는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던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이다. 슈퍼마켓에서 판다고 해서 사람이 손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니까.. 취한 나의 지구촌 손맛 대통합 설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날씨를 확인했을 땐 누아무띠에에서 머무는 3일 내내 비가 올 거라고 했기 때문에 나나 다니엘이나 조금 슬펐는데, 하루를 제외하면 이틀 다 맑았다.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섬이라 날씨가 꽤 변덕스럽다고 하셨다.
다니엘의 어린 조카는 한창 왜? 시즌을 겪고 있었다. 무엇을 보아도 결국 왜냐고 묻고 마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혼자서만 생수를 마시고 있는-나는 석회물을 마시면 장트러블이 생긴다-내 모습은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었고... 다니엘의 사촌은 식사 시간 동안 몇 번이나 내가 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지에 관해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종조카, 종질녀)에서나 영어(대부분 Nephew/Niece 드물게 First cousin once removed) 와는 달리 프랑스어에서는 5촌 조카(사촌의 아들딸)를 어린 사촌 (Le petit cousin/ La petite cousine)이라고 불러서 신기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에는 손자 손녀, 그리고 증손녀와 증손자 이름을 새긴 냅킨 홀더와 수건, 식기가 있었다.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이라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슬픈 얼굴로 내 이름은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문 제작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까지 손자 손녀처럼 대해주셔서 기뻤다. 우리가 누아무띠에에서 보낸 둘째 날 다니엘 조카의 이름이 새겨진 식기가 완성되어 다니엘의 사촌이 찾으러 다녀왔다. 어린 조카의 이름은 브르타뉴 지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이것 또한 신기했다.
다니엘 말에 따르면 브르타뉴와 노르망디는 서로 몽 생 미셸이 자기 것이라 우기기 때문에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진지하게 나쁜 것은 아니라니 송대관과 태진아의 쇼맨십 같은 건가 싶다. 그런데 다니엘의 할아버님은 브르타뉴 출신이시고 (할아버지 댁의 식기와 다니엘 조카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노르망디에서 20년 넘게 사신 다니엘의 아버지도 출생은 브르타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다니엘은 몽 생 미셸이 브르타뉴의 것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노르망디의 것이라고 생각할까? 조금 궁금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프랑스어를 더 잘하게 된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 뵈면서 다니엘의 어린 시절이나 두 분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에 관해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다. 심지어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책을 읽으셨다면서 이야기를 꺼내시기도 했다. 음식이나 문화, 날씨에 관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곳까지 이해하고 궁금해해주셔서 기뻤다. 다니엘은 할머니께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경제 보복 건에 대해 설명해 드렸는데, 나도 프랑스 정치에 조금은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