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웃음벨
연재를 하다 보면 소재가 바닥나는 건 예삿일인데다 싸울 만큼 싸우고 서로를 어느 정도 알게 된 요즘은 심각하게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서 뭔가가 생각날 때는 꼭 메모를 해두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여름 여행 때도 재미있었던 일이나 신기했던 일들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메모를 했었다. 그렇게 모은 여행의 조각들은 앞으로 몇 화 정도 이어질 것이다(몇 화 분량까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메모는 핸드폰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 초반에는 다니엘의 가족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함께 보낸 다른 휴가들보다 더 의미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다니엘의 할아버지가 사시는 누아무띠에(Île de Noirmoutier) 섬이었다. 여름이면 손주들이며 친척들이 찾아와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며 여름을 보냈다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자주 듣긴 했지만, 또 전에 만나 뵌 적도 있었지만 할아버지 댁에 묵으러 가려니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먼저 나는 내 조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고, 남자친구는커녕 그냥 친구의 조부모님 댁에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긴장을 할 때마다 다니엘은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너를 좋아하실 거라고!'라고 말하지만 남자친구의 조부모님 댁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손자의 여자친구라는 미묘한 입장 때문에 나는 이미 긴장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평소 친척들이며 두 분의 친구 가족으로 북적대기 마련인 할아버지 댁에 두 분 외에 다섯 명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평소라면 12명 정도는 있었을 거라나. 별로 긴장 푸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다섯 명은 다니엘의 사촌, 다니엘의 조카(사촌의 딸), 이모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의 친구 부부였다. 친구 부부는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두 번 식사를 함께한 게 다지만 두 분은 남부에 살기 때문에 누아무띠에 섬에서 두 분의 집까지 차로 열한 시간이나 걸렸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프랑스가 아주 크다는 사실을 가끔 이렇게 상기하게 된다.
집에 아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뿐인가, 덩치 큰 리트리버 개도 와 있었다(다니엘의 사촌 가족).예전에 비하면 프랑스어가 조금 늘었다지만 어른들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건 아직 조금 긴장이 되어서다. 개와 아이들 상대로는 전혀 긴장되지 않는데 말이다. 다니엘 조카와 나는 카펫에 있는 모든 색상을 가리키며 마치 눈치게임하듯 색이름을 외쳤고, 중간중간 어른들 대화에 참가해서 프랑스어를 쥐어 짜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한 그 어떤 프랑스어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쁘게 한 것은 치즈 이름이었다. 셋째 날 저녁에 치즈를 먹는 내게 다니엘이 흐블르숑 치즈를 들고 '이게 뭐지?'라고 물었다. 흐블르숑은 다니엘이 내게 가장 처음 먹인 치즈였기 때문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어르신들의 호응이 어찌나 열렬하던지... 내가 혼신의 힘을 쥐어짜 던진 프랑스어 농담도 이런 성원을 받지는 못했다.
프랑스에서 식사할 때는 늘,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면 치즈 시간이 찾아왔다. 할아버지 댁에는 손님이 많다 보니 김치통보다 조금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갖가지 치즈를 넣어 보관하다가 치즈 시간마다 꺼내어 나눠먹었는데, 둘째 날 저녁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치즈가 거의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거의 없다고 하기에는 그 김치통보다 조금 작은 용기에 아직 세 덩어리의 치즈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이 한국인은 조금 혼란을 겪었다. 나중에 다니엘이 말하기를 평소에는 그 세 배 정도 치즈가 있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거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 왜 유럽 사람들은 자꾸 집에 남은 바게트를 뿌셔서 새를 주는 걸까, 왜 저렇게 타이밍 좋게 '남은 빵'이 집에 있는 걸까 생각했었다. 어린 나는 영화적 연출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었는데 할아버지 댁에 며칠 있어 보니 내가 TV에서 본 그것은 연출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남은 빵은 언제나 있었다. 정말 언제나.
내가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숙취에 시달리던 아침, 식당에 갔더니 할머니가 크루아상을 반으로 가르시더니 내게 Moitié(절반)?라고 물으셨다. 그 모습이 마치 '반띵?'이라며 묻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떠올리게 해서 왠지 정겨웠다.
오이는 프랑스어로 콩콩브흐(Comcombre)다. 나는 와와 109와 미스터 케이라는 어린이 잡지를 보고 자란 세대여서 그런가(거기에 콩콩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아니면 내가 어릴 때 스카이 콩콩이라는 놀이기구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 정말 왜 그럴까 콩콩브흐라는 말을 듣거나 할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양복을 입은 험상궂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서 진지하게 '콩콩브흐'를 입에 담는 모습이 생각난다. 결국 웃음은 멈출 수 없는 지경까지 간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한국인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그의 조부모님을 방문했다면 아무리 자유로운 가풍이라도 '저는 집안일을 도울 의지가 있습니다'를 표명하는 제스처를 했어야 했을 것이다. 설거지를 하겠다는 시늉이나 어색한 '아, 제가 할게요' 사인 같은 거. 특히 나는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여서 더 이런 의지를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진정으로 집안일을 하게 되느냐 어쩌느냐는 둘째 문제다. 저런 상황에서 집안일에 관한 의지는 선의의 표명 같은 거다. 참외 밭에서 신발 끈 안 묶고 포도밭에서 모자 고쳐 쓰지 않는 그런... 편하게 하란다고 진짜 편하게 하면 폐급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이병의 딜레마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당연히 군대와 가정은 다르다). 그런데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는 동안 정말로 앉아서 먹기만 했다... 심지어 집에 사람이 일곱인데 그 흔한 심부름(하다못해 먹을 걸 사 오라거나) 하나 안 시키셨다. 물론 시키셨어도 기쁜 마음으로 했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매일 밤저녁 식사가 끝난 부엌에는 할아버지께서 뒷정리를 하고 계셨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단편적인 기억들밖에는 없지만, 더 오래 함께하셨다 한들 부엌일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며느리에다가, 전력 외라고는 하나 일단 손녀가 있으니까. 그래서 누아무띠에에 머무는 동안 본 다니엘 할아버지 댁의 분위기는 놀라웠다. 다니엘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쟤(다니엘)는 이집 아들이지만 난 이집 딸이 아니니깐 실수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선물이나 인사할 때 실수가 없도록 자신을 단속하는 편인데, 머무는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가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뭉클했다. 다음부터는 다니엘 말처럼 전혀 긴장하지 않고 찾아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