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은 부러움

마음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by 체리

한창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거센 욕구불만을 느끼던 시기, 남들의 성취를 순수히 기뻐하지 못했다. 특히 나보다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것을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가 혈관을 타고 퍼지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 개개인에게 반감을 느끼기 보다는 내 몸 안쪽으로 좀먹고 들어가는 질투였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벽을 기어 오르려 해도 저 기회에는 손이 안 닿을 거'라는, 체념하면 편할 텐데 그렇게 못 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 다 버리고 기회에 손을 뻗었을 경우 따라올 위험이 얼마나 따갑고 아린지 잘 알아서 더 두렵고, 다 버릴 용기도 없는 주제에 욕구만은 사라지지 않아서 아팠다. 젊음은 꿈이, 원하는 것이 있어서 빛난다는데 꿈이라는 게 꼭 사람을 빛나게만 하지는 않는다는 걸 내 꿈과 바람에서 알았다. 꿈이 있어서 비참한 날도 있다는 걸 아무도 안 가르쳐 줬다. 결국 내 문제였다. 어느 정도에서 타협점을 찾거나, 아니면 진짜 한번 다 버려 보거나.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그런 문제.


어떻게 눈 딱 감고 뛰어 봤더니 발버둥 치던 다리에 기회가 얻어걸렸다. 기회와 함께 따라온 일들은 나를 많이 바꿔 놓았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마음도 그중 하나다. 질투를 대하는 태도와 다른 긍정적인 면들을 놓고 봤을 때 그렇다는 거지 프랑스 생활이 좋기만 했던 건 절대 아니었고 향수병에다 적어진 일조량에 이런저런 싸움 등으로 마음고생도 신나게 했기 때문에 어두운 부분도 많았다는 걸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다.


해외 생활의 장점으로 인간의 삶이 정말 다양하다는 느껴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국적 불문, 나이 불문 살아가는 모습과 고민은 정말 제각각이라는 걸. 얼마 전 다니엘과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에도 각각의 삶들이 가지는 다채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베르뉴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10대 아이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맥도날드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12-13살쯤 된 것 같았는데, 어른 없이 자기들끼리만 맥도날드에 와서 신이 난 건지 그저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신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에서 보는 10대 아이들이 사뭇 자연스럽게 동네 카페에서 브런치를 주문하는 모습과는 신남의 정도가 달랐다. 그래서 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다니엘에게 말했었다.

"꼰대같은 말인 거 아는데 파리 집 근처 애기들이 집앞 카페에서 브런치 시키고 테라스석에서 담배 피우는 거랑 비교하면(가끔 프랑스 사람이 봐도 약간 놀랄 만큼 어린 친구들이 담배를 태운다) 이 친구들은 진짜 그 나이대처럼 보여. 내 유년 시절은 이 애들의 생활에 훨씬 더 가까웠거든."


노르망디 출신인 다니엘은 내 말에 동의하면서 '파리 아이들의 유년기는 다른 지방 애들이랑 좀 달라' 라고 말했다. 파리 아이들의 유년기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성인 입장에서 봐도 조금 특별한 게 사실이다. 우리 집 옆은 카페인데, 내가 5-6시쯤 장을 보러 가면 카페의 테라스 석은 집 근처 학교의 학생들로 차 있다. 내가 가끔 들르는 빵집은 다른 빵집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좀 있는 편인데, 이곳에서도 종종 초등학생 어린이 몇명이, 어른이 없다는 상황에서 오는 떨림이나 우쭐함이라곤 없이 음식을 주문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어릴 적에는 요즘처럼 카페가 많지 않았고, 휴대폰은 어른들만 갖고 다니는 거였기 때문에 비교할 수는 없다. 학교 앞 문방구의 간식과 이삭 토스트를 먹고 자란 나같은 사람도, 매일 아침 껑봉 가의 빵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등교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다양한 삶의 아주 작은 단편이지만. 비교하자면. 내 목표와 꿈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나니 가져본 적 없는 미지의 일상에 품는 부러움이 더이상 아프지 않았다. 신기하지 뭔가. 머리로는 알면서도 삼키지 못했던 사실들이 이제는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가령 지금 시점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과거는 바꿀 수 없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생활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 타인이 빛나는 와중에 찾아낸 불행의 그늘보다 그 빛에 던지는 진심어린 찬사가 나와 그이를 모두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


프랑스에서의 생활도 '생활'인지라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요즘 생활에서 보람을 느끼는 건 내가 어릴 적 받은 상처를, 강렬하게 느꼈던 질투를, 나에게 느꼈던 혐오를 하나씩 보내고 페이지를 덮은 계기에 이곳 생활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맙긴 하지만 세금은 좀 인간적으로 떼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