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당했을 리가

그러려니가 안 되는 사람들

by 체리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너는 인종차별 당한 적 없어?'라는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골수까지 집순이의 정체성을 주장하는지라 바깥출입 빈도가 매우 적고, 나갈 때는 다니엘과 함께일 때가 많은지라-남자와 함께 있으면 덜 건드린다는 점은 여성 혐오와도 통한다...- 인종 차별자들과 조우할 순간은 많다고 볼 수 없음에도 나 혼자 장을 볼 때, 길거리를 걸을 때 인종 차별을 당한 적이라면 있다. 하지만 그 인종 차별의 주체는 대부분 십 대 애들이었다. 파리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그랬다. 게다가 파리라는 도시는 대부분의 경우 '누구에게나' 불친절하다. 웨이터가 틱틱거리거나 거스름돈을 다소 거칠게 받아도 '에휴 염병할 놈의 파리..'라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다-파리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분들의 경험을 없는 취급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기본적으로 어디서든,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경각심을 품고 다닌다-. 그런데 얼마 전 처음으로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나는 어른들 사이의 인종 차별이 어떤 선까지 넘을 수 있는지 학습하고 말았다. 별로 유쾌한 사실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니엘과 함께라는 사실은 내가 당할 수 있는 피해를 어느 정도 경감하는 효과가 있음에도 그랬다!



-컹탈(Cantal)에서.


컹탈은 정말 최악이었다(물론 이게 컹탈의 전부는 아닐 거라 믿는다). 다행히 컹탈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문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어야 했고, 총 세 군데의 레스토랑에 들른 후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레스토랑은 평범했다.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이었고, 지배인은 오늘 자기 친구들과 약속이 있기 때문에 점심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두 번째 레스토랑부터였다. 그 레스토랑은 입구 쪽에 바가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는 순간 바에 서서 TV를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인사 한마디 없이 이쪽을 노려봤다. 다니엘과 내가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를 지나 들어간 레스토랑에서는 마침 음식이 똑떨어져서 내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레스토랑 사람들은 한두 명이 인사를 하긴 했지만 노려보는 건 매한가지였다. 우리가 다시 바를 거쳐 밖으로 나올 때 다니엘이 내 손을 꽉 움켜잡기에-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잡지 않으므로- 나는 이 이상한 분위기가 단순히 내 착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레스토랑을 나오는 순간부터 두 남자가 따라붙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 차 뒤에 세워진 탑차에 올라탔고, 가끔 현관문에 열쇠를 꽂은 채로 안에 들어올 만큼 칠칠치 못한 다니엘이지만 두 남자가 지나가는 순간 차 문을 잠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두 사람은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우리 승용차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왔다. 1톤 트럭이었으면 덜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구불구불한 산길 도로를 달리는 동안 거대한 탑차가 뒤꽁무니에 달라붙어 따라오는 기분이라니! 다행히 금방 로터리가 나왔다. 다니엘은 일부러 두 바퀴를 돌아 탑차를 먼저 보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도시에서 온 젊은 애들을 겁주고 괴롭히려는 꼬인 심리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멍청한 이유다. 불쾌한 경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컹탈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식당-왜 컹탈 다음으로 나온 도시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냐면 컹탈 다음은 국립공원이라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은 다행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다 먹고 나와서 계산을 하는 동안 오늘의 고행이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왔다. 바 카운터의 할머니가 유난히 내 쪽을 째려본다는 인상을 받아서다. 탑차 때문에 조금 신경이 예민해졌나 싶은 찰나 바에서 술을 마시던 프랑스인이 작별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섰다. 할머니는 반갑게 인사하더니, 우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계산을 했다. 다니엘이 안녕히 계시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말에는 아무 대답이 없었고, 인사는 무시했다. 하지만 탑차 건을 겪고 나니 '오우 음식에 락스나 안 타면 다행이지'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래도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이 당당히 외국인을 혐오하다니.. 직업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 르퓌 엉블레(Le puy-en-Velay)에서.


르퓌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여행지다. 폭력적인 사태는 없었지만 하루 동안 세 명이나 이상한 시선을 던지니 좀 지쳤다. 세상에는 원래 험상궂게 생긴 사람도, 어쩌다 보니 자꾸 시선이 맞는 우연의 일치도 많다. 그렇기에 인종 차별일 가능성이 큰지 어떤지 판별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피곤한 일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밥을 먹고 있었고, 다니엘의 어깨 너머로 따가울 만큼 시선을 던지는 아저씨가 있었다. 한국 지하철에서 아재들과 눈싸움하던 내공으로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작정하고 노려보면 금세 시선을 돌리지만 잠시 후에 이마빡이 따가워서 보면 또 그 아저씨가 쳐다보고 있다. 그 테이블에 일행이 네 명이나 있었는데 말이다. 자기 일이나 신경 쓸 것이지. 나는 컹탈을 지나 오면서 좀 지쳐 있었고, 계속 인종 차별 얘기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별말 않고 밥을 먹었다. 그나마 레스토랑 사람들은 친절했고 밥도 맛있었다. 다니엘을 먼저 내보낸 후 계산을 하고 밖에 나가 있는데 아까 그 아저씨가 이번에는 레스토랑 밖 담벼락에 서있는 게 아닌가. 꽂히는 시선도 여전했다. 찌푸린 눈살로 미루어 보면 악의가 없다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제야 다니엘에게 말을 하니 (레스토랑 안에서는 등 너머의 일이라 몰랐지만) 레스토랑을 나오자마자 그 아저씨가 뚫어지게 쳐다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다니엘은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꼭 말을 해주고 자기랑 자리를 바꾸거나 같이 대처하자고 했지만 그냥 사람이 못된 건지 원래 그렇게 생긴 건지 모를 사람을 막 인종 차별주의자로 몰 수도 없는 일이라 내겐 좀 복잡한 문제였다. 다음 인종 차별주의자는 어렵지 않게 찾아왔다. 마지막 날 저녁을 먹고 길가에 서서 레스토랑 별점을 주고 있는데 그 길 맞은편에는 또 다른 레스토랑이 있었다. 10명 좀 안 되는 사람들이 테라스 석에 있었고, 한 테이블에 서서 손님들한테 줄 메뉴를 펴던 웨이터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 길 맞은편에 서있으니까 자기네 레스토랑에 올 건지 말 건지 각을 재는 건가 했다. 이상한 점이라면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모르는 손님들을 체크하는 것보다는 당장 앞에 있는 손님들한테 메뉴판을 주는 게 더 중요할 텐데 남자는 손을 멈춘 채 오직 내 눈만을 노려봤다는 것이다. 전생의 원수라도 발견한 투로. 다른 테이블을 담당하는 웨이터는 분주히 움직였기에 나를 노려보던 그 사람이 더 튀어 보였다. 어쨌거나 들어갈 것도 아닌데 레스토랑 앞 길가에 서있는 것도 미안한 일이니 저녁을 먹은 레스토랑의 별점을 주자마자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웨이터는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무슨 일이람. 우리는 조명이 켜진 대성당의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언덕을 올랐다. 잠시 멈춰 서서 아까 본 레스토랑의 웨이터 얘기를 하는 동안 네, 다음 인종 차별주의자가 찾아왔다. 다니엘 뒤편에 서있던 할아버지가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다시 다니엘을 한 번, 그리고 또 나를 한 번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에서 노려보면 시선을 거뒀지만 내가 그쪽에 시선을 두지 않으면 다시 내 이마빡을 쪼갤 기세로 쳐다봤다. 이번엔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케이스였기 때문에 바로 다니엘에게 말하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는데, 다니엘이 한번 쳐다보자 시선을 거두던 할아버지는 다니엘이-할아버지가 또 쳐다보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로 걷기 시작한 후 다시 같은 시선을 던졌다고 한다.



여행 초반, 파리 밖 도시의 생기와 신록에 흥분했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다시 염병할 파리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8월은 평소보다 더 청소가 되지 않아 찐한 개똥 냄새가 코를 찌르고 모든 것이 불친절하지만 적어도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남의 눈치는 보는 분위기니까.... 파리에 인종 차별이 없다는 투의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절대로 없다.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많다. 알고 있다. 그래도 당분간 프랑스 여행은 접어두고 싶게 만드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