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소비자
한곳에서 살며 소비 활동을 하다 보면 취향을 반영한 브랜드 지도가 생겨난다. 떡볶이는 어디, 파운데이션은 어디, 세제는 어디 것이 마음에 들더라 하는 것들 말이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나는 락스 하나 사는 데에도 번역기와 구글 이미지 검색을 동원해 가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프랑스 기준의 소비 취향을 만들어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기에 좋은 점이 있다면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저가/중저가/중고가/고가 등으로 분류되는 브랜드 인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모르니까! 하지만 '예쁘길래 가격표를 보니 역시나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비싸더라'라는 소비의 법칙은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닌지라 쇼핑에 미치는 브랜드 인상의 영향은 줄었어도 결과적으로 사게 되는 물건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프랑스에서 신나게 사들인 브랜드 중에 한국이었더라면 안 썼을 브랜드로 가르니에(Garnier)가 있다. 가르니에의 모기업이 로레알이라는 것은 방금 검색을 해보다가 알았다. 나는 샴푸는 꼭 헤어 전문 브랜드에서 만든 것만 써야 한다는 고집이 있어서, 아무리 브랜드 이미지나 후기가 괜찮더라도 PB 상품이나 종합 생활 브랜드에서 만든 샴푸는 잘 쓰지 않았다. 왠지 냉면집에서 돈가스도 팔고 수제비도 파는 느낌이라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 한국에 있을 때 가르니에를 접했다면 안 썼을 가능성이 높다. 바디 제품도 만들고 헤어 관리 제품도 만들고, 기초화장품도 만드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트에만 가면 가르니에 샴푸 종류가 어찌나 많던지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멍하니 구경하고 있지 뭔가. 개인적으로는 망고와 티아레 꽃 향(향으로는 추천인데 조금 건조한 감이 있었다), 녹차와 5가지 식물 향(살짝 달달하고 싱그러운 숲 향을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 쌀 크림과 우유(은은한 단향이 매력적이고 촉촉함도 만족스러웠다)를 추천한다. 내가 한국이었다면 안 썼을 물건을 쓰게 된 데에는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안 써본 거 써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해외 생활의 영향도 없지 않다. 그래도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물건을 고르고 취향을 쌓아나가는 작업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래도 물건 하나 사려고 번역기에 구글 이미지 검색 동원하던 시절에 비하면 용 됐네'라는 성취감도 있고 말이다.
물론 힘든 점도 있다. 고국에서 이어나가던 불매운동을 늘 끈기 있게 밀고 나갈 수는 없다는 점(예: 당장 위경련으로 죽겠는데 약국에서 말할 수 있는 약이 개비스콘밖에 없을 때), 그리고 당신이 맛있게 먹던 과자의 제조사가 알고 보니 혐오적 행보로 불매 운동에 불을 지핀 회사였을 수도 있다는 점.
나는 소비지향적인 사람이다. 잘 산 물건은 쓸 때마다 즐거움을 주고, 매일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쌓아 나가는 브랜드 지도는 프랑스에서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가격과 품질의 기준을 벗어나 내가 믿는 가치를 위해 지갑을 여는 행위가 의미 있다고 믿는 만큼, 이곳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더 잘 사는 인생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