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 뱀의 주둥이(Gueule de boa)

아직도 어려운 치즈와 와인 토크

by 체리

식성으로 따지면 나는 프랑스 생활에서 대단히 큰 메리트를 찾지 못하는 축에 속한다. 먼저 프랑스 하면 생각나는 와인은 맛이 너무 떫고 써서 옛날부터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한국에서는 모스카토 다스티나 아이스 와인으로 도망갈 수 있었는데 프랑스에 온 후로는 아무도... 모스카토 다스티와 아이스 와인을 와인 취급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치즈는 어떤가, 내가 좋아하는 치즈는 모짜렐라에 브리, 까망베르 정도였는데 프랑스에 온 후로 치즈 전문점 앞을 지나갈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진한 구린내는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모짜렐라야 뭐 치즈 SKY캐슬의 치즈 부심을 가볍게 건드리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나는 치즈 중에 모짜렐라가 좋아요'라고 말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의 '모짜렐라는 치즈가 아닌데..?' 같은 시선을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브리는! 왜 프랑스의 치즈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치즈 애호가들의 뭇매를 한 몸에 받아 내는지 처음에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격식 있는 식사 자리와 식재료 토크가 조금 어려웠다. 와인은 애초부터 즐겼던 적이 없고, 그런 탓에 와인 메뉴를 앞에 두어도 어색할 뿐이었다. 게다가 치즈 토크는 '이번에도 브리 치즈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웃을라나' 하는 생각에 약간 끼기 어려웠다. 물론 사람들한테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내가 와인을 어려워하는 것도, 맛이 옅은 치즈를 선호하는 것도 그들 입장에서는 약간 신선한 시각이었기 때문에 장난스럽게 놀려본 것뿐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체류 기간이 1년을 넘기면서 이 외국인은 어떤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다. '미식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곳에 온 이상 여기서 치즈와 와인 취향을 개발하는 편이 내 대화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일종의 의무감을. 게다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뭐야, 프랑스 사는 동안 와인 대신 콜라만 마셨다고?'나 '뭐야, 기껏 프랑스에 살아놓고 치즈도 별로 안 먹었단 말이야? 아깝게..' 같은 실망 섞인 말들에 시달릴 걱정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막 부지런히 갖가지 와인을 시도해본 것은 아니다. 그저 다니엘과의 식사 자리에서, 회사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따라오는 와인들을 밀쳐내지 않고 한 모금씩 시도하게 된 것뿐이다. 치즈도 마찬가지다. 전채요리를 먹고 본 요리까지 먹고 나면 으레 치즈와 빵 시간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다들 치즈를 즐기는 동안 멀뚱히 앉아있는 건 좀 싫었다. 그런 적응기를 거친 결과 나는 몇 가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브리와 모짜렐라 외에도 좋아하는 치즈(리바로:Livarot)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레드 와인의 이름을 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제목에 쓴 보아 뱀의 주둥이:Gueule de boa-이 와인은 프랑스어로 숙취-Gueule de bois-와 발음이 같다). 사실 포트와인이라면 흥청망청해질 때까지 마실 수 있을 만큼 좋아했기 때문에 포트와인 좋아한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다니엘에게 물었었는데, 다니엘은 내가 브리 치즈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포트와인은 와인이 아니야'라고 했다. 그녀석 참 까다롭구만!


재미있는 것은 이 먹거리 탐구로 프랑스를 향한 나의 내적 친밀감이 제멋대로 상승했다는 데에 있다. 전만큼 식재료 토크가 두렵지도 않고, 이제는 제법 '아는 나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전히 모르는 게 산더미지만, 이 나라에서 먹고 일하고 또 먹으면서(!)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도, (레드 와인 중에서라면) 가장 좋아하는 레드 와인도, 가장 좋아하는 (브리가 아닌) 치즈도 생겨났다는 건 어느 정도 이 나라에서의 먹자아를 형성해 냈다는 충실감을 준다.



가장 좋아하게 된 초콜릿. 모노프리/까르푸에서는 못봤고 가~끔 프랑프리에서 봤다(없는 데도 많음)
두 번째 시도에서 실패한 다니엘은 식당칸에서 딜을 쳐 공짜 초코를 얻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