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수없이 곱씹었던 질문

by 체리

다니엘이랑 한창 싸움박질에 여념이 없을 때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도 많이 싸웠지만 결국에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줄이기로 자기 자신과 타협을 봤단다. 그러고 나니 훨씬 싸울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역시 몇 년을 사랑한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며 무릎을 탁 친 후 집에 가서 또 다니엘이랑 싸웠다. 다니엘은 어땠을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불안했다. 쟤가 저 생각을 한다는 건 우리가 다르기 때문에, 혹은 우리 감정의 밀도가 달라서, 나를 존중하지 않아서. 셋 중의 하나일 텐데 말이야, 생각하며 더 깊은 불안을 파나갔다. 만약 헤어진다면, 헤어진 후에 감당해나가야 할 것이 다니엘보다는 내게 더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이 속 비타민C와 아스코르비나아제(직업: 비타민C 파괴) 같은 조합일까 아니면 단순히 서로를 몰랐을 뿐일까. 자는 다니엘의 얼굴을 보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은 아마도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고민거리를 생산해 내는 존재이다 보니 요즘에는 또 '우리는 지금 활동-싸움- 휴지기일까 아니면 그냥 안정을 찾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말이다. 친구 말이 맞았다. 당장은 불가능했지만 열심히 박치기하면서 알아나간 결과 '어떻게 쟤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할 일이 없어졌다. 다니엘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잊어버리고, 또 틱틱거리는데 그것까지 모두 포함하여 문화 차이인지 아닌지의 기준으로 분류하려다 보니 머리가 더 복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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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문화가 달라도 존중하는 마음은 통한다'라는 논조의 글도 많이 있다. 내게 있어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들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그런 류의 글들을 읽으면서 불안의 밑바닥을 순조롭게 파나갔다.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사랑도 분명 있다. 그런 갓 말린 시트 같은 포근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아 5년이 지나도록 싸울 일이 없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꽤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과다. 우리는 빅 데이터를 통한 예지로 미래를 엿본 후 사랑에 빠지지 않는단 말이다. 일견 완벽해 보이는 연애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불안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의 사랑이 내게 맞는 상대인지 끊임없이 관찰하는 과정의 피로와 불안은 국제연애 특성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미지의 규칙들을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난다. 기존의 인간관계에서 얻은 지식이나 요령은 늘 통하지 않고, 답이라 할 만한 것이 없는 상황에 우리는 진정 사랑 하나만 믿고 나아갈 수 있을까.

다니엘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알쏭달쏭 그 자체였다. 안될 것 같았던 것들이(예: 1년 넘게 장거리 연애하기) 가능했고, 될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일들(그와 여사친들의 적당한 거리감, 연인 사이의 규칙 설정)은 잘되지 않았다-지금은 다르지만-. 잘 되지 않았다는 표현은 너무 완곡한 것도 같다. 어느 날은 폐광의 구덩이에 던져진 듯 서로에게서 단절된 두 인간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을 뿐이므로. 다니엘과의 연애는 내가 살면서 타인과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어떤 관계의 가정보다 더 변화무쌍했다. 우리는 사귀는 2년 반 동안 거의 1년 넘게 떨어져 지냈고, 쉽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신뢰를 쌓았다. 다니엘의 세상에서는 중요치 않던 개념을 같이 만들어 냈고, 나 역시 더 그의 선호에 가까운 방식으로 다니엘을 존중할 줄 안다. 지금도 어? 이게 되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게 왜 되지? 싶을 때도 없지 않다. 하지만 관계로부터 도망 다니고, '내게 옳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시절과 지금의 심리 상태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대단한 싸움들을 씹어 삼켜 소화까지 끝낸 지금은 내 중심이 많이 단단해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위 문단은 지금의 단계까지 왔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늘 "남자 주인공 당신의 상처마저도,,, 내가,, 끌어안아 주겠어요..!!"라고 하는 TV 속 여주인공들을 보며 "아니 멍청아 걔한테 필요한 건 심리상담이야!! 아마추어가 나대는 거 아냐!!"라고 일갈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 내가 그런 여주인공 병에 단단히 걸린 건 아닌지 의심이 들면 매우 불안했다. 우리 관계는 내가 봐도, 끓는 물을 얼음 저울 위에 올린 것처럼 오래 성립하기 힘들어 보였으니 말이다. 나는 자신이 손해를 볼지언정 끌어안고 희생하는 사람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나는 그 삶과 선택을 존경했지만 그런 종류의 선택은 언젠가 나를 부숴버릴 거라고 아주 굳게 믿었다. 그런데 다니엘을 사랑한다는 건 때로는 같은 일도 내게만 무겁게 꽂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으니,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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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한 최종 시험으로 창문을 가리고 계기판만 보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험을 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난 2년이 딱 그 시험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아!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전투기 조종 면허이든 평범한 운전면허이든 그 자체가 완성이 아닌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듯, 우리도 이제야 어떤 출발선에 손잡고 섰다. 등 돌리고 누워 한숨지었던 옛날의 우리 둘을 꼭 안아주고 싶다. 잘 해쳐 나왔다! 그래도 이제 1년 1년 체력이 다르니 힘없는 사람끼리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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