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문화 차이

문화 차이에는 웃어넘겨지는 것과 웃어넘길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존재한다

by 체리

국제 커플끼리 싸우다 보면 가장 지긋지긋해지는 말 중 하나가 '문화 차이'일 것이다. 다른 것보다도 싸우다 보면 상대, 혹은 나 자신이 '문화 차이'라는 말로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피하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올 수 있는데, 이 상황이 반복되면 '문화 차이'의 '문'만 나와도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어 진다. 보통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게 거의 그런 상황들이지만 오늘은 진짜 레알 문화 차이를 느낀 순간들을 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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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탕과 토마토의 조합을 사랑한다. 작년에도 한국 SNS에 방울토마토 병조림이 유행하길래 파리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내가 설탕물에 절인 방울토마토(껍질을 제거해야 함)를 먹는 동안 다니엘은 충격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굉장히 직설적인 성격이라 그 문제로 나와 여러 번 싸웠는데, 내가 "너도 먹을래?"라고 하자 다니엘이 "어.... 네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맛있을 것 같긴 한데 설탕과 토마토는 좀 낯설어서..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중에 먹을래"라고 최대한 돌려 대답한 것-좀처럼 없는 일-을 보니 다니엘도 설탕 토마토를 향한 나의 사랑을 짐작한 것 같다. 설탕이 안된다면 백보 양보해서 꿀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소금은 안 된다. 토마토는 주식이 아니라 간식이니까. 나한테는.

유럽에서 토마토를 어떻게 먹는지 알게 된 것은 회사 냉장고에서 토마토 주스를 꺼내 먹고 "웩! 이게 뭐야!! 왜 토마토 주스가 짜고 난리야!!"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토마토 주스가 짜지 않으면 무슨 맛이 나야 하는데..?'라는 시선으로 나를 보았고, 집에 가서 "아니 토마토 주스가 짜더라니까!! 이건 토마토에 대한 모독이야."라고 말하자 다니엘은 당황한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자기야.. 우린 원래 짜게 먹어.. 단 게 오히려 이상한 건데 여기서는.." 나는 화가 조금 났고, 또 당황했다. 소금은 단맛을 증폭하기 위해 수박에나 사알짝 뿌리는 거 아니었나..? 그때 나는 한국의 수많은 주스 전문점들이 매우 그리워짐을 느꼈다. 그래도 작년의 나는 심술이 잔뜩 난 상태였어서 새로운 식문화를 즐기거나 뭐든 체험해본다는 생각보다는 휴식을 최우선으로 여겼는데, 다시 프랑스로 가면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식문화를 받아들여 보고 싶다. 짠 토마토 말고 다른 거. 슈퍼에서 파는 팩에 담은 가스파초 같은 것은 시도해 보고 싶다. 물론 짠 토마토 주스도 가스파초라고 생각하면 못 마실 것도 없지만... 마음가짐의 문제다. 처음부터 '저는 가스파초입니다'라고 팩에다 써 주면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데. '저는 주스입니다.'라고 해놓고 내가 짜다고 성질을 냈을 때, '저는 제가 달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만..?'이라고 하면 맞는 말이라서 더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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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문화 차이도 있고 집안 분위기 차이도 있는 경우 같다. 다니엘 부모님을 보러 Rouen(루앙)에 놀러 갔을 때-도 다니엘 부모님 없는 데서 많이 싸움- 다니엘 부모님이 노르망디 특산물인 Livarot(리바로) 치즈를 가져오셨다. 나는 슈퍼에 가서도 치즈 코너 옆에서는 숨을 참고 걸을 만큼 아직 강한 치즈와는 친해지지 못한 상태여서 리바로가 맛있을지 걱정을 했는데 먹어보니까 아주 맛있는 것이었다! -저는 브리, 까망베르, 모짜렐라, 블루치즈를 좋아하는데 리바로는 향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으면서 중간 정도 단단함을 가지고 있고 먹으면 게살 같은 맛도 조금 나기 때문에 비슷한 취향이라면 한번 시도해 보세요- 그래서 열심히 치즈를 잘라먹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다니엘이 내 손목을 붙잡는 것이었다. 눈으로 왜 그러냐고 묻는 내게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치즈 먹는 방식은 조금 달랐겠지만 프랑스에서 다른 사람들과 먹을 때 치즈의 마른 부분을 빼고 말랑한 부분만 먹어서는 안.. 되는 것 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마른 부분도 같이 먹는 게 좋아!"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 바로 나는 다 같이 먹는 김치에서 어린잎만 뒤적거려서 먹는 행동 비슷한 것을 한 것 같다. 머스크멜론에서 딱딱한 부분 빼고 말랑한 부분만 홀랑 먹어버린 것과도 비슷한가? 요점은 얌체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후 다니엘의 아버지가 나와 똑같이 말랑한 부분만 드셨기 때문에 나는 못마땅해 보이는 다니엘의 얼굴을 무시하고 먹던 대로 먹었다. 미안! 그래도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먹는 양이 많지 않아서 부모님이 내가 '어떻게' 먹느냐보다는 '어쨌든 먹고 있다'라는 사실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인생을 통틀어 다니엘만큼 내게 '어떻게' 먹는가에 관해 얘기해준 사람은 별로 없다. 신선했다. 아, 나는 피자에서 크러스트 부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매번 남기는데(치즈 크러스트 말고) 다니엘은 이 크러스트 부분을 좋아해서 피자를 먹을 때만은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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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책을 읽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날따라 자꾸 콧물이 나와서 콧물을 훌쩍대는 상태였는데, 다니엘이 "자기야, 그냥 코를 풀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코를 풀고 나왔다. 그러자 다니엘은 점점 더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니 왜 거기 숨어서 풀어..?"라고 묻는 거였다. 거야 코 풀고 나서 콧구멍 근처에 코딱지 같은 걸 달고도 모르는 사태를 피하고 싶으니까 그렇지... 네 앞에서 별로 코 풀고 싶지 않고.. 다니엘은 "알았어,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코 훌쩍거리느니 그냥 풀어야 한다고 생각 많이 하니까 너무 훌쩍거리지는 않는 게 좋아"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꽤 자주 겪는 것이었다. 회사 프랑스어 선생님이 우리 앞에서 갑자기 시원하게 코를 풀 때, 동료랑 함께 식사를 하는데 동료가 얼굴을 우리 쪽으로 하고 코를 풀거나 은행원 같은 사람들이 코를 푸는 걸 눈앞에서 보는 그런 상황. 그런 가운데 나의 유일한 의문은 '코 푸는 건 좋은데 왜 이 나라의 휴대용 휴지는 별로 부드럽지도 않고 흡수성도 별로 안 좋은 거지?'였다. 어쩌면 내가 안 좋은 제품을 골라서 산 걸지도 모르겠다. 기존에 산 건 PB 상품 같은 거였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중간에 바꿀 수가 없었다. 다음엔 Lotus 제품을 사봐야지.. 아무튼. 코를 푸는 간단한 문제에서도 우리의 시각은 많이 달랐다. 그래도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문화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뿐이니까, 아직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문화 차이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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