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임? 대체 뭐임?
지난 화요일 점심을 사 먹으러 바오를 파는 집까지 걸어가다가 어떤 노숙자가 역 출구 난간에 1리터짜리 생수병을 쥔 손을 늘어트리고 있다가 결국은 난간 밑으로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았다. 파리 지하철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출구라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깊은 일은 좀처럼 없어서 뭔가를 떨어트렸을 때 맞은 사람 머리가 깨질 만큼 크게 다치지는 않겠지만 누가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다가가서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노숙자는 너무나 태연히 걸어갔고 마침 그 옆에서 걷던 아저씨가 나처럼 역 출구를 한 번, 노숙자를 한 번 보길래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마치 코푼 휴지를 떨어트리듯 가볍게 생수병을 떨구던 모습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쾌하게 팔을 흔들며 걸어가는 모습이 조금 섬뜩했다.
연재를 쉬는 동안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아직 스크린도어가 전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선로에 굳이 기관사가 들어올 때를 노려 콜라를 던지고 기관사에게 손가락 욕을 하는 사람이나-지긋지긋하다는 듯 감흥 없는 눈으로 고개를 젓는 기관사까지- 에어팟을 끼고 친구와 통화하며 걸어가는 내 귀에 얼굴을 대고 무어라 중얼거린 남자. 지하철 소음 때문에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모델을 산 데다 친구의 음성과 섞여 뭐라 하는지는 전혀 못 들었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명백히 통화를 하면서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의 귀에 대고 뭐라 지껄이진 않을 테니 좋은 말이었을 리 만무해서 내 쪽도 사양 없이 욕지거리를 했더니 '농담'인데 뭘 그리 화를 내느냔다. 아직도 남자가 뭐라 했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저 울타리를 사이에 둔 소형견들마냥 과장된 험악함으로 엿을 먹으라는 말을 교환했을 뿐이다. 남자는 웃기게도 숀 레비의 영화 프리 가이에 나온 악역과 매우 닮았었다-이 영화를 본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1년의 대부분이 회색뿐인 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살아가고 있어서 다들 이상해지는 것인지 원래 이상했던 사람이 여기에 와서 늘 하던 일을 하며 살아갈 뿐인지. 아마 영영 모르겠지 싶다.
9살의 나는 그 좋아하는 치킨 배달이 와도 심장이 떨려 방문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친구 집에 전화하는 것도 온몸이 심장이 된 것처럼 떨어야 겨우 할 수 있는 심약한 아이였다. 몇 년간 왕따로 구르며 학교를 다닌 후로는 많이 벼려졌지만 그렇다 한들 '나는 그렇게 파리에 왔다'를 쓸 즈음에도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 바로 받아치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애꿎은 이불만 터지도록 걷어차야 했다. 재미있게도 2017년과 2023년은 또 달라서 지금은 비교적 바로 받아칠 수 있지만 내가 독해진 만큼 거리에서 마주치는 인물들의 광기도 만만치 않게 깊어진 느낌이 든다. 한창 중2병이 왔을 때의 내가 읽던 만화들에서 '눈이 맛이 갔어..'라는 대사들을 많이 봤지만 작년과 올해만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게 된 적이 없다.
작년 여름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Raspail 역에서 환승을 하고 있었다. 밤에 잘 나가지 않는 우리는 처음으로-자주 가지 않아서 멋대로 이런 생각을 한 것이지 비교적 위험하기로 소문난 구라고 해서 모든 거리가 위험한 건 아닙니다- 모 구에 있는 영화관에 야간 아이맥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당일에! 즉흥적으로! 잔뜩 신이 났었는데 환승역 계단을 내려가는 우리를 한 히피가 잔뜩 더럽혀진 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함에 인종은 관계 없지만 아무튼 백인이었다)드래드를 한 덩치 큰 남자가 허름한 옷을 입고 서있었다. 안경알은 대체 왜 그리 더럽게 하고 다니는 건지.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 뒤로 곤충의 겹눈마냥 흐린 눈이 보였다. 그리고 남자는 이상하게도 허공에 주먹을 쳐든 채로 서있었다. 그 주먹은 우리가 그와 가까워짐에 따라 아주 느리게 펴졌다. 그리고 남자가 입으로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흉내 냈다. 내가 파리에 간 뒤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던 우리 엄마는 늘, 내게 눈이 맛이 간 사람들을 들이받고 다녀선 안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그 말이 이날만큼 가슴에 울린 적이 없었다.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왜! 저런 짓을 하는가. 그런 의문을 가졌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남자 뒤에 서있던 아저씨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체격이 비슷하고 아저씨가 다부진 편인데다 여차하면 남자를 붙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게 그나마 최소한의 위안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계단을 내려간 후에도 남자가 우리를 따라오거나 말을 거는 일은 없었지만 진짜배기 광인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귀에 대고 뭐라 지껄인 남자는 눈이 탁하지는 않았었다. 최소한 이 혼란한 이승에서 살아있는 육체들이 다투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단 소리다.
또 다른 동태눈의 소유자와 조우하게 된 것은 올해 봄의 일이다. 마침 다니엘이 집에 없는 주말이라 집에 있는 장 보기용 가방을 양팔에 끼고 먼저 더위 사냥 맛이 나는 커피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데 누가 내 옆얼굴에 대고 짐짓 놀랐다는 듯 숨을 들이마시는 휘익 소리를 내는 것이다. 반사적으로 도다리 눈을 치뜬 채 뒤를 돌아본 나는 '왕좌의 게임'에 나왔던 호도르 역의 배우와 거의 완벽하게 닮은 거구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에 나온 호도르 눈은 이 남자의 회색 눈에 비하면 백록담만큼이나 맑았다. 이날도 별일은 없었다. 남자는 어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보였다. 그는 흐린 눈으로 내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을 갔다. 이어폰을 꼈던 날 귀에 무어라 지껄였던 남자도 힘으로 나를 제압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겠지만 이날의 거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인물이었다. 이 사람의 순수한 힘으로 내 관절이 뽑혀도 별로 놀라울 것 같지가 않았다. 슬프게도 말이다.
이외에도 임신 중이던 친구와 쇼핑몰을 거닐다가 웬 여자가 에스컬레이터를 탄 내 친구 얼굴 앞으로 쑥 다가와 싸대기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낄낄 웃더니 제 남자친구-인지 뭔지-를 불러 같이 웃는 일도 있었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와 친구들은 최소한 피하지는 않는 것을 목표로 어떤 형태로든 대응을 하고는 있으나 남편들을 집에 놓고 나올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꽤 지긋지긋하다 할 수 있겠다. 친구가 아직 임신 중이던 그 시절, 친구를 때리는 시늉을 했던 남녀는 신분증이 없는 자유인들이라 해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제도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서른 넘은 우리가 물리적 힘의 한계를 모를까. 언젠가 험악한 일에 말려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를까. 차갑고 야멸차게 대꾸한다 해서 인종차별주의자가 어떤 깨달음을 얻고 회개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늘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부끄러워야 내일 우리가 당하는 취급이 더 나아진다는 생각을, 딴에는 한다. 내가 사는 '제법 나아진 세상'은 분명히 몽둥이찜질을 각오하고 반기를 든, 전 세대의 이민자가 만든 거니까.
당연히도 이런 류의 생각은,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달가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니엘이 염려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나라 경찰들은 개인들이야 싸우든 말든 관심도 없고 너한테 친근한 감시 카메라도 없는 데다 감옥에도 자리가 없어서 무슨 일이 나도 정의의 철퇴 같은 건 없다고 보면 된다 말한 다니엘이 어떤 마음으로 말하는지 무척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나도 최대한 선처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광인들의 도발에 한번, 두 번 깨져나가 지금껏 크고 작은 말다툼을 길에서 벌였었다. 파리에서 지낸 몇 년간 다니엘의 간절한 마음과 논리가 해내지 못한 일을 광인들의 탁한 눈이 해내고 있다. '아, 이런 놈들이 사람을 찌르고 그러는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그 눈빛, '관상은 민족을 초월한 통계다'를 부르짖게 만드는 그 눈빛,,! 물론 초롱초롱 맑은 눈으로도 사람을 해코지하는 사람도 많겠지. 하지만 탁한 눈의 광인들과 정면으로 마주한 나는 서른 줄에 깨닫고 만 것이다. 세상에는 피해 가야 할 싸움이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