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몸뚱이의 대모험
우울증 완치 판정을 받은 지 꽤나 긴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꽤 건강해졌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하지만 자율신경실조증이나 언제 발병할지 모를 하시모토병 진단-거의 확실하다는 진단은 받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발병은 하지 않아 투약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처럼 누가 봐도 티 나는 병이 아닌 어떤 병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미묘한 증상들(흉통, 체온조절장애, 만성피로, 어지럼증, 설사, 변비, 졸도 등)만 안겨주는 기저질환을 깔고 가는 삶이라 자칫 꾀병 의심을 받기 십상인데, 마침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상한 경험들을 조금 했다. 그래도 이미 학교를 졸업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고3의 어느 날처럼 담임이 집에 전화를 해서 댁의 따님이-두 번의 졸도 후- 교사들의 꾀병 의심을 받고 있으니 집에서 '단속'좀 해달라고 말해 부모님도 나도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을 걱정이 없다는 점 아닐까.
친절한 고은희 선생님 덕분에 나는 가끔씩 어디가 아프면 '이건 고은희 선생님처럼 아둔한 사람이 봐도 이해하기 쉬운 병이라 다행이다. 우리 고은희 선생님 같은 사람은 덜 생기겠다'라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어른이 될 수 있었다. 고은희 선생님이 너무 안온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졸도야 그냥 보면 사람이 기절해 있으니 위급 상황이라는 느낌은 드니 그렇다 치고, 다니엘이 나와 함께 병원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병명을 들었지만 이건 다니엘도 이해하기가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 증상이 하나 있었다. 특히 사람이 여기저기 잔병치레로 가족들을 20년 넘게 기함시키다 보면 눈치를 보게 되기 마련이라 프랑스어도 좀 늘었겠다 이건 내 선에서 처리 및 은폐를 해도 되는 것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날 나는 고양이의 똥을 발굴하는 중이었다. 그의 똥 냄새가 너무 지독한 것이 문제였을까? 백수 기간이 조금 길어지고는 있었지만 나는 특별히 이상하다 할만한 상태도 아니었고 이 똥을 캐내고 나면 빨리 청소기도 밀고 저녁 준비도 해두자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외계인 영화의 불안한 서막처럼, 시야 안에 투명한 구슬이 하나 맺혔다. 나는 오늘따라 너무 모래를 너무 열정적으로 헤집어 눈에 티끌이 들어갔다 생각하고 눈을 비볐으나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그 투명한 구슬 영역의 안쪽에 무지갯빛으로 상이 번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나는 일이 잘못되어간다 느꼈다. 시야 자체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구슬 영역 안으로 들어간 상들이 만화경 속처럼 중복되어 보이거나 왜곡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비극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아 급기야는 구슬 영역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눈에 정말 뭐가 들어갔다 생각하고 똥삽을 내려놓은 후 거울 앞에 섰다. 슬프게도 눈에는 아무 티끌도 얹혀있지 않았다.
이것은 악몽이 아닐까? 짧은 현실 부정의 순간 동안 나는 똥 모래로 아직 검은 발이 희게 물든 고양이를 내 품위에 올려놓고 울먹거렸다. 거울 속에 보인 내 얼굴은 예외 없이 구슬 영역 속에 들어가자마자 구불텅 휘어졌다. 고양이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구슬 속에 들어가자마자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고양이의 똥은 치우다 만 채라 거실로 똥 냄새가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몸에서 유일하게 멀정했던 눈마저 망가졌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또 지랄병이 도졌다는 표정으로 질색을 하며 떠나가 버렸다. 나만이 똥 냄새가 번지는 거실에 누워 고독했다.
그러다 덜컥 '울어서 더 덧나는 병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눈물을 멈췄다. 핸드폰 속 글자도, 혹시나 해서 펼쳐본 다니엘의 책 속 글자도 구슬 속에만 들어가면 번지고 일그러졌다. 신기한 것은 15분이 지나니 구슬은 사라졌지만 시야가 확 좁아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시로 많은 것을 확인하는 편인데 -주로 고양이가 말썽을 부리는지- 이 순간에는 정말 내 앞밖에 보이지 않았다. 집에만 있어 머리를 감지 않았던 나는 당장 -그 와중에-머리를 감고 청소기도 빨리 돌려놓고 택시를 잡아 응급실을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울며 기름진 머리를 씻어냈으나 얄궂게도 거기서 10분이 더 지나자 눈이 멀쩡해졌다. 이때까지도 다니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아-한창 일하는 사람에게 나도 뭐라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는 증상으로 전화를 해서 뭐라 말하겠는가- 나중에 한소리 들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더 빨리 다니엘에게 전화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나는 언제든 가능한 의사만 찾으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프랑스 백수생활의 이점을 살려 다음날 일반의 예약을, 그다음 날 안과 전문의 검진 예약을 했다(직장 생활 중일 때는 시간 제약이 많아 이렇게 간단하게 진료를 잡기 힘들다)
그렇게 찾은 일반의가 '두통 없는 편두통인 것 같다'라고 하기에 배은망덕한 나는 애꿎은 프랑스 의료 탓을 하며 한국행 티켓을 알아보기도 했다. 정말 배은망덕하군! 하지만 두통 없는 편두통은 1. 안과 전문의를 찾아가고 2. 별도의 센터에서 1과는 다른 날에 머리 MRI를 찍고 3. 그 결과지를 들고 다시 1의 전문의에게 찾아간 후 실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너 뇌하수체가 좀 높게 있고 보통보다 크네, 그리고 양쪽 뇌에 균등하게 피가 안 돌고 있으니 다음에 의사 만나면 그 얘기 해도 되겠다'라는 불길한 코멘트와 함께. 나는 '해괴하긴 해도 어엿한 병명이 있는 증상이라 참말 다행이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또 불안한 것은 구슬이 나타나면 글자도 읽기 까다롭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다시 또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점이었는데 그 부분은 '또 나오면 더 자세한 검사를 하는 수밖에'라는 설명밖에 붙지 않았다. 사실상 시원하게 해결된 부분은 없지만 다행히 구슬이는 지금껏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외에는 지금 근무 중인 회사에 첫 출근하기 2주 전쯤 생긴 부착 부 아킬레스건 건염이라는 생소한 친구가 있다. 이것 또한 프랑스의 의료가 늘 그렇듯 1. 일반의를 찾아간다 2. 엑스레이 센터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온다 3. 엑스레이 결과지를 들고 발만 보는 전문의한테 간다. 4. 전문의가 제작한 보조 기기를 받으러 간다. 5.(조정 후 여전히 통증이 있을 시) 다시 전문의를 찾아간다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으나 참으로 다행히 첫 출근 전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역시 쉴 때 아픈 것이 제일이다. 증상은 발을 어딘가에 올려놓은 채로 몸 쪽으로 당기거나 스쾃을 하기 위해 내려갈 때 발뒤꿈치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당기고 아프다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 역시 처음에 만난 일반의가 부착부 아킬레스건 건염과 Heel spur, 아마도 한국어로는 종골 골극 혹은 발꿈치 골 융기(뼈가 뾰족하게 자라서 살을 찌르는)을 의심했는데 결국은 부착부 아킬레스건 건염인 것으로 몸과 완만한 합의를 보았다. 어쨌든 요점은 발의 아치가 무너지고 이것은 의사를 찾아가 만든 깔창(250유로)으로 당분간 교정해서 통증을 개선하더라도 10년, 15년에 한 번씩 혹은 아이를 낳거나 체중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통증이) 다시 찾아올 것이므로 주기적으로 250유로를 지출해 새 깔창을 만들어야 한다는 듯하다. 이전 물리치료 에피소드 이야기 때 말했듯이 나는 발목 때문에 근 7년은 운동화만 신으며 보냈는데 이렇게 애지중지하며 돌보아도 무너진 아치로 보답한다는 점에서 나의 발은 주인을 닮아 배은망덕하다. 매일 하이힐만 신으며 화려한 패션의 전성기를 보냈더라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을.
흔히 병은 평생 돌보며 가져가야 할 친구라고들 표현한다. 그런데 친구 아닌 놈들을 친구라 불러야 하는 불합리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나의 이 친구들은 이름이라도 좀 간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나는 자율신경 실조증이, 하시모토병이, 부착부 아킬레스건염이, 두통 없는 편두통이 있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음을 믿어준단 말인가. 특히 두통 없는 편두통은 정말 염치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녀석이다.
허약 인간으로 태어나 이제 32년차를 바라보는 요즘, 내 염치없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진다. 하지만 이름을 듣는다고 바로 알 만한 놈들을 억지로 '친구'삼게 된다 한들 딱히 행복해질 것도 아니므로 그냥 옆에 있는 놈들이나 제대로 돌보며 살아가려 한다. 원했던 적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