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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Jul 08. 2023

나라의 은혜

비브 라 프랑스

복지의 나라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직장생활을 한 후, 회사가 한국으로 돌아가버렸다. 한국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할 때는 아무래도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부를만큼 많지는 않아서(어쩌면 실례라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있으면 정규직 다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거의 없었거나 아예 없었거나. 그런데 이 프랑스에서의 두번째 직장에 다니는 동안은 다니엘도 그렇고 다니엘 조부모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내가 정규직으로 진화할 거라는 기대를 많이 품고 있어서 이것이 복지강국의 사고방식인가...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정규직을 해주지 않으려고 기간제 계약만 두번 연장하고 '팽'해버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공고에 쓰여 있는 '정규직 채용 가능성이 있는 계약직'들도 그렇게 드물지 않게 정규직이 된다. 이런 사소한 차이를 발견하는 게 여러모로 신기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이 종료되었는데 뭘 더 하겠는가. 그래도 근무하는 동안 다들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무심한듯이 챙겨주신 분들이 체리씨도 같이 한국 가서 하던 일 계속 해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해주신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내가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졌으니까.


 당시 나는 지금 당장 실업을 하더라도 앞으로를 위해서 프랑스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했기 때문에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는-외벌이 전사에겐 미안하지만-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하는 느낌이었다. 마법의 문장 '언제 또 프랑스 정부 돈을 받으면서 공부를 해보겠는가'의 힘은 엄청났다.


 특히 '다음 직업은 꼭 정규직으로 찾는다' 는 마인드였기 때문에 제대로 프랑스어를 붙들고 공부할 기회는 거의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나름대로는 절박했다.


 프랑스 실업급여 수급은 일단 저번 이야기에서 소개했던 폴 엉플로아(Pôle emploi)에서 시작한다. 나는 일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계정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누구나 다 인터넷을 쓸 줄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예약을 잡는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인터넷으로 계정을 만든 후 지금 상황을 설명하는 간단한 설문을 작성한 후(실업 이유, 기업명, 근무기간, 계약 형태, 다른 사회보장 장치의 지원을 받고있는지 등의 항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략적인 실업급여 지원 일수를 확인한 후 동네 폴 엉플로아, 고용센터에 방문 예약을 하고 정해진 날에 방문했다-그리고 저번화와 같은 사달이 났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동안 조심해야 할 점은 아래와 같다.


- 고용센터에서 보내는 이메일이나 편지가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확인해야 한다.

-  매달 한번인지 두번인지 가물가물하지만 꼭 정해진 기간 안에 현 상황을 보고하는 짧은 설문에 응해야 한다. 내용은 현재 적극적으로 구직중인지 / 최근에 영리활동을 한 적이 있는지를 비롯하여 네다섯가지 정도인데 캡쳐를 게을리한 나머지 내용은 핸드폰에도 내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다. 기간을 놓치면 이 달은 수급을 못 받거나 아예 자격이 박탈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 1년에 정해진 일수 35일을 제외하면 프랑스에 궁뎅이를 딱 붙이고 있어야 한다. 잘못 쓴 게 아니다. 35일 맞다.


 한국에 사시는 부모님이 실업급여를 받으셨던 것도 이제 꽤 예전 일이라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부모님 구직활동을 도와드릴 때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구직활동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그냥 구직중이라 주장하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는 고용센터 첫 방문 이후로는 전화로 구직상황을 보고하거나 다시 센터를 방문할 일이 없었지만 이 점은 사람 나름이라고 한다. 고용센터에서 알선하는 의무 교육에 꼭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길래 긴장을 했는데 판데믹이 아직 끝나기 전이라 그런가 이 부분도 ZOOM 교육으로 대체되어서 내 입장에서는 편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아무래도 1년에 35일이나 해외를 쏘다닐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점이었다. 프랑스에 온 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프랑스 최고다!! 라고 단전에서부터 외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다니엘이 이 사실을 알려준 날 나는  Vive la France, 비브 라 프랑스를 목놓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용보험이나 실업급여에 대해 알게되자 나는 자연히 다니엘의 상황에도 생각이 닿았는데 내 딴에는 '로펌 = 회사'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니엘도 직업을 잃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니엘 말로는 본인이 개인 사업자같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당장 내일 잘려도 실업급여는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내가 비브 라 브랑스를 외치는 동안 다니엘의 미소에는 애수가 어려 있었다. 다니엘은 '나는 이미 틀렸으니 너라도 정부에 빨대를 꽂아야 한다' 라고 했다. 그 분부대로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날까지 프랑스 정부에 빨대를 꽂고 공부했다.

 당시 남겨둔 스크린샷이다. 법정 유급휴가 5주의 나라여서인지 이 나라는 은행 앱에도 이런 기능이 있다. 외국인에게는 한없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위와 아래의 스크린샷들은 모두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프랑스를 떠나는 날짜를 신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은행 앱에도 본인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프랑스를 떠나 있을 것인지 신고하는 기능이 있는데 그런 기능이 없을 시 (인터넷 은행에는 아예 메뉴가 있는데 기존 은행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고객 센터에 이메일을 쓰면 된다. 프랑스를 떠나 있는 동안 프랑스 내에서 발생하는 비정상거래에 고객 책임을 묻지 않기 위함이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Valider를 터치하면 원하는 기간만큼 프랑스를 떠나있을 거라고 신고할 수 있다.

 중요한 항목들을 신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법 여러번 신고 내용이 확실한지 확인을 한다.


 아마 궁금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덧붙인다. 숫자들은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 한 6개월을 실업급여 신세를 진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동안 총 9200유로 정도를 받았다. 살벌한 파리 물가 때문에 풍족하지는 않아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 기간동안 지금까지도 밑천이 되고 있는 프랑스어 실력을 쌓았으니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는 폴 엉플로아를 통해 운전면허나 프랑스어 교육을 받았고 또 누군가는 폴 엉플로아가 직업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쓸데라곤 하등 없는 교육을 강요해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쓸모없는 교육에 등 떠밀려 갈 뻔 했지만 다행히 실업급여 수급에는 아무 지장도 없었다.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복지이다 보니 동네 폴 엉플로아가 못미덥더라도 취업으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분이라면 한번 (예약 후) 방문하시는 걸 추천하고 싶다. 그날의 고용센터가 어떤 꿀같은 혜택을 장전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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