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고통과 기쁨

들어갈 준비

by 체리


아주 어릴적부터 아기들은 참 좋았다. 그들은 늘 좋은 냄새가 나는 존재였고, 그들의 곁에 있으면 한숟가락씩 분유를 얻어먹는 좋은 일도 생겼으며, 웃을 때면 태양처럼 빛이 났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한결같이 아이가 된, 자기 자신만의 의견을 발견하고 만 아기는 귀엽지 않다고 느꼈기에-여전히 귀엽긴 했지만 천사같은 아기시절의 파괴력과는 약간 달랐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은 아이를 가져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는 일도 있었다. 10대 후반에 아기를 좋아하는 티를 내면 사람들은 그저 아기를 좋아한다 여겼지만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내가 아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간혹 '이제 (엄마가 될)준비가 된 게지' 따위의 말을 했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늘 하던대로 아기를 보며 귀여워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소리를 듣는다는 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기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당장 다니엘 하나 내 삶에서 없어지면 아등바등 이 파리에서 살아남는것조차 쉽지 않을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나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일단 그 다음 단계에 대해 생각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서 그랬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같이 살기도 했고, 아주 어려서 만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 하나쯤 있다 해서 (진작부터..)이상할 나이는 아니었다. 다만 나와 다니엘 의견이 좀 달랐기에 아이 없이 사는 미래도 나는 약간은 고려하고 있었다. 나는 건강 문제가 있어 일정 나이 이후로는 아예 출산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고, 다니엘은 좀더 둘만의 시간을 갖고싶어했기에. 또 나는 일단 노동자로서 좀더 안전한 고지를 선점한 후에 아기를 갖는 선택지를 고려하고싶어했기 때문에 이 조건들이 모이니 완벽한 시점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마치 집을 살때처럼. 하지만 내가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바로 인류의 프로그래밍이었다. 내 유전자가 그다지 미래에 남길만큼 좋아보이지도 않고 번식에 미련이 크게 없었던 편이어서 종족보존에 대한 미적지근함이 늘 지속될 것이라 믿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아라는 독을 개발해버린 아이들까지도 전보다 더 귀여워보이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나랑 다니엘의 아이라면 어떨까' 따위의 상상을 진지하게 해본 적도 없는 나인데 사뭇 진지하게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은 비결을 자신의 변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나의 탄생부터 심어져 있던 다음 대로의 열망 회로가 가임기의 어느날엔가 각성해버리고 만 것이다. 만사가 극단적이라 다니엘이 내 삶에서 없다면 나는 혼자 어떻게 삶을 영위할 것인가 따위를 가끔 생각하는 나는, 이때부터 아이라는 변수를 이 상상에 끼워넣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인분의 삶을 책임질 것인가? 이 시점부터 나는 진짜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니엘이 이렇게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진심으로 가족들을 먹여살릴 준비와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내 종족 번영의 사명 회로는 평생 불붙는 일 없이 그냥 유전자 뭉치 하단 저 어딘가에 깔려있지않았을까 싶다.


지난 2년간 마음이 바빴다. 지금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나니 그동안 돈이 들어서,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서, 지금은 프랑스어가 제일 중요해서 따위의 이유로 외면하고 싶었던 하고싶던 것들을 분주하게 내 삶으로 끌어들이느라 그랬다. 조카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고 나니 일단 아기가 생기기 전에 하고싶던 걸 해야겠다 싶었다. 지금도 이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가버리는데,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애가 10대는 넘어야 '엄만 늘 이런거 하고싶었잖니' 따위의 말을 할 시간이 겨우 생기지 않을까 싶어 조바심을 냈다. 내가 번 돈으로 (드디어 실업기간동안 까먹을 걱정없이) 저금을 하고, 같이 모은돈으로 집을 사고, 그 집을 꾸밀 타일을, 바닥재를, 커튼을, 가구를 사고, 수영을 하고, 비싸다고 피했던 필라테스를 하고, 엄두를 못 냈던 다구를 사고, 동양화를 시작했다. 그리스를 가기전에 그리스어 공부를 했고, 이탈리아를 가기전에 이탈리아어 공부를 했다. 지금은 중국에 가기 전까지 중국어를 공부한다. 생계와 아무 상관없이 그저 하고싶어서 하는 공부란 정말 귀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말들이 머리에 들어올 때마다 마냥 즐거웠다. 막힐 때면 과외선생님을 찾아 한시간을 결제했다. 직장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소비패턴인데, 나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게 자리를 잡은지라 하나하나 새로웠다. 안정적인 삶 속에서 내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2년을 보냈다. 살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2주의 이탈리아 여행을 20년지기 친구와 했다. 정말 오랜만에 학교에 다녔던 시절처럼 당연하게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이 밥을 먹고 갖고싶은 건 샀다. 새로운 자극에 같이 감탄하고, 원없이 웃었다. 경비를 아끼느라 그랬던가, 같이 다니는 동안 여행 경로에 유난히 굴다리가 많았다. 나나 친구나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혼자라면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피했을 그 길을 깔깔 웃으면서 같이 걸었다. 보수적인 동네에서도 더 보수적인 집안의 딸들이었던 우리가, 무사히 살아 어른이 되었다. 운이 좋게 은퇴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튼튼한 다리로 2주동안 이탈리아를 누비며 얼굴에 경련이 나도록 웃었다. 이런 건, 아직도 그 기억으로 살아. 라고 말하는 건 이런 기억이겠지. 이런 걸 받았으니까 나는 괜찮다. 같이 보낸 시간을 가져오니 오랜만에 파리에서도 허기지지 않았다.


늘 갖고싶은 게 너무 많았다. 모양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그걸 다 가질 수 없음은 뻔해보였고, 하고싶은 게 너무 많은 것도. 다 할 수 없으면 필요없다고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을 심술을 부려 애초에 시작도 안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하지만 일단 시작을 해버리면 어떻게든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대개는 해보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을 내는 내 성격이 불안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불러온 것이었다. 끊임없이 원하는 건 내 장점이자 단점이었고, 동시에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특징이어서 지금껏 나와 해결보는 시간이 지난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하고싶은 건 해보고, 어디까지 하고싶은 건지도 재보고, 그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보고, 할 수 없으면 다른 건 뭘 하고 싶은지 따위의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고 나니 가질 수 없음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정 속상하면 바닥 한번 구르고, 시원하게 소리한번지르고 털어. 그럼 털어진다. 오늘은 아니어도 내일은 털어질 수도 있어. 하고싶은 것들을 속 시원히 해보고 나니 조금 알 것 같았다. 이제 아기가 나한테 와도, 아기 탓은 안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기보다는 기초공사는 이제 다 해놔서 아기가 오더라도 느리게는 쌓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생겼다-.


아기란 건 원한다고 늘 잘 와주는 건 아니고,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둘 중 한사람이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어서, 여기까지 와서도 꼭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다. 애초에 우리가 그런 기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을 최근에 와서야 의식하게 된 사람들이니 말이다.


많은 것들이 이상했다. 절대 제발로 와 누워있는 내 품속 빈자리를 메우듯 눕지 않는 우리 고양이가 유독 나를 찾아오는 것도-다니엘은 이것 때문에 확신했다고-, PMS 기간에 하루정도면 모를까 오래 지속되는 일 없는 토기가 며칠을 이어지는것도, 남의 냄새에 둔한 내가 갑자기 셔틀버스 운전사의 체취에 늘 앉던 자리를 피하게 된 것도. 입안이 느끼해서 자꾸만 매운 것을 찾고 콜라로 내리려 애쓰는 것도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다니엘은 내 생일까지 기다리면 안 될 것 같다고 생일에 먹여주기로 한 초밥을 미리 먹자 했고, 나는 다니엘이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초밥은 맛있었다. 이거이거, 다들 생리가 시작되면 얼마나 낙심을 하려고 이러시나들. 나는 회의적이었다. 내 몸이 안하던 짓을 하는 것도 영 없는 일은 아니었고, 나는 원래가 생리주기가 들쭉날쭉한 사람이었고 말이다. 반투명하게 나온 두번째 줄을 확인하고 나자 진짜구나 싶었다. 웃기게도 몇 주 전 다시 시작한 동물의 숲 속 이웃들-게임 속 캐릭터-이 편지로, 유아용 의자와 아기 침대를 보내왔다. 그저 우연일 뿐이지만 퍽 재미있는 사건이었다.


대체 다들 어떻게 준비가 되었다는 걸 알지? 라고 생각했었다. 다니엘은 현실주의자답게 자기 나름대로 내놓은 결론을 들고왔다. 준비가 되었다는 걸 알아서 결정한 사람들은 소수파고, 사실 다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것뿐인거 아니냐고. 그런가... 다니엘의 개똥철학이 맞는지 아닌지 알게되는 날은 평생 오지 않겠지만 늘 그랬듯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