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아이들

무척 귀여웠다

by 체리

대부분의 경우 나는 지하철을 선호한다. 설령 잘못 탄다 해도 잘못 탔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고, 어딜 가나 노선도가 붙어있다. 길 잃을 염려가 훨씬 적다. 게다가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살게 된 곳이 늘 지하철 역 근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상보다는 지하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가 찾는 정신과는 지하철역보다는 버스 정류장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병원을 찾기 시작하면서 나의 버스 인생도 시작되었다. 오늘은 새로운 해의 시작이기도 하고, 마침 물감을 샀으니 세 장의 그림을 수채화로 그리는 용감한 시도를 했지만 그림 그리기에 하루를 꼬박 들인 만큼 매번 수채화로 세 장을 그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비록 오른손이 숨 죽은 콩나물처럼 늘어지고 말았지만, 새로운 해의 첫날이 지나가기 전에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병원을 찾는 토요일 오전에 재미있는 어린이 요금 할인 제도라도 적용되고 있는 것인가, 유난히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멀미 또한 내가 버스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다양한 승객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알게 되자 버스 타는 시간도 전만큼 싫게 느껴지지 않았다. 위에 그린 자매도 그랬다. 동생 쪽이 유난히 울보였는데, 지켜보는 동안 웃음을 참는 것이 힘들었지만 자매의 어머니가 진땀을 흘리는 모습은 슬픈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영하 13도 정도였고, 우리 어머니가 그랬듯이 자매의 어머니도 아이들의 옷을 꽁꽁 싸매었는데, 동생 쪽은 시종일관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엄마, 앞이 안 보여"-후드를 뒤집어썼으니까-, "엄마, 목이 아파, 목이 아파."-목도리를 감은 채로 지퍼를 올려서 갑갑했던 모양-를 외쳤다. 두 정거장을 가는 동안 동생 쪽이 몇 번이나 앞이 안 보인다고 했고, 목의 통증을 호소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으니 자매의 어머니에게는 재앙 같은 아침이었을 것이다. 동생은 정말 대단한 울음꾼이어서 버스 정류장에 내린 후에도 다양한 불편 사항에 관한 호소를 멈추지 않았다. 언니 쪽은 동생에 비하면 무척 조용했지만, 언니 또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동생이 신나게 우는 동안 "엄마, (후드 안 어딘가에) 머리가 꼈어." "엄마, 머리카락이 꼈다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우리 엄마였으면 "집에 가서 보자"라고 했을 텐데, 자매의 어머니는 아이들 돌보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였지만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고, 아이들을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존경스러웠다.

이 친구는 친화력이 엄청났다. 그리고 이 친구를 만난 것은 바로 저 위의 자매를 본 날이었기 때문에-자매를 본 것은 병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였고, 이 친구는 집에 오는 버스에서 보았다- '오늘은 재미있는 어린이의 날인가'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뭐 사가야 할 것은 없는지 묻고 있었는데,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이 친구가 비어있는 내 옆 좌석의 등받이에 매달려 "안녕하세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어어, 안녕"이라고 했다-이 인사 이후 이 친구는 내게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의 친화력은 엄청났지만 내가 본 수많은 어린이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할머니를 화나게 하는 어린이였다. 다른 것들은 비교적 사소했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내내 발을 질질 끌고 멈춰 서서 시간을 끌어 결국 할머니가 폭발하게 만든 것은 -그의 할머니에게-유감이었다. 부디 그날 집에 가서 많이 혼나지 않았기를.

나는 집에 가는 길이었다. 병원에서 집에 가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병원 근처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옆 차선을 달리는 버스에 앉은 할머니와 할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가 이쪽을 보고 웃었다. 할머니의 입모양은 "언니한테 안녕 해"라고 말하고 있었고, 아기는 부끄러워하며 할머니 품에 숨었지만 웃는 얼굴은 똑똑히 보였다. 아기는 내 조카보다 조금 컸는데, 내 조카가 그 애처럼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상상하니 집에 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