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모르더군
나는 너무 무서웠다. 사람들이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싫었고, 그로 인해 그들이 나를 동정하게 되는 것도 싫었고, 위로받는 것도 싫었고, 아무튼 타인이 나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 '아 걔 우울증 있다고 했지' 같은 생각이 먼저 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친구들의 연락에 바로 대답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악화되었을 때도 가능하면 우울증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엄마에게 제한적으로 알린 것은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내 생각만큼 동정으로 가득하지 않았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 아니다. 치료를 시작할 마음을 먹은 건 내가 가장 낮은 곳에서 근근이 숨만 이어나가고 있을 때라 그냥 때가 되어 맞아야 할 매를 맞는 기분으로 담담하게 말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갈 기운이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전만큼 울고 싶은 기분을 숨겨 가며 친구들을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되고, 기쁜 일에 진심으로 기뻐한다.
그리고 나를 만난 친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아닌가 전부 다 진담이었나?) "네가 우울증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잖아!", "너는 우울증일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지만 어쨌든 웃었다. 그러니까, 의외로 모르더란 말이다. 아마도 우울증이 생긴 후로 극도로 바깥출입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 애들이 나를 관찰할 기회를 얻지 못한 탓일 거라 생각한다. 나와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채널이라고 해봐야 필담, 메신저 정도였으니까. 오빠의 결혼식에서 나를 본 친척들이 내 살이 너무 많이 빠져 중병에 걸린 줄 알았다는 얘기를 감안하면 원인은 높은 확률로 내가 친구들을 만나지 않은 것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우울증이 생긴 후로 몸의 병이 겹쳐 전보다 6kg, 심할 때는 8kg 정도 체중이 빠졌었고 그것 때문인지 안 쓰던 화장품-결혼식 때 오빠의 동생 자격으로 참석했기 때문에 늘 쓰던 제품이 아닌 미용실에서 임의로 택한 파운데이션으로 화장을 받았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단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정말 중병일까 봐 마음 편히 묻지도 못했다는데, 그런 줄은 결혼식이 끝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전해 들었다. 아무튼, 나는 혹시라도 사람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게 될까 무척 두려웠다.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할 때도 가능한 한 지금 기분이 어떤지는 말하지 않았다. 자세한 묘사는 최대한 피했고 감정이라곤 섞이지 않은 사실 위주로만 얘기했다.
'낫겠지', '안 나으면 난 장례비가 벌리는 대로 죽을 거고'라는 생각에 뭘 향한 건지도 모를 오기가 섞였기 때문에 내 병에 대해서는 최대한 희망적으로 얘기를 했었다. 애초에 내가 하고 싶은 건 고지였지 호소가 아니었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기 전의 나는 어땠는지 잘 알고 있기에 축적된 데이터를 덮어썼다. 아프기 전의 내가 할 만한 얘기들을 했고, 내가 할 만한 반응들을 그대로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반응에 내 감정이라곤 섞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된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는 죄책감이 떨쳐지지 않았다. 치료를 받는 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환자들이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자기가 너무 부끄럽고 자기 인생에 너무 미안하다고. 물론 우울증 환자의 최대의 적은 우울증 그 자체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다양한 것들을 향한 죄책감 또한 우울증 그 자체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 힘들 만큼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사람들은 의외로 몰랐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이 우울증이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 생각했었다. 내가 나의 친구였더라면 아마 나도 그랬을지 모른다. 심지어 나의 경우 제법 직설적으로 나 요즘 아주 우울하다고 말한 적이 몇 번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가 잠시 슬픈 기분을 이기지 못했거나 그 우울이 곧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지만 말이다. 이 별로 대단할 것까지는 없어 보이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한동안 망치에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나? 8kg 빠진 살, 나쁜 안색에 -내 생각엔-전과 달라 보이는 행동거지 정도면 꽤 들키기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는 줄곧 드러나지 않기를 원해 왔으니 잘 됐다면 잘 된 일이지만. 우울증, 이 병이 무서운 줄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이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