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번째

매일 천장에 발을 구른다

by 체리

내 경우 매일 같은 일을 동일한 시간에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그 '매일 같은 일'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영어 필기체 연습하기, 프랑스어 알파벳 연습하기. 복잡하지 않고 따라할 견본이 있으며 굳이 내 의견을 요하지 않는 일들. 나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그저 멍하니 앉아 몇 시간에 한 번씩 시계를 볼뿐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며 다시 멍함에 빠져들어 '죽는 건 어때?'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에 다시 글도 쓰기 시작했고, 그림도 그렸으며 영어 필기체도 시작했다. 애인은 왜 굳이 필요한 일들을 제쳐두고 영어 필기체처럼 급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느냐는 입장이었는데, 나는 같은 선을 몇 번이나 그어 그들의 완성도를 확인하는 이 단순한 일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다 하고 나면 오늘도 주어진 일을 했다는 성취감도 조금은 느껴졌기 때문에 애인의 말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죽음에서 시선을 돌리게 해 줄 단순한 일들이 필요했고, 알파벳의 발음을 연습하거나 영어 필기체를 연습하는 등의 일들은 나의 필요에 아주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목적성이라고는 '죽는 생각을 덜 하는 것' 단 하나였기 때문에 필기체가 예쁘게 잘 써졌는지, 내 발음이 어땠는지에는 평소만큼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늘도 뭔가를 했고, 거기에 만족했다. 그뿐이었는데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었다.

나의 궤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불안으로 다가왔다. 나의 리듬, 그 생활의 궤적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가장 먼저 전자기기들에서 나타났다. 나는 전자기기에 흥미가 있어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구입해서 어떤 기능이 있는지 만져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자주 쓰지 않는 제품일수록 충전에 소홀해지기 마련이고, 최악의 경우 방전 상태를 유지하며 액정에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게 만드는 일도 있다-이것은 배터리 수명에 별로 좋지 않은 일이다-. 나는 굳이 관리하지 않을 것을 사고야 말았다는 죄책감을 느끼기가 싫어 가능하면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모든 전자기기를 충전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한창 내 궤도에서 먼 곳을 떠돌고 있을 때 나의 이북 리더기와 태블릿, 두 개의 게임기와 노트북은 검은 액정에 눈처럼 나린 먼지를 뒤집어쓴 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을 선사했다.

그 외에도 내가 용케 완전히 잊지 않고 주기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귀 소독-귀를 뚫은 지 1년이 훨씬 넘었지만 주기적으로 해주지 않으면 쉽게 곪는다-과 키보드 청소, 중고 서점 방문이 있었는데 귀 소독과 키보드 청소는 치료를 시작한 지 2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다시 시작했으니 한참이나-적어도 5개월은- 다 놓은 채로 지낸 셈이다.

다시 옛날과 유사한 궤도로 돌아간 후에도 알파벳 연습이나 필기체로 글 쓰기 같은 건 종종 이어갔다. 나는 이 일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치료가 진전을 드러낸 후에는 어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매일 같은 무언가를, 같은 양만큼 해나간다는 것이 내일도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안심감을 주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더 이상 애인의 필기체 편지를 읽는 것이 예전처럼 어렵지만은 않다는 사실과 프랑스어로 문장을 만드는 사실에 전만큼 커다란 어려움은 겪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에 광고 이메일에 들어간 한자도 한두 글자 정도는 더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웅크려 앉아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참을 수 없이 불안하게만 느껴져서 매일 천장에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사뿐사뿐, 어떤 날은 힘차게 쿵쿵. 나는 그 천장이 움직일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천장은 점점 더 뒤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발을 굴렀던 날들 덕분에 세상은 2mm 정도 넓어졌고, 나는 의지 없이 해온 일에 가끔씩 의지를 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야심 차지는 않게. 나는 우울하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