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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Mar 21. 2022

<공명 共鳴 Resonance : 자연이 주는 울림>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예술

2021년 전시 중에 윤석남 화백의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전시 다음으로 좋았던 호림 미술관의 <공명:자연의 주는 울림>, 그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 미술 DNA 전>이다. 



자연을 품은 비덕(比德)


<공명:자연이 주는 울림> 전시는 자연에 머물다, 자연을 품다, 자연을 따르다 세 주제로 나뉘어 있다. ‘비덕’이란 자연물을 의인화하여 자연물의 생태적 속성을 인간의 윤리로 환원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군자의 도덕과 관련된 사군자 매난국죽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덕 차원의 자연물은 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의 예술품에 등장한다. 군자의 덕을 표현한 자연물을 곁에 두면서 수양하고자 하고, 불합리한 현실에서 군자의 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현대 미술 작품이 아닌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석란도>이다. 석파란이라는 별명과 함께 난을 잘 쳤다는 ‘소문’만 들었지 작품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림에 홀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아우라를 담고 있다. 현대에 그려졌다고 해도 될 정도로 세련되었다. 예술 작품에는 만든 이의 성격이 드러난다. 말과 글이 그렇듯이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이 정도의 기상으로 자라는 난을 본 적이 없어서 마치 환상 같은 느낌도 든다. 쭉쭉 뻗으면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끝이 휘어진다. 이렇게 짙은 먹색이라니. 먹색깔의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까만색이다. 사진이나 도록은 실제함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다. 석파란에 대한 찬사는 추사 김정희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 이동에 이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내가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 늙은이에게 난초를 요구하는 사람은 석파의 난초를 구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매화는 서리와 눈을 뚫고 언 땅 위에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내는 꽃이다.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비의 곧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난초는 깊은 산속에 살면서도 고운 꽃을 피운다. 사람의 관심이 닿지 않아도 뜻을 잃지 않고 덕을 쌓으며 견디는 군자를 의미한다. 국화는 여름에 피는 꽃들이 모두 지고 늦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피기에 선비의 고고한 절개와 기품의 표상으로 인식된다. 또, 꽃이 시들어도 향이 남아 있으면서 가지에 붙어 있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죽어가는 모습에 인내를 상징한다. 대나무는 곧으면서도 속이 비어있는 속성 때문에 마음을 비운 선비의 정직과 정의를 상징한다. 문인들은 수양하는 이치를 자연이 품고 있는 덕목에서 배우고자 하였다.


 



자연을 따르는 현대 작품들


나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함께 있는 전시를 좋아하는데, 호림 미술관의 전시가 그랬다. 동양적 전통으로서 자연에 대한 사유를 작품으로 구성한 현대 미술가들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자연이 가지는 무한한 의미를 자신만의 언어로 구현해낸다.


달항아리 뒤에 있는 단색 추상 작품은 정상화 화가의 대표적인 그리드(grid) 작품이다. 캔버스 위에 고령토를 3~5mm 바르고 캔버스 뒷 면에 연필로 격자문을 그려 넣고 그 선을 따라 접는다. 표면에 균열이 생기며 고령토가 떨어져 나가고 그 사이를 물감으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단색화의 대표 화가 윤형근의 작품도 좋았다. 처음 들어보고, 처음 봤음에도, 그리고 엄청나게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림임에도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자연에서 직선은 어색하다. 그래서 ‘자연’이라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을 법하지만 전혀 어색한 느낌이 없다. 물감 즉, ‘물’이 자연스럽게 면포 ‘나무’에 퍼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직선은 도리어 주변에 있는 선배의 절개를 표현하고 있는 사군자가 표현하는 덕목을 상징하는 듯하다. 윤형근은 자신의 작품이 근간을 추사 김정희에게 두고, 자신의 작품을 ‘천지문’이라고 명명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문인 것이다.  



<공명:자연이 주는 울림> 전시에서 가장 큰 발견은 바로 이배 화가이다. 벽에 걸린 <불로부터 ch-68>, <불로부터 ch-69>를 봤을 때는 그냥 캔버스에 유화 작품인 줄 알았다. 나무가 타고 난 숯이 이렇게 반짝 거리며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숯은 거친 형태로 못생긴 목욕 바구니에 담겨 물에 잠겨 집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천연 가습기의 역할을 한다고 아빠가 두신 것이다. 가끔 오랫동안 물을 채워주지 않으면 쩍쩍 갈라지던 바로 그 새까만 숯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색깔 하며 만지면 나무의 결이 느껴질 질감 하며 왠지 숯 향기도 나는 것 같으면서 고향집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숯을 얇게 자르고 식물성 풀로 캔버스에 붙여 사포로 문지르고 숯과 숯의 경계에는 소나무 기름으로 메운다는 식물의 집합체이다. 



이배 작가의 작품이 너무 좋아서 심지어 작품의 가격까지 찾아보았다. 언젠가 살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이배 작가의 작품을 많이 많이 보고 싶었는데, 2021년 호림미술관 이후로 만날 수 없다가 2022년 3월 작년에 새로 개관한 리움미술관에 갔더니 있었다.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대놓고 숨겨져 있다. 이배 작가의 2021년작 <불로부터>가 투명한 유리장에 들어가서 데스크로 쓰이고 있다. 



비 오는 날의 미술관 관람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었다가, 선비 정신에 정신 수양을  느낌이고 마지막에 본 이배 작가의 숯 작품 덕분인지 정신, 생각, 뇌가 정화된 느낌이 여느 전시 때보다 강하. 조화로운 미술관은 소우주이다. 윤석남 갤러리에서 일제시대에 들어갔다 나온 시간 여행을  듯한 몽롱함이 있었다면 오늘은 나노필터를 통과한 시원함이 가미된 깨끗한 느낌이다. 


서울에서의 짧은 휴식 이후로 제주에 내려가 자연을 머물고, 품고, 따르며 지내는 세월을 보냈으니 그야말로 자연과의 합일과 물아일체의 행위이다. 병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연이라는 이상 세계에 머문다. 군자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욕망 지향의 속세에서 벗어나 성인의 세계를 추구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군자의 도이니, 뭐니 하는 ‘이상’이 가득한 글을 외우고 공부하고 익힌다. 그렇게 과거 시험이라는 수능을 통과해 막상 관료사회에 들어가면 도덕, 윤리, 정의는 찾아보기 힘든 당파 싸움에 편 나누어 헐뜯고 죽이는 작태였을 테니 머릿속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의 아노미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 때려치우고 낙향하기엔 모아둔 돈도 없고, 받은 녹봉도 쥐꼬리에다가 땅도 없다. 먹고살려면 더러운 꼴을 참아야 한다. 이들에게 고요하면서, 변치 않으며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랬듯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이유도 와유 그 비슷한 걸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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