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은 편지가 안 끊기길 바랐었어"
SNS에는 내 글이 잘 업로드 되었는지 확인 가능하고, 누가 나의 글을 봤는지 추적할 수 있지만 편지는 그렇지 않다. 카카오톡에서도 상대방이 나의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알 수 있지만 편지는 그렇지 않다. 편지는 우체통에 넣으면 끝이다. 주소지에 잘 도착했는지, 상대방에게 잘 전달이 되었는지, 그가 읽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손을 떠난 편지는 이동 시켜주는 사람과 시스템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편지가 잘 전달되었다면 상대방이 답장을 해주리라는 것도 믿어야 한다.
너랑은 편지가 안 끊기길 바랐었어. 지금까지 끊기지 않아서 정말 좋고 말이야! 우편배달부 아저씨들을 생각해 봤어. 항상 예쁜 편지봉투에다가 항상 똑같은 주소를 써서 주고받는 우리를 기쁘게 여기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 너의 예쁜 편지를 꺼낼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아. 우체부 아저씨도 그런 편지를 전달해 줄 때가 가장 기쁘지 않을까?
05.10.21 여해 (고2, 18세)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을 초창기엔 답장이 오지 않으면 편지가 중간에 미스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고, 상대가 이제 답장을 보내지 않는 걸까 하는 불안도 있었다.
저번날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 혹시나 편지가 안 갔나 해서 다시 보내. 인포를 보니 휴가를 갔더구나.
03.07.28 현미 (중3, 16세)
이번 주 태풍이라는데 이 편지가 무사히 도착하길.
13.06.XX 현미 (26세)
새 집으로 보내는 첫 편지일텐데 잘 도착하길 빌며!
20.04.01 현미 (30세)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서로의 편지가 '오는 거'에 익숙해졌다. 답장이 늦을 때 상대가 걱정하며 기다릴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가는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미리 알려주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선 시험 기간이 끝나고서야, 방학이 되어서야 편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편지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의 편지가 '오지 않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편지가 몇 달간 오지 않아도 현미가 공부를 하고 있구나, 무슨 일이 있구나라고 짐작했다. 언젠가 다시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편지가 늦어졌다면 어떤 이유로 늦어졌는지 그다음 편지에서 알 수 있었다.
편지가 오지 않는다고 조급해지지 않았고, 서운할 것도 없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믿음이 생겨있었다. 현미가 편지를 꼭 보낼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생각보다 편지의 로스는 잘 생기지 않는구나 하는 우리나라 우편 시스템에 대한 믿음!
사실 저번에 내가 우편물을 1가 3번지인데 3가 1번지라고 잘못 썼는데 제대로 우리 집에 온 거 있지! 분명 우체국 아저씨가 나를 알고 계실 거야. 아마 너도! 11.09.25 현미 (24세)
주소를 명확히 하는 것엔 열심히 동참!! 그런데 한 번도 딴 집으로 간 적은 없는 것 같아. 약 9년 동안 말이야!
10.07.10 여해 (23세)
2월 말에 기숙사가 바뀔 예정이야. 바뀌면 그 주소로 편지할게.
14.02.10 여해 (27세)
그동안 주소가 바뀌었는데 빨리 전해질 못해서 혹시 네 편지가 예전 주소지에 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일은 한 번 예전 기숙사에 가봐야겠다. 14.10.16 여해 (27세)
이사 후 주소를 알려주려고.
20.03.10 여해 (30세)
대입에 실패한 나는 2007년 강남의 한 고시원에서 재수 생활을 했다. 편지를 주고받은 중2부터 고3까지 동일한 주소였던 나의 주소가 바뀌는 첫 시점이었다. 나는 당시 공부도 공부지만, 집과 부모님을 떠난 환경에서 지내는 데서 오는 괴리에 적응하지 못했다. 3개월 만에 학원을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가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를 미처 현미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현미는 내가 고시원을 떠난 것을 모르고, 고시원에 편지를 보냈고, 당연히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현미가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잃어버렸다는 미안함은 아직도 강해 가끔 현미에게 얘기하곤 한다. 편지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현미의 그 한 통의 편지가 우리의 20년 지속되는 펜팔 생활에서 유일무이한 '닿지 못한' 편지이다.
카톡이든, 편지든 상대방이 답을 하지 않으면 소통은 끊긴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끈을 놓지 않으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주소가 미스 나고, 편지가 어긋나고, 몇 개월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어도 우리의 편지는 결국에 왔다. 상대의 편지가 오지 않아도 보냈다. 예쁜 엽서를 보면 생각이 나서 보냈다. 생일이 있는 달이 되면 보냈다. 즐거운 곳을 방문하게 되면 보냈다. 그저 아무 말이나 하고 싶으면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지만, 서로가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편지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사실 '끊어질 듯'은 밖에서 볼 때 하는 표현이고, 나랑 현미에겐 전혀 '끊어질 듯'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도리어 100%,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2007년 이 시기까지 우리가 이미 만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느리지만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있었다.
우체통이 매년 반씩 줄어든다며 편지 쓰는 사람이 없어졌다면서... (중략) 다들 빠른 세상에 잃어가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일까? 늦더라고 계속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편지를 쓴다는 건 참 좋을 것 같아. 막상 쓰면 금방 쓰는데 보내기가 참 쉽지 않지. 그래도 이렇게 아직까지 편지를 주고받아서 기뻐.
04.08.02 현미 (고1, 17세)
1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아온 믿음이 있는 것 같아.
11.09.25 현미 (24세)
처음엔 비슷한 점으로 마주하며 친해지지만 단순히 공통점 만으로 관계가 지속될 수는 없다. 좋아하는 가수가 같고, 나이가 같고, 청소년기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며 친해지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어느새 신뢰가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