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존과학자 C의 하루 >

원작의 범위란 어디까지일까?

by 정여해

아주아주 흥미롭게 보았던 < 보존과학자 C의 하루 > 전시.


2020년 5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의 기획전시가 순회 형식으로 제주에서도 선보여진 전시이다. 2021년 10월 21일부터 2022년 1월 9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 열렸고, 21년 11월 3일 방문했다. '보존과학자'라는 게 어떤 것을 뜻하는지 모른 채 일종의 '과학'과 관련된 전시겠거니 하고 찾아갔다.


< 보존과학자 C의 하루 >는 보존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C (C는 보존과학자 Conservator에서 따왔다.)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보존과학 업무에 대해 소개하는 전시이다. '보존과학'이라는 영역이 있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좀 더 근원적인 예술의 원작이란 어디까지일까? 예술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만약 원작이 훼손되었다면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훼손되기 전의 상태로 현대의 touch를 가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예술품은 공동 작업자로 복원자의 이름을 넣어야 하는가? 예술의 아우라는 어디서 나오는가? 등에 대한 예술과 미학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았던 전시라 꼭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다.



IMG_2239.JPG 제주도립미술관 < 보존과학자 C의 하루 > 전시 전경


나의 엄~청난 뒷북 전시 리뷰이지만, 전시 리뷰보단 예술 작품의 범위에 대한 공부에 더 가깝다. 2025년 3월 11일부터 4월 6일까지 리움 고미술관에서도 보존 처리에 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평안감사 도과급제자 환영도>라는 8폭 작품이 있는데, 애초에 병풍이 아니라 낱장으로 돌아다니던 것을 보존처리를 통해 병풍 형태로 복원하였다. 작품 자체도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의 그 대단한 평안감사를 맞이하는 작품 내용 자체도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비디오로 보여주는 보존 처리 및 복원 과정도 대단하다. 2023년 11월부터 16개월간 보존처리를 진행했고, 2025년 5월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한국실에 전시될 예정이다.


IMG_4079.JPG 리움 미술관 국외소재 문화유산 보존지원 프로그램 전시 <평안감사 도과급제자 환영도>


최근에 방문한 리움에서 보존지원 전시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바로 이 <보존과학자 C의 하루> 전시를 아주아주 흥미롭게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손상된 예술 작품들을 보존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 있고, '보존처리'를 주제로 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작품들도 있었다.






전시는 5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상처를 마주한 C}

{C의 도구}

{시간을 쌓는 C}

{C의 고민}

{C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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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마주한 C}


보존과학자 C는 작품을 살펴보고 문제가 있는지 알아낸다. 작품에 상처가 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겠다.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물감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부주의하게 다뤄져서 파손이 생겼을 수 있다. 또, 야외나 온도, 습도가 제대로 맞지 않았기 때문에 오염이 생길 수 있고, 흙과 같은 이물질이 묻는 등 수 만 가지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작품을 보지만 보존과학자는 그 작품이 만들어졌을 당시 살아있지 않은 이상 '손상된' 작품을 보는 것이 그 작품을 마주하는 가장 첫인상이다. 손상되기 전 작품이 어땠는지 자기 눈으론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걸 과연 복원할 수 있을까?

복원을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할까?

그리고 복원을 하는 게 맞을까?



{C의 도구}


김지수 작가의 냄새를 담은 <풀풀풀-C> 작품이 독특했다. 일시적이면서 순간적인 그냥 날아가버리는 냄새를 담아서 작품으로 만들었다. 비물질을 표현한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보존과학실을 다니며 채집한 체취와 냄새를 병에 담아 설치해 두었다.


만약 유리병이 쏟아져서 모두 깨지고 그래서 냄새가 공기 중으로 확산되어 모두 사라진다면 과연 이 작품의 '보존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못한다. 마치 해프닝이나 퍼포먼스와 같다. 복원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현대미술은 비물질과, 탈물질화돼 가면서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을 의도 자체로 삼기도 한다. 이 유리병도 영원하지 않기에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냄새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사라질 것이다.

IMG_2276.JPG 김지수 2020-2021 < 풀풀풀-C>


정정호 작가의 보존 과학에 쓰이는 다양한 기구 사진들이 있다. 작품을 세밀하게 보기 위한 현미경이라든가, 성분을 분석하기 위한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형광분광 분석기 등 다양한 기구들을 찍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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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쌓는 C}


여기서는 회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의 보존 처리에 관한 내용을 보여준다. 이 전시의 가장 하이라이트이다.


이갑경 <격자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 (1937)은 보존 처리 후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보존 처리를 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미 보존처리를 하여 원상태로 복원된 작품을 미술관에서 만난다. 그래서 그러한 작업을 거치기 전의 상태를 본 적도 없고, 사실 나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영상으로 보존 처리가 되기 전에 얼마나 작품의 손상이 심했는지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작가의 혼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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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266.JPG 이갑경 1937 <격자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


이 작품은 심지어 발견될 당시 둥글게 말려 있었다고 한다. 1989년 보존 처리 후 2014년에 또 보존 처리를 진행하였다. 찢어진 캔버스를 보수하고, 물감이 벗겨진 부분을 붓이나 면봉으로 채워준다. '붓칠'을 한다는 그 자체가 '회화' 작품의 본질 아닌가. 그런데 그걸 원작자가 아닌, 원자자의 허락을 받은 자도 아닌, 원작자의 수제자도 아닌, 동시대 미술관의 한 과학자가 하고 있다. 색을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의 색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 색은 원본과 정확하게 100%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색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결국 보존과학자의 사유와 선택의 영역이다.


누군가는 작가의 터치 외에 아무것도 더해지면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작가의 창의성이나 원본의 아우라가 사라진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작품이 바래가는 것 그 자체가 작품의 생애이자 스토리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IMG_2293.JPG 장리석 1958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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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석 화가의 그림은 제주도립미술관을 방문한다면 많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1958)과 <조롱과 노인>(1955) 두 작품이 있고, 마찬가지로 보존 처리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함께 걸려있다. 영상을 보면 장리석의 <사>가 아니라 장리석 & 보존 과학자 C의 <사>라고 복원자의 이름도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부분에 관여한다.


육명심 작가의 <예술가 시리즈 - 장욱진>(1969/2007) <예술가시리즈-서정주>(1973/2007) 사진 매체, 이서지 작가의 <풍속도(8 곡병)>(연도미상) 은 병풍 형식, 전상범 작가의 <새-B>(1972)와 권진규 작가의 <여인좌상>(1968) 은 조각,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의 <검은 나나(라라) Black Nana(Lala)>(1967)는 야외 설치 작품 등의 보존 처리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IMG_2332.JPG 전상범 1972 <새-B>




{C의 고민}


우종덕 작가의 <다다익선> (2020) 은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이 작품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고, 그 생각을 하는 과정이 내내 재밌었다.


IMG_2359.JPG 우종덕 2020 <다다익선> 12 채널 미디어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랜드마크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 1,003 개의 브라운관 TV 가 들어간 작품인데, 문제는 TV 들도 수명이 있는 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을 구성하는 TV들이 맛이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TV로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을까? 의 질문이 벌써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문제는 브라운관 TV 가 더 이상 생산조차 되지 않는 유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브라운관 TV 가 아니라 요새 나오는 최신식 TV로 바꾸는 게 맞을까?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결국 가동이 중단되었고, 고장난 TV 들의 탑이 되어버렸다. 영상을 보여주는 게 TV의 본래의 역할이라면 영상 재생을 하지 못하는 TV들이 쌓여있는 건 그저 고철 더미일 뿐일까? 영상이 재생되지 않는 TV 1,003개를 보며 우리는 백남준의 '예술'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백남준의 예술은 그가 만들고 편집한 영상과 TV를 이리저리 조합하고, 그 외에 다양한 매체들을 섞어 넣는 등 모든 것이 들어가야 '완성된' 작품인 걸까? 그렇다면 지금 화면이 꺼진 이 <다다익선>은 미완성인가? 하지만 백남준 작가는 '꺼져도 상관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 하나둘씩 수명을 다해 꺼지는 매체의 한계성까지 작품이 포함되는 건가? 그러면 지금이 오히려 '완성'된 상태인가?


백남준의 <다다익선> 복원에 대해 예술계에선 논쟁이 첨예했고,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우종덕 작가는 <다다익선> 복원을 둘러싼 각기 다른 3개의 의견을 시각화한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모니터가 3개가 있고, 삼각형을 이루며 바라보고 있다. 각각의 모니터엔 사람이 나와서 자신들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모두 같은 사람이다.)


OLED의 납작한 형태의 최신 기술의 TV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훨씬 선명하고, 비비드한 색감으로 백남준 영상 특유의 느낌이 더욱 튀어나올 듯이 움직일 것 같다. 하지만 브라운관 TV의 '통통함'이 백남준 작품의 느낌이다. 납작한 OLED화면을 그저 통통한 브라운관 TV의 화면으로만 대체한다면? 너무나 많은 수정이 가해진다. '많은' 수정의 범위는 또 어디까지일지.


위에서 본 회화 작품의 복원의 경우를 보면 원래 상태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보존 과학자들의 수많은 터치가 들어갔다. <다다익선>이라고 해서 왜 그렇게 수많은 터치가 닿으면 안 되는가?


실제로 백남준은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 이미 모니터의 수명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다익선>의 경우 모니터가 고장 나면 교체해도 좋다는 작가의 '허락'이 있기도 했다. <다다익선> 은 그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의뿐만 아니라 이후 예술 작품의 보존과 어디까지가 '작가'의 작품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우종덕 작가의 작품의 내레이션에서 작품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한다. 나를 담고 있는 넉넉한 브라운관은 어떻게 될까? 내가 거주할 곳은 어디일까? 탄생 당시에 비디오테이프에 담겼고, 이후 레이저 디스크, DVD 디스크를 거쳤다. 최종적으로는 클라우드에 올라가 있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선 2022년 9월 15일에서 2023년 2월 26일에 열린 <다다익선:즐거운 협연> 전시에서 우종덕 작가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전시는 <다다익선> 재가동을 기념한 아카이브 전시였는데, 이후 <다다익선>의 가동이 지속될 줄 알았는데 다시 멈춰버렸다. 나는 아직 영상이 틀어진 <다다익선>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수명이 다해가는 것이 모든 것의 운명이라는 걸 1,003대의 TV가 말해주는 듯하기도 하다. 또는, 내 마음대로 영상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이 1,003대의 TV에서 내 마음에 드는 영상을 틀어본다면?


IMG_8279.JPG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있는 가동되지 않는 백남준 1988 <다다익선>



IMG_8646.JPG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다다익선:즐거운 협연> 전시 중 일부




{C의 서재}


여기는 책들이 나열되어 있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발간한「 보존과학자 C의 하루」도록을 구입하였다. 도록도 무지하게 재미있다.


복원에서는 가역성이 없기 때문에 호환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보존과학자 C의 하루」p. 216). 복원할 때 원작의 재료와 성분이 호환되어야 하지만 무조건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같을 수도 없다. 예를 들면, 15세기 작품을 복원하는데 그때의 안료와 지금의 안료가 같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체사레 브란디라는 보존과학의 이론을 만든 미술평론가는 호환성이란 비단 화학적인 면만 말하는 게 아니라 기술적, 물리적, 역사적, 예술적인 부분도 포함한다고 말한다. 즉, 보존과학자들은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얼마나 예술작품의 정체성과 일치하는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사유해야 한다.



리움 미술관 프로그램에 보존연구실 투어가 있다. 프렌즈 멤버십으로는 투어에 참여할 수가 없더라. 다음엔 패밀리 멤버십에 가입해서 전시실 너머의 보존처리를 실제로 보고 싶다. 패밀리 멤버십은 일 년에 3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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