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 전시 : 호암미술관&간송미술관
2025년 대작 전시들이 예정되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기대했던 건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 전. 간송에서, 다른 미술관에서, 다른 박물관에서 한두 점씩 찔끔찔끔 보다가 이렇게 한 군데 모아서 볼 수 있다니 덕후의 가슴을 뛰게 한다. 간송과 삼성의 합작도 합작이지만,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애정 어린 태도를 가졌던 (부자) 수집가들의 만남도 의미 있어 보인다.
이 전시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호암미술관에서 2025년 4월 2일부터 6월 29일까지 열렸다. 2026년 하반기엔 대구 간송미술관으로 옮겨 개최될 예정이다.
2025년 4월 1일 멤버스 프리뷰로 방문하여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조건에서 관람했다. 이후 벚꽃이 만개한 4월 중순, 그리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던 6월에 두 번 더 방문했다. 다시 보고, 또 보고 싶은 정선의 그림들. 그의 눈을, 그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탐해본다.
전시는 1층에서 시작되어 2층까지 이어진다. 1시간 정도론 전시를 다 보기엔 부족하니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가는 게 좋다.
들어가자마자 놀랐다. 시작하자마자
국보 2점인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두 개가 말한다.
'이게 지금 프린팅 된 걸 걸어놓은 건가?'
제일 처음은 의심. 그리고 다가가서 보니 진짜다. 겸재 정선의 대표작 두 점으로 처음부터 올킬이다. 만약 시간이 진짜 없다면 이 두 점만 보고 나가도 되겠다. 결론이 빨리 나오는 두괄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주 속이 시원하다. 정선의 산수화에선 시원한 물소리와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는데, 전시 기획조차 시원하다니.
<인왕제색도>는 4월 2일부터 5월 6일까지 전시된다. 전시품 보호 차원에서 이후 <풍악내산총람>으로 바뀌어 전시되었다. 같은 전시라도 여러 번 방문해야 할 이유가 이런 것이다.
전시는 크게 6 부분으로 나뉜다.
1. 금강산
2. 한양
3. 명승지
4. 문인화
5. 화조영모화
6. 겸재 정선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
개념정리부터 해보자면, 실경산수는 관념산수와 대조되는 용어이고, 진경산수는 실경산수에 속한다.
실경산수 ↔ 관념산수
진경산수 ⊂ 실경산수
겸재 정선이 나오면 진경산수 장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진경산수는 "인상주의", "입체주의" 등과 같은 하나의 사조 이름이라고 보면 되겠다. 실재하는 경치를 그렸다고 해서 모두 진경산수화가 되는 건 아니지만 실경을 그리는 건 진경산수화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정선 이전에도 우리나라 산수를 그리는 그림은 있었으나(실경산수 장르) 진경산수는 겸재가 탄생 및 완성시켰다. 이는 후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많이 이들이 따르는 조선 후기 회화의 대표 사조가 되었다. 모네가 인상주의의 시작인 것처럼, 피카소가 입체주의의 포문을 열고 완성시킨 것과 같이 여기면 쉬울 것이다.
실경산수, 진경산수이기에 실제 풍경 앞에서 먹을 갈고, 종이를 펴서 그림을 그렸을까? 화가들이 야외에 이젤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험한 산행에 종이와 붓, 먹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을까? 물론 그랬을 수도 있다. 사진을 찍어서 담아 올 수가 없으니 빠르게 스케치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실재경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진짜 경치'라고 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 그림이 아니다. 정선은 자기 머릿속에서 경치를 재구성해서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경치보다 훨씬 더 멋있게 그림으로 남겼다. 지울 건 지우고, 과장할 건 과장하고, 축척상 맞지 않지만 한 화면에 넣고 싶으면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끌어와서 그리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테지만 보이도록 크게 그리는 등 다양한 예술적 변형을 가했다. 정선의 그림과 같은 구도를 볼 수 있는 위치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의 정보, 아름다움, 분위기, 소리, 향기, 정신까지 담아낸 정선의 그림이야 말로 '진정한 경치'의 진경산수가 되는가 보다.
한양 그림은 정선이 한양에 살았기 때문에, 지역 명승은 겸재가 지방 곳곳으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릴 수 있었다면, 금강산은 어떻게 갈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우리야 고속도로도 잘 뚫려 있고, 강릉까진 KTX 도 뚫려있고, 서울에서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그 옛날 서울에서 저 멀리 동해 고성까지 어떻게 갔을까? 더군다나 정선은 금강산을 한 번만 다녀온 게 아니지 않은가. (두 번 갔다.)
이건희 컬렉션 때부터 자꾸 돈 얘기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예술가도 사람이고, 사람은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간다. 하물며 멋진 경치를 보러 가고, 이런저런 재료들로 그림을 그리는 등의 행위가 잇따르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산수화가 만든 세계」 책에서 정선이 어떤 자본가의 덕으로 금강산을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실려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조선시대 '화가'라고 하면 중인 신분일 것 같지만 정선은 양반이었다. 벼슬을 할 정도의 능력은 안되었으나 사는 동네가 북악산 밑 장동으로 부동산의 입지가 좋았다. 무릇 사람은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법.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장동 김씨(안동 김씨) 과 옆집이었고, 이 집안의 유명인 중 하나인 김창흡을 스승으로 모셨다. 김창흡은 "금강산은 (중략) 두 번째 유람이 첫 번째 유람보다 낫다"라고 하며 여러 차례 금강산을 방문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자기는 예닐곱 차례 다녀온 사람이라는 자랑도 은근히 내비쳤다. 여기서 자본의 힘이 등장한다.
"김창협, 김창흡 형제가 금강산 유람을 시작한 1671년 무렵은 백부 김수증을 비롯한 장동 김씨 일족이 금강산 경유지인 북한강 변 주변을 비롯하여 강원도 화천 일대에다 장원을 확대하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에 이들의 부친인 김수항은 이조판서, 중부 김수흥은 호조판서를 지내는 등 장동 김문의 권세가 정점에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 (「산수화가 만든 세계」 p.179)
서울의 권세 높은 집안의 자제분들이 강원도로 여행을 온다시니 강원도지사는 특별히 좋은 호텔과 좋은 먹거리를 준비하라고 일러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길목에 있는 지역들의 시장, 군수들은 편의를 봐주었었을 것이다. 김창흡은 1679년 철원 삼부연에 별서를 마련하고, 1709년 설악산 영시암에 별서를 마련하는 등 아예 금강산 가는 길목에 집을 두었다. 그렇게 금강산 가는 땅이 자기 집안 소유지이고, 편하게 쉬어갈 수 있게 별장까지 마련했으니 금강산은 마치 장동 김씨의 앞마당과 같이 되었다.
1711년 장동에 이웃해 살던 그림 잘 그린다는 정선을 초청하여 금강산 여행을 갔다. 겸재의 첫 금강산 방문이었다. 이때 그린 화첩이《신묘년풍악도첩》이다. 이 신묘한 그림은 조선 선비들에게 '금강산 진짜 가보고 싶다'라는 욕망을 일게 만들었다.《신묘년풍악도첩》을 비롯한《관동팔경도》등은 콘텐츠로서 엄청나게 유행했다. 마치 유재석이 유튜브 콘텐츠로 나트랑을 다녀와서 나트랑 여행이 크게 유행한 것과 같다. 너무 유행이 되어서 모두 다 금강산을 가는데, 어떤 의민지도 못하면서 유행에 따라 산행을 간다며 '속된 일
'이라며 폄하했다. (내 생각에 이건 아마도 자기가 못 가니까 입 터는 질투였을 것이다. 만약 장동 김씨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금강산 가는 길은 매우 험한 여정이었을 테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는 숙종, 경종, 영조, 정조의 시대였고, 조선의 붕당정치가 기승을 부릴 때다. 무슨무슨 환국 등이 일어나서 어제 잡았던 권력도 내일 빼앗기던 시기였다. 노론이었던 장동 김씨와 붕당이 달랐던 사람들이 금강산을 많이 못 가지 않았을까.)
겸재의 스승 김창흡은 좋은 산과 물을 찾아 사색해야 좋은 시를 쓴다는 문예론을 가지고 있었고, 제자 이병연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이병연과 겸재 정선은 함께 핫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제작자였다. 당시 그림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그렸고, 시 제일 잘 쓰는 사람이 시를 곁들인 화첩들은 많은 문인들에게 읽혔는데, 1740~1741년 만들어진 이병연 시, 정선 그림의 《경교명승첩》이 그것이다. 이규상은 <병세재언록>에 "당시에 시로는 이사천(이병연), 그림으로는 정겸재(겸재 정선)가 아니면 치지도 않았다"라고 적기도 했다.
1716년 정선은 김창흡의 형 김창집의 추천으로 40세 즈음 관직을 얻었는데, 관직을 얻게 된 것도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이다. 공무원 프리패스가 될 정도로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다. (여기서도 '잡기로 입신양명' 했다며 파면을 요구하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겸재는 금강산 그림으로 금강산 기행을 유행시키더니,《장동팔경첩》그림으로 인왕산과 북악산 동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정조까지도 정선의 그림으로 유명해진 인왕산 밑 청풍계를 최고의 경승지로 꼽았다. '인플루언서' 정선은 전시 마지막 부분에 겸재에게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진경산수는 조선 후기 회화의 대표 장르가 되었고, '겸재 일파'라고 부를 정도로 진경산수에 매진한 화가들도 나온다.
또, 남아있는 겸재의 작품이 이렇게 많다는 것만으로도 인플루언서 겸재의 면모가 보인다. 정선의 그림을 한 점이라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주문이 밀려들었다. '와유문화'는 '누워서 경치를 즐기는 문화'인데 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 경치를 보러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다. 현생을 사느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어려워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집에서 보는 거랑 비슷하겠다. 유람 문화도 유행했지만, 와유 문화가 전개되면서 집 안에 걸고 싶은 그림으로 정선은 더욱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인기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전쟁에도 살아남은 그림들은 얼마나 소중한지. 그 험한 세월을 뚫고도 살아남은 그림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정~말 정선이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뜻일 것이다.
이 전시는 겸재의 문인적인, 천재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전시이기에 세속적인 이야기들은 감추어져 있다. 또, 구구절절 깨알 같은 글씨들로 겸재의 삶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전시가 아니다. 아주 담백하게 작품들만 나열해 두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좋았다. 성격상 '왜?'라는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위와 같은 이야기를 공부하며 정리하기도 했지만, 사실 정선이 금강산에 갈 수 있었던 건 단순히 권세가와 옆집에 살아서 때문만은 아니다.
정선의 그림을 보면 이 사람의 엄청난 재능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 시대치고 84세까지 장수한 정선은 70세 중반의 노령에도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리고 그의 그림 실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대단해졌다(미술가들을 보면 60~70대에 최고의 그림을 그리더라. 이 얘기도 언젠가 써보고 싶은 주제이다.)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아무도 따라갈 수 없다. 그렇게 겸재는 자신이 창안한 진경산수 예술의 정점을 찍었다. 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존경받는 사회가 아니었는데, 본인의 기량과 열정으로 입신양명까지 하고, 다양한 문화를 유행시키며,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위대함을 전하고 있는 수준 높고 창의적인 업적을 남긴 대단한 사람이다.
정선은 72세가 되어 노구를 이끌고 금강산을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찾는다. 처음 금강산을 방문했던 게 36세, 딱 그만큼 더 살고 금강산을 다시 갔다. 정선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과 자신이 좋아했던 <주역>의 철학을 담아 또 하나의 그림첩을 완성시키니 바로《해악전신첩》이다. 바다 해, 산악 할 때 악이고, '해악전신'이란 바다와 산의 정신을 옮겨왔다는 뜻이다. 36년 전 그렸던 《신묘년풍악도첩》보다 훨씬 완숙된 모습을 보여준다.
호암 미술관 자체가 담고 있는 공간의 특성과 전시 내용이 잘 어우러져서 더 좋았던 관람이 되었다.
1. 금강산
2. 한양
3. 명승지
4. 문인화
5. 화조영모화
6. 겸재 정선의 영향을 받은 후배 화가들
이렇게 6 부분으로 나눈 전시 기획이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겠지만, 정선 작품들이 한꺼번에 모아져 있는 상황에서 통틀어 보는 데에 있어 좋은 분류이지 않을까 싶다. 중간에 있는 두 개의 미디어 아트는 퀄리티도 좋았고, 길이도 딱 적당히 쉴 만했으며 타이밍도 좋았다. 그리고 정선 그림의 최고봉인 금강산에서 시작해서 후배들 작품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좋다.
장동 김씨(16세기 이후 서울에 세거한 안동 김씨 가문을 일컫는다.)는 풍양 조씨, 여흥 민씨와 더불어 조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세도정치의 주범들이다. 또, 1910년 경술국치에 기여한 공으로 장동 김씨 후손들은 일본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훗날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긴 장동 김씨 집안 덕분에 그림을 그린 겸재 정선, 그런 일제 강점기에 기와집을 팔아 정선의 그림을 사모았던 간송 전형필. 그림에 담긴 이야기는 이렇게나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 개인소장인 작품들도 많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들엔 어떠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18세기 그림들은 어떤 여정을 거쳐 그들에게 닿았을까. 미술품이 담고 있는 역사 하나하나가 궁금해진다.
또한, 자본과 문화의 관계도 사뭇 흥미롭다. 18세기 중반 조선 최고의 권력가였던 장동 김씨 집안은 재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제작하며 문화를 창조했고 퍼뜨렸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대 기업 삼성가는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을 통해 동시대 문화를 주도하며 문화권력을 뽐내고 있다. 예술로 승화시켜 전달되는 의미들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주시해야 하겠다.
'지나간 뒷북 전시 리뷰가 아니라 드디어 실시간으로 열리는 전시에 대한 글이다.'라고 쓰려고 했지만, 역시나 지나간 전시가 되어버렸다. 미술관을 다녀오고, 그것들에 대해 곱씹는 시간은 30배는 더 걸린다. 설악산과 금강산 이야기, 정선의 문인화 이야기, 정선의 그림 기법, 아모레퍼시픽 <조선민화전>에서 본 금강산 그림에 대한 이야기 등등 공부할 게 많아서 재미있다.
참고문헌 :
「산수화가 만든 세계」 조규희, 서해문집, 2022년 : 문화와 권력의 관계에 얽힌 이야기들, 산수화에 얽힌 비하인드가 아주 재미있다.
「옛 그림을 읽는 법 -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 이종수, 유유, 2017년 : 정선의 <만폭동> 그림을 기둥으로 삼아 동양화, 그중에서도 특히 산수화에 대해서 입문자를 쉽게 길잡이 해주는 좋은 책이다.
「간송미술 36:회화」백인산, 컬처그라퍼, 2014년 :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회화 중 걸작 36점을 꼽은 책인데, 그중에 5점이 정선 작이다.
「겸재정선」 호암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2025 : 약 560쪽의 두꺼운 이번 전시 도록이다. 정선 그림 도판이 잘 담겨있어 소장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