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윤석남전시, 역사를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by 정여해

< 윤석남 :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 학고재 갤러리

「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 윤석남 그림, 김이경 글


책.jpg


글과 그림, 출판과 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학고재 갤러리에서 책과 함께 전시를 보고 씁쓸하고도 슬픈, 뭐라고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지고 쓴다.


# 한 줄 추천평 : ★★★★★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사의 '빈 곳'을 메운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그곳에 당당히 주역으로 있었다.


# 읽기 쉬는 정도 : ★★★★★ 1인칭, 3인칭, 편지, 일기, 인터뷰 등의 다양한 형식을 사용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남성 중심의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윤석남 화백의 붓을 통해 양지로 나왔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윤석남의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전이다. 이번 전시는 남자현 열사를 비롯해 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 알렉산드라, 김옥련,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 등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화와 대형 설치작업 ‘붉은 방’이 있다.


윤석남 작가는 1939년 중국 만주에서 태어나고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페미니스트 화가 1세대’라고 불린다. ( 하지만 윤화백은 '대모’라는 수식어를 두고는, 모든 집단에 가족주의적 비유를 사용하는 관습을 거부하자고 했다. < 역사의 뒤안길에서 찾아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얼굴 >, 세계일보 ) 이번엔 14인의 초상화가 오프라인 전시에 나왔지만, 100인의 초상을 완성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작업의 특성상 자료가 많지 않아 쉽지 않겠지만 힘닿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화백의 의지는 이곳에 걸린 초상화의 주인공들과 같이 느껴졌다.


윤화백은 조선시대 초상화를 공부하며 여성 초상화가 거의 없음을 깨닫고 '여자들이 이렇게나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것도 없는 나라를 위해 왜 총을 들고 목숨을 걸고 저항했을까, 그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한 윤 화백의 생각을 옮겨보면,


이 여성들의 의기는, "나도 사람이다. 나도 이 나라의 당당한 백성이다. 나라를 찾는 데 여성, 남성의 차이는 없다" 하는 깨달음에서 자연적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을 당당히 찾는 것', 이것은 바로 총을 들고 일제에 대항한 여성들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윤화백은 다음 초상화의 주제로 '여성 독립운동가'로 정했다. 윤 화백은 100인의 성별이 여자인 독립운동가의 초상을 완성할 예정인데, 왜 이 14인이 처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책에 그 답이 나와있다. '가능하면 활동한 시기와 지역, 가정환경과 직업, 운동 방식 등이 저마다 다른 이들을 소개하려 애썼다.' 글과 함께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작가와의 협의를 통해 첫 14인을 정한 것이다.


전시1.JPG


그림은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전신 초상화다. 옷과 소품들은 그분들의 업적과 연관되어 그려졌다. 이러한 전신 초상화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는데, 대부분 독립운동을 하느라 어려운 생활을 하셨던 분들이 이런 전신 초상화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그분들께 헌정하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러리를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느낌이 들었다. 갤러리 안은 그분들의 눈빛으로 밝혀지는 느낌이었다. 윤석남 화가가 가장 신경 쓴 게 눈, 그다음이 손이라고 한 만큼 초상화의 눈빛은 강렬하고 매서웠다. 위대한 자들의 눈빛이란 그들의 정신력이다. 예전에 서대문형무소에서 본 수형번호와 함께 찍힌 형무소에 갇혔던 사람들의 눈빛 바로 그것이다. 그 눈빛이 너무 좋아서 엽서 크기로 나온 사진들을 내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데에 뒀다. 내가 힘이 빠질 때 바라보면 그 눈빛에서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짓밟아서 없애버리고 싶었을 테지만 사라지지 않는 '안광'으로 조선, 만주, 연해주 곳곳을 밝혔던 위대한 선열들이다. 가로 1m, 세로 2m의 대형 전신 초상화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분들의 눈빛에 움츠려 드는 건 내가 당당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보세요! 당신의 후손이 이렇게 당신들을 기억하고, 기리고 있어요!'라고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어서 이다.


"평양 출신이고, 공산주의 노선을 따랐기 때문에 후손들은 당신을 독립운동가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바라던 조선은 아직도 친일 잔재로 멍들어 있고, 그 자손의 자손들이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나라입니다. 당신들이 바라던 조선은 아직도 없어요. 죄송합니다."


후손으로서 해야 할 의무 중 하나가 기억하는 것이라는 것은 나의 오랜 신념이다. 특히,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이 독립에 몸 바친 분들에게 '후손인 내가 당신을 기억한다' 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분들은 자신이 독립운동가 인지도 모르고 돌아가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일이라도 독립을 위해 희생을 하셨던 모든 분들은 우리들에게 기억되어야 마땅하고,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면 존경한다고 큰절을 올려야 한다. 기억해주고 싶어도 이름도 얼굴도 없는 분들이 많은데, 윤석남 화가의 노력 덕분에 얼굴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




붉은 방은 '방' 시리즈를 하고 있는 윤화백의 설치작 '붉은 방'이다. 나무에 이름도 얼굴도 없이 아스라이 사라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추상해 그렸고, 벽은 그들이 흘린 피를 상징하며 붉은빛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오른쪽 구석엔 거울이 있다. 우리를 돌아보라는 뜻일까? 과거에 계셨던 분들이 거울에 반사되어 현재로 되돌아오는 느낌이기도 하다.


붉은방.JPG

'위대한'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그들을 너무 우리와는 다른 '위인'이라는 반열에 올려놓는 것 같다. 위인이 되면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분이 되어 버리고 우리는 저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경계를 지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위대한' 분들을 어느 정도 가까이서 한 1m의 거리에서 우리와 나란히 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시선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붉은 방'의 거울은 그 거리를 좁혀주는 느낌도 준다.


국가보훈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0여 년 동안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이는 모두 1만 5825명, 그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472명에 불과하다. ( <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부활…윤석남 작품전 > , 경향신문 ) 분명히 많은 여성 독립 운동가가 있었을 텐데, 왜 그들은 묻혔을까? 누가 묻었을까? 생각해봄직한 문제이다.


이에 관련한 기사가 있어 첨부한다.


< 300만 독립운동가 중 1만5000명만 서훈… 여성은 2.4% 그쳐 > -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2270799796471



전시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