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독립운동가
1910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부산에 박차정 의사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학생 때부터 일제에 저항한 역사가 가득하다. 항일 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에서 핵심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했고, 감옥 생활도 자주 하였다. 독립운동가로서 뿐만 아니라 부인 노동자 임금 차별 철폐와 같은 여성운동을 한 여성운동가이다.
1930년 1월 서울 11개 여학교가 시위를 벌인 ‘근우회 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여러 갈래로 나뉜 독립운동 세력을 통일한 단체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여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을 조직하는데 힘썼다. 조선민혁당과 별도로 여성 통일전선 조직 난징조선부녀회를 결성하여 여성이 주체가 되어 주도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여기 난징조선부녀회 선언문에서 박차정의 역사 인식과 여성으로서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조선 여성은 오랫동안 전통적 속박에 의한 가정의 노예일 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주의 약탈 시장의 상품으로 임금노동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봉건제도의 속박, 식민지적 박해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또 일본제국주의가 타도된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혁명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방면에서 진정한 자유, 평등의 혁명이 아니라면 우리는 철저한 해방을 얻지 못한다.' - 1936년 남경조선부녀회 선언문 中 -
여성 해방을 얻기 위해선 민족 해방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민족 해방이 된다고 해서 그게 곧 여성 해방의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박차정 의사는 잘 알고 있었다.
1938년 조선의용대에서 무장 투쟁에 참여하였고, 1939년 일본과의 전투에서 총상 후유증으로 1944년 충칭에서 병사하였다. 묘는 현재 밀양에 있다. 독립유공자 박문희·박문호가 오빠들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과 결혼하였다. 김원봉이 해방 이후 월북하였기 때문에 그의 아내였던 박차정 역시 거론이 금기시되다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박차정 의사에 대한 글을 보다 보면 항상 그녀의 아빠가 1910년에 자살한 것, 친오빠들도 역시 독립운동가 인 점, 김두봉의 조카, 그리고 약산 김원봉의 부인인 것이 먼저 나온다. 물론 약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하기 때문에 박차정 의사를 잘 설명하기 위해 유명인의 아내라고 지칭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성의 무엇으로서 한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의 삶이 관계를 벗어나서 홀로 있을 수는 없다지만, 인간 박차정에 대해 탐구할 때조차도 가장 먼저 그녀의 남자 친족들과 남편이 먼저 거론되는 것이 아쉬웠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밀정>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김원봉은 위대한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남편이다'로 설명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총을 들고 전투와 선전 활동의 주역이었던 박차정 의사. 존경하고 진정 멋있는 G리는 언니이다.
박차정의 일생에 관한 자세한 뉴스 기사가 좋아 첨부한다.
[3·1 운동 100주년 연중기획-독립운동가 열전 <삶과 넋> 27] 박차정, 여성해방도 민족해방도 일제 타도로부터 : 매일노동뉴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254
약산 김원봉과 박차정 의사의 의열단에 대해 궁금하다면 의열단 관련 특집 기사를 쓴 newsis 기사를 보면 좋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191027_0000811043
여성운동가로서의 박차정에 주목한 글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