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빛이 닿는 곳에서 나는 살아가요

by 여휘

나는 쉽게 자라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사랑에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죠. 마음속으로 씨앗을 품었다가도 얼마 가지 못하고 이내 숨어버리고 말았어요. 내가 정말 이 사람에게 기대고 의지해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날들 속에서 그저 한없이 웅크린 채로 언제가 나에게도 싹 피울 날을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마음의 싹이 자란다는 건 애써 애쓰는 일이 아니라 그저 햇살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걸요. 나는 당신 곁에서 조금씩 숨을 고르게 되었고 그러자 나는 싹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는 또 깨달았어요. 나는 셀 수도 없이 무수히 피어나는 들꽃이었다는 사실을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이 떠올라요. 특별한 말이 오간 것도 아닌데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이상하게 가벼워졌어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홀가분한 느낌이었달까요? 그때는 몰랐어요. 나는 그 순간마다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는 걸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천천히 하지만 아주 분명히요. 따뜻하고 포근한 햇빛 아래에서는 꼼짝없이 자라날 수밖에요.


나는 여전히 완전한 사람이 아니에요. 가끔은 이유 없이 작아지고, 아직도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들이 찾아와요. 그래도 이제는 알아요. 그런 나라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요. 당신이 나를 끌어올리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향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게 되었어요. 당신은 단번에 나를 바꾸진 않았어요. 대신 나를 조금 덜 두렵게 많들었어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괜찮을 거라고 믿게 만들었어요.


오늘도 조용히 생각해요. 지금도 자라는 중이라고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리가 나지 않아도, 당신이 비추는 방향으로 천천히요.


당신의 햇살 아래에서, 나는 자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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