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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 안내자 혜연 Nov 13. 2020

세상의 절반은 여성, 여성 VC는 7%. 책임감 느끼죠

스여일삶 인터뷰 시리즈 '스파크랩' 심사역 이희윤 이사님


tvN 토일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스타트업을 차에 비유한다면, 여러분들의 차는 멈춰 있거나 일단 출발은 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잘 안 나가고 있다’며 ‘샌드박스는 여러분이 밟는 엑셀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이야기로 엑셀러레이터에 대한 소개가 있었는데요. 


드라마 속이 아닌 현실에서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교육하여, 성장 과정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심사역으로서의 이희윤 이사님을 1편에서 담았다면(링크), 2편에서는 어떻게 엑셀러레이터라는 직무를 시작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어떤 성장 단계로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요.



tvN 드라마 <스타트업> 샌드박스 입주자 선발 테스트 현장



지금은 엑셀러레이터, VC에 대한 인지도가 있지만 희윤 님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는 익숙한 분야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준비하게 되셨나요?

이제는 대학교에 가면 엑셀러레이터나 VC를 대부분 알고, 이 분야로 커리어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아졌지만 저는 사실 이 직업에 대해 전혀 몰랐었어요. 어떻게 보면 알고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전공을 공부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첫 시작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대학 때 사회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두 학문을 공부하며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요. 사회학에서는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구조적인 문제나 계층 간의 갈등과 문제점을 비평적으로 바라봐요. 반면에 경영학은 경영 활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자원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까 마치 ‘평등'과 ‘공평’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해석되는 것처럼 두 개의 학문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식이 충돌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디딜 때가 2012년이었는데 그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이슈화되고 태동하는 시기였어요.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도 커져가고 있었고 많은 기업에서 CSR 부서가 생겨나고 있었어요. 저는 경영학과 사회학 두 분야가 맞닿는 CSR 분야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현대중공업에서 CSR에 공헌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들었고 초기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 



전공에서 시작된 고민이 CSR 분야로 첫 진로를 이끌게 된 거네요. 기업의 CSR 재단에 들어가서 하시게 된 일이 어떻게 스타트업으로 연계되었는지 궁금해요

아산나눔재단이 신생 재단이다 보니 많은 일들이 열려 있었고 그 과정 속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2년 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창업 지원과 마루 180 기획을 시작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밀접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죠. 아산 나눔 재단에는 제2의 정주영을 양성하자는 비전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창업경진대회도 하고 마루 180 기획도 하고요.

 

무엇보다 현대 계열 기금을 출원받아 설립된 재단이다 보니 초기 자금을 더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해 초기 기업에 간접 투자를 하는 출자사업도 했었어요. 그때 알토스, 스톤브릿지와 같은 곳에 출자 사업을 하며 VC 분들을 알게 되었고, 투자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커리어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서 단계 단계 밟아 간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회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 길을 열심히 가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스타트업도 그렇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업의 CSR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활동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앞에 누군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심히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것 같아요. 



아산나눔재단 재직 시절, UNV (UN Volunteers)가 있는 독일 본에서



스타트업이나 창업 생태계에 대해 일을 하면서 배우신 거네요. 새로운 분야라 사회 초년생으로서 더 어려울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스타트업이나 창업 생태계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용어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테크크런치를 알게 되어 기사를 읽었는데 용어를 익히는 데도 오래 걸렸어요.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고 직접 관련 분야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면서 공부했어요. 모임도 많이 가고 현장에 부딪혀하는 공부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배우고 학습하고 경험하는 시간이 필요했죠.


재단에서 5년을 일했는데 매해가 달랐어요. 시도했다가 없어진 사업들도 많아요.(웃음) 창업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아산나눔재단이 지금의 역할을 갖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도가 있었어요. 새로운 일의 연속이었고 매 해 재단도 저도 성장하며 다른 걸 시도했어요. 


첫 해에는 크고 작은 사업들을 많이 했고, 2년 차에는 마루 180을 기획하기 위해 각종 생태계를 공부하고 모델을 만들고 그러면서 이런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기 위해 많은 분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스타트업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캡스톤파트너스, DSC인베스트먼트, 스파크랩, 퓨처플레이를 입주사로 선정하기 까지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마루 180을 기획할 때는 건물을 지어보고 관리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건축학도처럼 학습하며 일을 했죠. (웃음) 마루 180을 짓기 위해서 건축 현장에 있다가 그다음 해에는 펀드 관리를 해야 했고 펀드에 대해 간접 투자에 대해 공부했어요. 매해 달라지는 역할에 따라 끊임없이 공부했던 것 같아요.  



2년 차에 기획하게 된 MARU180은 한국 최초의 스타트업/액셀러레이터/벤처캐피털 집합의 코워킹 스페이스라고 회자되는데요. MARU180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마루 180을 기획할 때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한국에 상륙하기 전이라서 대학에서 운영하는 인큐베이터만 있는 상황이었어요. 인큐베이터와는 다른 더 나은 창업지원 공간을 만들자는 이니셔티브는 있는데 ‘그럼 어떻게?’라는 게 있었어요. 


스타트업 하면 실리콘밸리를 많이 떠올리는데요. 실리콘밸리에는 인큐베이터보다는 엑셀러레이터나 투자와 같은 전문적인 역할이 주요했어요. 주변의 인프라나 각종 세계적인 기업들이 모여있다 보니 거기서 나오는 인력들로 인해 능동적으로 성장하는 생태계가 갖춰져 있었죠. 반면에 우리는 후천적으로 이런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했어요. 실리콘밸리와 다른 환경에서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필요한 요소가 뭘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어요. 


당시 LA, 실리콘밸리, 뉴욕, 런던 등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그중에 런던이 한국이랑 환경이 비슷했어요. 런던도 후천적으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그러한 공간이 구글에서 하는 캠퍼스 런던이었어요. 

국내 스타트업 환경이 후천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런던과 닮아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구글 캠퍼스 런던의 어떤 부분에 영감을 받으셨나요? 


클러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우연한 만남을 계속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진다는 세렌디피티에 의한 힘을 믿었죠. (웃음)  전략적으로 그러한 환경을 구성할  수 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채워 넣으려고 했어요. 


아이디어 단계의 회사들이 가볍게 핫 데스크만 놓고 시작할 수 있는 공용 카페, 성장 단계에 있는 회사가 중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교육하고 데모데이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는 엑셀러레이터, 후속 투자를 하는 VC까지 선정해서 입주를 시켰어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드는 공간이 되고 한 번 왔다가도 자연스럽게 네트워킹이 생기고 예기치 않은 세렌데피티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했죠. 



아산나눔재단에서 희윤 님의 5년이 정말 의미 있게 느껴지는데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을 하셨는데요.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나요?

아산나눔재단에서 펀드를 운영하며 스파크랩 대표님들과 인연이 되었어요. 이런 분들과 일하면 정말 재밌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스파크랩에서 코워킹 스페이스 스파크플러스를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스파크플러스 운영도 초기 멤버로서 창업을 하는 것 같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투자 쪽으로 커리어를 확장시키는 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조인을 결심하게 됐어요. 대표님들도 제가 마루 180 기획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주시게 되었죠. 조인 후 스파크플러스 1호점에서 4호점까지 확장하는 것까지 하고 스파크랩으로 오게 되었어요. 지금은 16호점이 되었으니 제가 나온 이후에 더 빨리 컸죠 (웃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일을 하면서 비영리로 일하는 것과 영리로 일하는 것의 확실한 차이를 느꼈어요. 공간을 운영하는 방법은 동일할 수 있지만  운영 자금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서 사용해야 하는 게 달랐어요. 스파크플러스는 필연적으로 스케일업을 해서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낮춰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확장에 가장 용이한 체급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창업가의 이상에 반해서 지금 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대기업은 내부적인 생태계 자체가 크기 때문에 거기서 서바이벌하는 것 자체가 전부로 보일 수 있는데 스타트업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거야, 뭔가를 바꿀 거야’라고 감히 얘기를 해요.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게 정말 멋있었어요. 


내가 내 룰을 정하고 새로 판을 깔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환경이면 나도 더 건강하게 발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저는 조직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그다음이고 일단 이 동네에서 일하자 이렇게 결정했죠.



스파크랩에서 프로글매팀 동료들과 함께



일에 대한 설렘이 그대로 느껴지는데요. 그럼에도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는 여성 심사역이 매우 적은 편인 것 같아요. 실제 체감하시나요?

기등록된 전문인력 중에는 고작 7%가 여성이라고 해요. VC업계에서는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인력이 선호되다 보니, 이공계열 출신이 많은데요. 학교에서부터 이공계열이 여성이 적은 집단이다 보니 이 같은 귀납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또한 신규 채용에 있어서도 공개채용보다는 경력직/지인 추천으로 이뤄지다 보니, 기존 집단의 남성인력이 동성의 지인을 추천하면서 오는 네트워크의 한계성도 있고요.  


그럼에도 평소 일할 때는 제가 소수(?)라는 인식을 미처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경쟁이 치열하고,  수많은 투자자들 중에 나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업계에서 유리한 부분도 있었고요. 다만 올해 승진하면서 ‘여성으로서 임원으로 내부 승진하는 선례가 나와  진심으로 기뻤다’는 여성 동료들의 응원 메시지들을 받아서 비로소 체감하게 된 것 같아요.



아직 수적으로는 적지만 조금씩 여성의 활약도 커질 것으로 기대되네요. 희윤 님이 느낀 여성 심사역의 강점이나 여성들이 창업 지원 기관의 매니저나 심사역에 도전하고 싶을 때 어떤 부분을 준비하는 게 좋을까요?

너무나 당연하게도 세상의 반은 여성이에요. 여성은 여성이 소비의 주체가 되는 서비스와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죠. 스타트업은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에서 기회를 잡거나 변화를 주도하곤 해요. 그러다 보니 큰 틀에서 산업의 흐름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구성원과 소비자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좀 더 섬세한 시각과 공감력을 지닌 여성이 경쟁력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날 한국시장과 소비자 인식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젠더 감수성, 환경과 지속 가능성 등 살펴볼 것이 많아졌죠.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나만의 견해를 쌓아보려고 하는 것에서 좋은 자산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를 브런치든, 핀터레스트든 아카이빙을 해보면 이직이나 취업지원 시 좋은 포트폴리오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아카이빙의 취지로 저는 퍼블리뉴스 큐레이터를 하고 있어요 (웃음)



새로운 분야의 일을 지속적으로 도전하려면 평상시 학습량도 많을 것 같아요. 희윤 님은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하시나요? 

제가 활자랑 친한 타입은 아니에요.(웃음) 다만 피어 프레셔를 많이 받는 타입이에요. 스스로 자가발전을 열심히 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일부러 도전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책을 읽는 방법보다 먼저 관련 분야의 사람한테 밥을 먹자고 해요. 너무 무지한 상태로 만나면 안 되니까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다음부터 공부를 시작해요. 공부를 일차적으로 한 후 만남을 통해 실질적인 경험을 하신 분들의 체화된 지식을 한 번 더 듣는 것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신기술이나 지식은 세미나에 참석하는 방법으로 공부하기도 해요.



스타트업의 성장을 이끄는 일인 만큼 번 아웃되는 순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하고 있으세요?

사람 때문에 충전되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지치기도 해서 사실 올해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보다는 오래된 사람들과의 만남,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집중하고 있어요. 



희윤 님이 직접 요리한 음식 사진들



그리고 저는 요리와 등산을 좋아해요.  매일같이 수많은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지만, 각각의 스타트업의 생애에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요리는 원재료부터 요리를 하는 과정 플레이팅이 되는 완성까지 처음과 끝을 온전히 제 것으로 할 수 있는 취미라서 즐겨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그 자체로 시작과 끝이 완성되는 완결감을 주기 때문이죠.




토요일 오후 스파크랩 사무실에서 (좌) 신연선 에디터 (중) 이희윤 이사 (우) 김혜연 에디터



여성이자 비전공자로서 비영리기관의 재단 초기 멤버에서 엑셀러레이터 심사역이 되기까지 새로운 분야에 거침없이 도전해 나가는 희윤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커리어의 성장 또한 도전의 문 앞에서 뒷걸음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스파크랩의 토요일 오후는 스파크랩 데모데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평일처럼 에너지가 넘쳤는데요.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애쓰고 있는 현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창업가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 담고 있는 모든 분들을 스여일삶이 응원합니다.





인터뷰: 스여일삶 에디터 김혜연, 신연선 / 사진 : 이희윤 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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