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탈락? 오히려 좋아!

개강 1주일 앞두고 대학생 단기 임대 구하기

by 임시저장

지난 금요일 아침 10시, 4학년 올라가는 대학생 딸의 기숙사 신청이 있었다. 전날 밤부터 내일 아침 10시라고 가족들에게 공지를 하며 혹시라도 늦잠을 자면 깨워 달라고 했다. 무사히 일어나 심호흡+스트레칭을 하며 30분 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걸 분명히 봤는데, 10시가 한참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무슨 일인가 하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여다봤다. 사정인 즉, 10시 정각에 바로 접수를 시작했는데 한 번 에러 메시지가 뜨더니 그다음부터는 마감되었다는 메시지만 뜬다고 한다. 너무 허망한 나머지 하릴없이 계속 다시 지원서를 쓰고 제출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이고.... 이런...


확인 차원에서 학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보게 했다. 다행히 아이는 감정을 잘 다스리며 자초지종을 말하고, 혹시 다시 한 번 추가 신청이 있을지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안타깝게도 주변의 오피스텔을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고학년이 되고 집이 학교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바람에 기숙사 우선 순위에서 밀렸고, 지금까지 늘 기숙사에서 지냈으니 이번에도 추가 신청만 믿고 기다리던 딸이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자신에게 화가 나고 억울하고 짜증스러워도, 일단은 빨리 지낼 곳을 찾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개강은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네이버 부동산에 검색을 해보니 매물도 별로 없지만 가격이 후덜덜했다. 오피스텔 보증금이 억대이거나 월세 백만 원이 넘는 것들뿐이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최소 1년 계약을 해야 하는데, 침대며 책상이며 아무것도 없는 빈 집을 얻어서 어찌한 단 말인가. 한 학기만 지내려면 단기 임대가 좋겠다 하여 검색하니 딱 두 건이 나와 있지만 전화를 해보니 이미 나갔거나 3월 말에나 입주가 가능하단다.

마침 휴가이던 애 아빠가 학교 근처 부동산에 직접 가보자고 하여 세 식구가 같이 길을 나섰다. 학교 근처 2,000세대가 넘는 오피스텔 단지로 갔더니 부동산은 즐비했다. 그런데 한 학기 지낼 단기 임대를 문의하니 1초 컷으로 그런 매물은 없다고 했다. 길 건너 부동산도 마찬가지로 그런 매물은 없단다. 심지어 월세도 없다고 쐐기를 박는다.


슬슬 짜증과 분노가 솟구쳐 올랐지만,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면서 다시 부동산 검색에 들어갔다. 내가 화낸다고 좋아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정도의 성숙함을 갖췄다는 사실에 스스로 진심 놀랐다) 남편은 학교에서 더 먼 곳에 있는 오피스텔 밀집 지역을 찾아보고, 아이는 단기 임대 전문 어플을 다운 받아 찾아보도록 했다. 셋이 서로 다른 검색을 했는데, 결국 겹치는 선택지는 학교에서 지하철로 4개 역 떨어진 곳에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이었다.


생활형 숙박시설은 줄여서 생숙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인 주거와 여행객의 숙박이 모두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그래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개월씩 머무르며 이용할 수 있다. 밖에서 보면 일반적인 오피스텔 빌딩이지만, 침대를 비롯한 기본 가구와 냉장고, 세탁기, TV 등 필수 가전, 조리 시설과 주방 용품까지 갖춰져 있다. 한 학기 자취를 하기에는 오피스텔보다 오히려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등록된 번호로 전화를 하니 고맙게도 멀리 계시던 중개인이 달려와서 두 개 호실을 보여주셨고, 다른 부동산에서도 추가로 하나를 더 보여 주셨다. 중개인 분들은 근처 대학에서 기숙사 탈락한 학생들이 이곳에 많이 산다면서 나름 위로를 해주고, 통학 방법도 자세히 안내를 해주셔서 크게 위안이 되었다.


호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했다. 가구와 TV 등의 크기와 사양이 좀 다르고, 한곳은 침대 매트리스가 없어서 구매를 해야 했다. 아이는 어느 방을 골라도 기숙사보다 훨씬 좋다며 얼굴이 환해진다. 그래서 별 고민 없이 냄비에 프라이팬, 국자에 수저까지 최대한 갖춰져 있는 곳으로 골랐다. 아무래도 이사를 들고 나기가 수월할 것이다.


가격은 다 거기서 거기. 보증금 100만 원~200만 원에 월세가 70~75만 원 선이었다. 관리비는 어느 호실이나 다 월 15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하고, 이사 나올 때 청소비가 15만 원이라고 한다. 기숙사도 공짜는 아니니 4개월에 추가로 드는 돈은 200만 원 정도이다. 마지막 달인 6월에는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 월세를 일부 돌려받을 수도 있다.


계약서를 쓸 때는 문득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딸 이름으로 진행하게 했다. 가계약금도 자기 통장에서 직접 부동산에 송금했다. 입주하는 날 서류에 서명하고 열쇠 넘겨받는 것도 모두 딸이 진행할 것이다. 어느덧 대학 졸업을 앞둔 나이. 언제까지 내가 보호자일 수는 없으니, 점점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넘겨주어야 한다. 학교 밖에서 자기만의 둥지를 트는 일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마일스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경험과 기회를 얻는데 200만원이면 상당히 괜찮은 가격이다.


전광석화처럼 계약을 마치고 나서 함께 동네를 둘러보았다. 순서가 한참 잘못되기는 했지만, 급한 불을 먼저 끄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숙소에서 지하철역까지 5분 이면 되겠고, 지하철로 학교까지는 네 정거장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까지 가는 길은 번화한 상권이라 식사도 해결하고 기분 전환도 충분히 될 것이다. 숙소가 지하철 종점과 가까운 곳이니 운 좋으면 아침에 앉아서 갈 수도 있겠다. 서서 가더라도 네 정거장쯤이야 나쁘지 않다.


학교 근처로 이동하여 식사를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식욕이 전혀 없다. 소고기를 씹고는 있는데,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기숙사에 떨어지는 바람에 아이는 한 단계 더 어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옆에 앉은 딸이 자기 이름으로 부동산 계약서를 쓰는 어엿한 성인이라니! 하루 종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느라 힘들었지만, 결국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내 기억에 깊이 새겨져 오래오래 되새김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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