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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Dec 04. 2023

남편이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것도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서요.

사기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다른 세상 일인 줄 알았다.

티브이에서나 볼 수 있는 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기의 기미는 이미 예전부터 보였다.

분명 돈을 준다고 했는데 그날이 되면 무슨 일이 생긴다.

우연이 겹치는 것 치고는 너무나 겹친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프고 사고가 나고 돈을 받기로 한 채무자나 투자자가 갑자기 죽거나 그 사람의 가족이 죽는다. 한 가지 일만 일어나기도 힘든데 그런 일이 매월 발생한다.


그러면서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돈을 주기로 한 액수도 점점 불어 간다.

200만 원... 300만 원... 천만 원... 2천만 원... 결국 최종적으로 3800만 원.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액수가 몇 년에 걸쳐 쌓인 것이라 가계에는 큰 영향은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남편이나 나나 이미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다. 

남편은 오히려 더 이상 희망고문을 하지 않아서 좋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기는 남편 하나만 당한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더란다.

그렇지만 설마 하는 마음 그리고 그동안 알아온 세월이 있는데 믿어주고 싶은 마음에 섣불리 입밖에 꺼내지 못했던 거였다.

알게 된 채무자만 다섯 명.

그 돈을 어디에 썼을까. 그 사이에도 계속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던데. 그럼 아예 안 갚을 생각으로 빌려달라고 했던 걸까.


남편은 그동안 너무나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왜 자신에게 몇 년간이나 거짓말을 했는지가 궁금하다고 한다. 그저 그 이유를 꼭 물어보고 싶단다.

나는 그 이유가 뭐가 중요하냐며 그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일 거라고 했다.

돈을 못 받은 것보다는 믿었던 사람을 잃은 것 같아 남편은 상심했다.


거짓말의 이유가 궁금하다는 남편이 꼭 헤어진 연인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 같았다.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나를 정말 사랑한 건 맞는지 궁금해하는 그 마음.

그러나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떤 답을 들은들 마음이 편안할까.


거짓말이 다 밝혀진 이 시점에도 남편은 그 상대에게 본인이 다 알고 있노라고 밝히지 못했다.

일단은 먼저 본인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가 괜히 나한테 미안한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우리 마누라 명품 가방 하나 사줄라고 그랬는데 이렇게 돼버렸네."


누가 언제 그런 거 사달라고 했나.

그 돈이야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데 이렇게 된 걸 어쩌겠나.

그저 남편의 마음이 잘 아물길 바랄 뿐이다.


늘 물건을 '사는 것'이 좋은 딸이 말했다.

"엄마, 나도 아이폰 갖고 싶어요."

"응, 아빠가 사기를 당해서 돈이 없어."

"아이패드도 갖고 싶어요."

"응, 아빠가 사기를 당해서 돈이 없어."

"엄마, 수영장...엄마, 놀이동산...."

"응, 아빠가 사기를 당해서 돈이 없어."


잘됐다. 한동안 이 핑계를 잘 써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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