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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Nov 29. 2023

김영하 작가님, 왜 여기 계세요?

매주 화요일.

우리 아파트의 분리수거일이다.

예전 빌라에 살 때는 일주일에 세 번씩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했는데 아파트로 이사오니 일주일에 한 번만 내놓을 수 있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일주일 딱 한 번이니 이날은 매우 중요하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일주일간의 분리수거 물품을 들고 쪼르르 수거장으로 내려간다.

한 손으로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한 편으로는 폐지더미에 눈이 간다.

분리수거가 끝나면 아예 폐지더미에 슬쩍 손을 넣어 뒤적여 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쓸만한 책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가끔 멀쩡한 책이 나오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저거 너무 깨끗한데 누가 한번 더 보고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보면 한두 권씩 멀쩡한 책을 주워오기도 한다.

아예 책을 버리러 나온 주민을 만나면 한두 권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몇 권 얻어오기도 한다.

왜 그렇게 다른 건 안 아까운데 책을 버리는 건 아까운지.


얼마 전에는 김영하 작가'여행의 이유'가 폐지 더미에 있길래 집으로 가져왔다. 책도 멀쩡했다. 이렇게 멀쩡한 책을 버리는 건 정말로 자원 낭비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 그것도 내가 아직 읽기 전의 책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으로 모셔와야지.

심지어 작가님 사진이 있는 띠지도 붙어 있어서 혹여나 비라도 맞을까 조심조심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을 때는 각종 영어책들을 주워오기도 했다.

ORT 시리즈는 심지어 책과 시디가 함께 있었고, 로알드 달 원서들은 비닐에 쌓여 있었다.

매직트리 하우스, AtoZ미스터리 같은 것들은 단어 뜻이 군데군데 적혀있긴 했지만 한 번씩 읽어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어서 주워왔다. 심지어 시리즈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권도 빠짐없이 있었다. 이렇게 꼼꼼하게 버려주시는데 데려오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한글책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구덩이의 원작 'Holes'가 있어서 데려왔다. 책 표지가 좀 찢어져 있었지만 이 책은 내가 원서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자꾸 이렇게 한 권, 두 권씩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니 분리수거장에 갈 때마다 이번엔 어떤 책이 있으려나 설레기까지 할 정도다.

그런데, 이제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 책장이 넘쳐난다.

한 번만 보고 버리겠다던 책들은 쉬이 버려지지 않고 책장 속을 비집고 들어앉아 엉덩이를 들 줄을 모른다.

안 그래도 정리를 못하는데 버리러 나갔다가 버린 물건까지 주워오니 우리 집이 쓰레기장인지 쓰레기장이 우리 집인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책장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

내 몸에도 필요하지만 우리 집 책장에도 필요한 다이어트.

지금부터 시작!


김영하 작가님,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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