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영어? 나도 그거 해볼래.

엄마만 불 붙으면 안 됩니다.

by 트윈플레임

스파크가 튀는 그 순간.

특별한 이유도 없고 심각한 고민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열정이 불붙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엄마표 영어는 다른 것들과 다르게 스파크의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2020년 11월의 어느 날 KTX 안이었다.

나는 어느 엄마가 쓴 자녀 영어학습법 책을 읽고 있었고 갑자기 내 가슴 위에는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첫째 녀석은 이제 초3.

책에 따르면 보통 초1부터는 시작하는데 우리 아이는 이제 곧 4학년인데. 이미 늦은 걸까.

집에서 책과 영상으로만 공부해도 원어민 같이 영어를 할 수 있다니.


나는 왜 지금까지 주야장천 한국어로 된 신비아파트나 브레드 이발소만 보여주고 있었나.

내가 무지해서 애를 망치고 있었구나.

대단한 아이들과 엄마들의 예를 읽고서 느낀 자괴감과 불안감.




원래 한다고 하면 실행력만큼은 나를 따라올 자 누구인가.

내친김에 엄마표 영어 관련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인플루언서들도 수십 명 다 팔로우했다.

유료 강의도 듣고 오픈 채팅방에도 들어갔다.


하루에 3시간 영어를 해야 한단다.

집중듣기, 흘려듣기를 해야 한단다.

동영상은 무조건 영어로 보라고 한다.

그래, 일단 해보자.


근데 스파크가 튄 건 나일뿐 애들이 아니다.

맨날 보던 유튜브를 영어로 보라니 뭔 소린가 한다.

알지도 못하는 영어책을 보라니 졸음만 몰려온다.

영어학원은 절대로 그만둘 수가 없다고 한다.


계속 타협이 늘어간다.

그래, 학원이 그렇게 좋다면 계속 다녀라. (도대체 뭐가 좋은 거지?)

책도 읽고 싶은 대로 봐라. (읽어만 줘도 감사하다.)

기왕 게임을 할 거면 영어로 해라. (귀라도 뚫리겠지.)


엄마가 일하면서 영어를 쓰는 걸 볼 테니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

자기들도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는 다 하게 되겠지.

나조차도 일하면서 살림하랴 애 키우랴 힘든데 적당히 학원 도움도 받아야 되지 않겠어.

나 스스로도 점점 이유가 늘어간다.

이렇게 슬금슬금 엄마표 영어는 멀어져만 간다.


왜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가 하라는 대로 잘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우리 집은 안되는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적어도 3개월은 넘게 했다는 거.

아, 나 엄청 노력했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어영부영 1년 정도 노력했으니 이 정도면 나의 스파크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일이 아닌가.

동생한테 비밀 얘기를 안 들키기 위해 나한테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아이.

그럼 됐다. 나는 니 나이 때 알파벳도 몰랐다.


"엄마표 영어를 아세요?"

"네, 제가 아주 조금 알아요. 한 3개월치 정도?"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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