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한국 토박이, 미국박사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 글이 "미국박사! 누구나 할 수 있다!" 따위의 선동글이 되지 않길 바라며, 솔직한 객관안을 끼고 직접 경험한 미국 박사유학 도전기를 그대로 뇌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네가 뭔데 글을 쓰는지, 그 의심의 장벽을 무너뜨릴 의무가 제게 있는 것 같으니 짧게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말씀드려 보도록 할게요.
저는 한국에서 유초중고대 대학원을 나왔고 해외여행은 싫어합니다. 미국엔 친척분이 살고 계셔서 깜깜한 초등학생 때 두 달 동안 방문해 본 이력이 있고요. 조기유학 같은 건 누릴 여유가 없었다만 운 좋게 공부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격을 갖게 돼서 흥미를 갖고 이런저런 공부들은 열심히 했답니다. 이러한 성장 이력을 가진 사람은 훌륭한 대학원생으로 자라나기 마련인데요, 제가 바로 그 훌륭한 대학원생입니다.
도비로 일컬어지기 마련이며 주변사람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수집하기 쉬운 아주 보통의 원생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다만 저는 대학원 특유의 '공부로 굴파기'를 즐기는 사람이었고 유달리 인복이 좋아 두 번은 못 만날 교수님, 선배님들과 행복한 한국 석사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원생라이프도 언젠가 풀 수 있으면 좋겠네요. 브런치 보고 있나?
여하튼 석사생활을 마치고 저는 박사 유학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개인적인 상황들이 겹쳐 저는 미국에서 박사공부를 이어나가기를 택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학교 한 군데에서만 합격통보를 받아 재고 따질 것 없이 이삿짐을 쌌답니다.
대학원을 고를 때는 사실 typical Korean처럼 대학 순위를 꽤 따졌다마는, 합격하고 나니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더이다. 제가 박사준비를 꽤나 꼼꼼하고 빡세게 했는데요, 이것도 나중에 박사지원유랑기로 풀어보도록 할게요. 왜 유랑기냐면 진짜 유랑했거든요. 박사준비한다고 1년 반을 백수로 지냈답니다. 제가 울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아닙니다 저는 의연했어요. 훌쩍.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박사 유학을 떠나 미국 제 집에서 지낸 지 4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포 하자면, 저는 벌써 브런치에 글 쓸 생각을 할 정도로 낯선 이곳에 완벽히 스며들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일단 교환학생도 안 가봤는데 유학은 어떻게 가나 걱정되시는 분들 안심하고 글 읽으십시오. 뭐 쓰다가 <절망 편> 이런 거 쓰게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죠 그죠? 여기도 사람 사는 데니까요. 여튼
첫째 날은 무서웠고 힘들었으며, 둘째 날은 기가 죽고 서러웠고, 셋째 날은 자신감이 차올랐으며, 넷째 날이 되는 오늘은 점점 미국이 한국보다 좋다고 느끼고 있답니다. 지금은 글을 쓰며 TV로 트와일라잇 보고 있는데 새삼 미국 십 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네요.
저는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입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운이 좋아야 하고, 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행운이 따르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들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대체로 친절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노력에 비해 과분한 행운을 매일 마주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미국에서 누리고 있는 행복감 또한 제 능력이 아닌 행운이 따른 결과인 부분이 많다만, 객관안을 가지고 필요하다면 각주까지 달아가며 설명을 드려볼 테니 일단 믿고 잡숴보세요.
일단 한국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던 날, 24시간 동안 누운 적이 없었던... 이민가방 옮기며 중량을 올려쳐도 되겠다 본의 아니게 깨달았던... 첫째 날 기억으로 넘어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