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랑 마지막 3일 (2)

by 열음

아무래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아 글을 쓰기 망설여지는 것 같다. 기록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릴테니까 용기를 내어 다시 마주한다.


2025년 2월 12일.

할머니는 잘 버텨줬다.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지만 누워있는 몸에서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다. 임종면회실이라 불리는 곳에서 우리는 한 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산소포화도가 떨어질까, 심박수가 낮아질까, 갑자기 영영 잠에 들어버리는 건 아닐까싶어 할머니의 얼굴과 기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날 할머니가 있던 방에 다른 환자가 입원했다. 젊은 여성분이었다. 엄마가 지나가다 보호자를 봤는데 아는 분이라고 했다. 오래 전 초등학교 동창이라나. 그 분은 동생을 입원시킨거였다.

보호자들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그 곳에서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나와 남편은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밤새 할머니를 바라볼 생각을 하고 있었고, 엄마의 동창분은 눈물을 참으며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넣고 있었다.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무슨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


호주에 가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할머니가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 빨리 와야겠다고. 목구멍까지 '그러게 호주를 왜 갔어. 지금 그렇게 놀러가는 게 급하니. 할머니랑 마지막 시간도 못 보내고 이게 뭐야.'라는 말이 차올랐지만 꾹꾹 눌러담았다.


할머니는 말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진통제를 달고, 영양제를 달고. 나와 남편, 엄마는 밤새 돌아가며 할머니를 지켜봤다. 할머니는 아무 반응도 없었지만 손을 잡기도 했다. 괜히 혼자 드라마 주인공처럼 할머니에게 중얼중얼 하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다 할머니가 보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기도, 눈이 간지러워 비비는 척을 했다. 그 와중에도 잠이 오더라. 잠이 오는 내가 미웠다. 그 와중에 배가 고프기도 한, 씻고 싶은 내가 싫었다.


2025년 2월 13일.

아침 회진을 돌 때, 아무래도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영양 수액을 없애기로 했다. 이렇게 생명 연장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할머니가 편안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힘든 일은 다 잊어버리게 해주세요. 좋은 기억만 가져가게 해주세요. 제가 잘못했던 일, 서운하게 했던 일들 모두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없애주세요. 제발.


갑자기 병원이 분주해졌다. 간호사가 뛰어다니고, 보호자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어제 들어온 엄마 동창의 동생인 환자가 심정지가 온 것이었다. 직접 배변을 하고 싶다고 화장실에 갔다가 못 일어났다고 했다. 매년 배우던 CPR 현장을 처음 봤다. 아, 이렇게 끔찍한거구나. 한참을 소란스럽더니 울음소리만 복도가 떠나가라 들렸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 광경을 보고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비교하면 안되지만, 할머니는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줬다고. 이제 할머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속으로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할머니 걱정 마. 엄마 걱정되는거면 괜찮아. 내가 잘 챙길테니까 이제 할머니 편안해져도 돼.


제대로 된 밥을 먹은 게 1달 정도. 물도 섭취하지 못한지 일주일이 되어가는데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할머니는 약한 산소 콧줄과 진통제를 달고 있었다. 그마저도 없으면 고통이 짙어질 수 있다고 했다. 처음 영양 수액을 없앴을 때 우리는 바로 할머니가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어느때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정말 평생의 고단함에 잠을 몰아 자는 것 같았다.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데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서 엄마와 나는 병원 샤워실에서 돌아가며 씻었다. 막내 동생에게 전화해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러 대전으로 오라고 했다.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또 한참을 할머니 옆에서 조잘거렸다.


저녁 시간이 다시 돌아왔고, 치킨을 시켜 든든하게 먹었다. 돌아가며 쪽잠을 잤다. 할머니의 손 끝과 발 끝이 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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