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이별을 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꽤나 강렬한 인상을 주고 떠났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상처를 받은 쪽은 나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자책하게 되는 쪽도 나였다. 죄책감에 허덕이던 날들이었다. 그 마음이 서서히 옅어져 갈 때쯤, 비로소 자위(自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정리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서랍에 가둬두었던 이 글을 꺼내 이제 마침표를 찍어보려 한다.
그를 만난 건 전 직장에서였다. 그는 옆 팀에 새로 들어온 4살 연하의 신입이었고 오며 가며 마주치는 것 말고는 접점이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내 인생에 절대 들어올 리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그가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그는 말을 건네왔고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틈틈이 연락을 보내왔다. 1년 동안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했고 단 한 번도 따로 만남을 가진 일은 없었다.
그런 그를 만나게 된 데는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심심했다. 내가 연락하면 지금 당장 나와줄 수 있는 사람 그때, 그 친구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그에게 선톡을 보냈고 그날 그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로 인해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날을 이후로 만남은 자연스러워졌고 우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두 달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사랑을 했다. 강렬했다. 어느 것도 따지지 않고 그 시간에 충실했다. 행복했다. 이성보다 마음이 앞섰다. 그것이 좋았다. 서른 살에 다시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더더욱이 그 대상이 이 친구가 될 것이란 것도. 가볍게 시작했지만 그를 만나며 마음에 무게를 더했다. 결국 쉽게 타오르고 빨리 식어버린 그저 그런 뻔한 관계로 끝이 나버렸지만.
전에 어느 모 방송에서 한 연애 칼럼니스트가 했던 말 중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증거는 함께 있을 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란 말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와의 만남을 통해 마주한 건 못난 내 모습이었다. 내가 이토록 별로인 사람이었다는 걸, 그 사람이 깨닫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이 썩- 괜찮은 사람은 아니긴 했다. 그의 사소한 거짓말들과 무심하게 던진 말들이 나를 불안하게 했으니까. 신뢰없이 감정만 넘쳐 흐르는 이 사랑이 점점 두려워졌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나였지만 그와 헤어진 이후 지난날 내가 뱉은 모든 말에 후회했고 후회하면 할수록 그리움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원나잇을 즐겨한다 했다. 그를 다시 붙잡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이외에도 여러 방식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치기 어린 행동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마음이 아팠던 건 내가 그를 처음에 그렇게 대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돼버렸다. 만나는 동안 그를 사랑해주면 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가 상처받았을 거라 생각 못했다. 그 정도로 어리석었다. 그의 날 선 말과 행동보다 지난날의 내 모습에 실망했고 부끄러움에 괴로웠다.내가 받은 상처보다 그 사람이 나로 인해 받았을 상처가 날 더 아프게 했다.
원나잇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와 여러 밤을 보내며 많은 감정이 휘몰아쳐 갔다.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어쩔 수 없지만, 그에게 꼭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자존심 때문에 이 말을 끝끝내 전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을지도 모르니 여기에 끄적여본다.
잠깐이지만 사랑해줘서 고맙고, 미숙했던 내 행동들 때문에 사랑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뒤늦게 깨달아서 많이 미안해. 그럼 안녕-.
사랑하지 않으면 마음 아플 일도 없다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없다는 건, 외로운 일이니까. 이래나 저래나 외로운 거 다시 사랑을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