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8. 못다 한 실습- 화장실!, 그리고 마지막
우리 직업학교는 본원과 분원, 이렇게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는 데, 나는 본원도 아니고 분원도 아닌 정말 덩그러니, 게다가 교육부 주관이 아니라 노동부 주관으로 되어 있는 타일, 미장 학교였는 데, 본원과 분원에서 떨어져 나온 건, 아무래도 작업의 특성상이 아닌가 어렴풋이 짐작만 한다.
옥상 실습은 본원에서 이루어졌고, 대망의 두 번째 실습은 분원에서 하기로 돼있었다.
그때가 12월 초순.
나는 정말로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창하게 무언갈 이루기 위해서 간 곳이 아니라, 단지 살면서 언젠가는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기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간 곳이었기에, 이제 나는 슬슬 진짜 밥벌이를 찾아야 했고, 타일 같은 경우에는 여자인 나를 제대로 써줄 리 만무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겨울이라는 특성상 다른 공사 현장이 거의 다 쉬기에, 바닥 나는 통장 잔고를 그냥 보기만 하기에는 나의 배고픔이 엄청 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분원의 실습을 하기 전, 친한 동생에게서 이번에 오픈한 중화요리 술집을 소개받았고, 나는 그곳에서 크리스마스 전인 22일부터 일을 하기로 말을 해둔 상태였기에, 선생님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마지막 실습에 임하기로 했다.
나의 사정을 이해해주신 덕분에, 나는 마지막 실습장소인 화장실을 경험하게 되었는 데, 그때 생각나는 건, 너무 추웠고, 습했고, 그 꽉 막히고 좁은 화장실을 두 명이서 열심히 붙여 나갔다는 정도?
나는 거의 시다 역할을 하고, 선배가 먼저 타일을 붙여 나가기 시작했는 데, 타일은 거의 붙여진 곳 위에 다시 붙이는 덮방을 한다. 새 타일이라고 기존에 있던 타일을 모두 걷어버리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는 법이니, 원래 모두 다 타일 위에 새로운 타일을 덮고는 한다.
우리도 덮방을 시작했는 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거였다.
거의 모든 화장실과 욕실엔 타일이 깔리는 데, 어떻게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실습이 진짜 실전 경험에 좋은 실습이었는 데, 나는 15일을 꼬박 타일을 붙이고,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한 체, 자릴 떠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남은 선배님들과 선생님들께서 사진을 단톡에 올려주시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계속해서 진행 상황을 말씀해주신 덕분인지, 마지막까지 함께 하진 못했어도, 나는 끝까지 마무리를 한 기분이었다.
마치 마라톤을 6개월 동안 내내 한 기분이랄까?
직업학교에서 미장과 타일을 배우면서 나는 나의 삶을,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맛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나 스스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낸 것이 스스로도 너무나도 대견하고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흔히 막일이라고 불리는 막노동을 제 발로 찾아가 경험하고 보니,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은 일이라는 점도 꽤 큰 깨달음이었다.
진짜로 언젠가는 끝날 것 같은, 그리고 끝나고야 마는 길고 긴 마라톤을 주변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이 함께 달려주셔서 끝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왜 마라톤 이야기를 하냐면, 학원에 다닐 때 기억나는 한 분의 선생님이 다시 계셔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서 35년 근속을 하시고, 퇴직을 하신 선생님 한분이 계셨다. 외형적으로는 막걸리 좋아하시는 국사 선생님 스타일 이셨는 데, 실제로는 자동차 만드는 회사에서 청춘을 보내시면서 결혼도 하시고, 자식들도 낳으셨던 분이었다.
나는 종종 마라톤이 내 삶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라고 말하는 데, 그 말을 지나가다 들으신 선생님께서 나에게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몇 장을 보여주셨다. 사진은 한국, 프랑스, 이집트 같은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 헐... 선생님!! 마라톤을 이렇게 하셨다고요?”
내 물음에 선생님께서는 매년 60이 넘은 나이에도 늘 마라톤 대회가 있는 곳이면 부리나케 가셔서 참가를 하신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이 너무 멋져 보여서, 눈에 빛을 내며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마지막엔 다음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 함께 나가자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왜 마라톤을 하시게 된 이유를 나는 듣지 못했다.
다만 마라톤을 왜 해야 하는지, 대회는 어디서든 열리고, 찾아보면 많다라든지, 계절에 상관없이 달릴 수 있다라든지.. 하는 것들은 들을 수 있었는 데, 나중에야 선생님께서 진짜로 마라톤을 하시 게 된 이유를 나는 건너서 선생님의 절친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선생님에게는 딸과 아들, 이렇게 두 명의 자식이 계셨는 데, 모두 1년 간격으로 죽었다는 말과 함께 두 명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선생님께서는 마라톤을 시작하셨는데, 그러는 어느 날, 사막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를 하시게 된 선생님께서, 그 덥고, 마를 듯이 기분 나쁜 온도를 가진 그곳에서 얼마쯤 달리셨을 때의 일이란다. 그곳에서 주저앉고 싶고, 그만 하고 싶은데, 마라톤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에서 물을 나눠주는 데, 거의 그 앞에 왔을 때, 물을 주던 진행 요원의 모습이 딸로 보였단다.
딸이 지친 아버지에게 물을 주면서 얼른 달리라고 말하고 있었고, 또 한참을 그렇게 뒤돌아 보면서 달리던 선생님의 앞에 아들이 나타나 함께 달리고 있었다고...
둘은 모두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손에서 놨지만, 그 아득한 사막에서 지치고 힘든 선생님을 향해서 자신들은 하지 못했던 구원의 손길을 아버지인 선생님께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은 그 뒤로도 마라톤을 항상 하시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의 친구분께서 해주셨다.
자신의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 혹은 죽은 자식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달리면서 선생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실지는 이제는 함께 달리지 못했어도 알 것 같다.
그 슬픔에 내가 끼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건 본인만이 간직해야 할 아주 아름다운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시에 어떻게 해줄 수 없었던 그 슬픔을, 그렇게 라도 환영을 봐서라도 자식을 돌리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언젠가는 선생님과 함께 꼭 마라톤에 나가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리다 보면,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볼 수 없었던 것들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일 테니까.
계절이 바뀌는 그 사이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선생님께 너무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런 슬픔을 간직하셨으면서도 항상 나를 응원해 주시고, 언젠가는 함께 달리자고 까지 말씀해주신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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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장과 타일반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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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6개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응원과 축하, 칭찬을 받았다.
그 6개월간의 경험이 평생에 있을 나의 불운과 불행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행운 포인트와 행복 포인트를 단단하고 탄탄하게 쌓아 올려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문득문득한다.
34년 동안 만났던 그 어떤 순간들의 사람들보다, 단지 6개월을 함께 했던 직업학교에서의 만남들이 나의 머리와 심장에 박혀 있는 걸 보면, 나는 몸뚱이만 컸지, 아직은 다 자라지 못한 아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경험들로 인해서, 조금은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지금 다시 하라면, 조금의 연습이 필요하지만, 나는 금방 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몸으로 익힌 건, 머리로 외운 것보다 더 오랫동안 남는다.
경험이라는 걸 많이 해보라는 것도, 머리보다는 몸으로 경험해 보면, 어색한 것도 익숙해지고, 이상한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경험은, 몸으로 익힌 어떤 포인트 들은 또한 감정을 다스리는 데 아주 좋다.
막연히 슬프거나, 아프거나, 지치거나, 마음이 몽글몽글 해져서 어딘가로 가고 싶거나 할 때, 감성과 감정이 앞서서, 이성을 해치려 할 때, 나는 일어나서 찬물을 한잔 마시고,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고는 한다.
6개월 동안 직업학교에서 마셨던 믹스커피를 마시면, 그때의 기억들이 아주 조금씩 되살아나서, 집중이 아주 잘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고, 헛된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는 다.
지금도 나는 그때 마셨던 믹스커피를 자주 마신다.
아메리카노 나 드립 커피보다 나에게는 이 믹스커피 한잔이 주는 힘이 더 크고 강력한 작용을 해서 머릿속을 밝게 해 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모양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힘든 일을 맞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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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만 힘든 일은 어디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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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간에,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존재 이기에, 나만 힘들고, 나만 아프고, 나만 붕 뜬 것 같은 기분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면 다른 루틴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게 정신과 건강에 이롭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하고 싶지 않을 때 사람은 변명을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다 할 수 있는 데, 어떻게 핑계와 변명을 대고 하지 않으려 하는 거 같다.
자신의 능력을 거기에 맞추고, 한정하고, 한계를 두면 우리는 딱 그만큼, 자신이 만들어 놓거나 남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그대로 짜인 체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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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선을, 각을, 모양을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나이이건 간에 어떻게 해서든 간에 뭐든 할 수 있다.
올림픽이 끝나면 패럴림픽이 시작한다.
이번에 나는 패럴림픽을 처음으로 보았는 데, 달리기를 보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수들이 각자의 러닝 메이트들과 함께 달리는 모습을 보니,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아름답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당신에게도 러닝 메이트가 필요할 적이면, 내가 되어 주고 싶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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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꺼이 멀리 있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타인인, 아무것도 모르는 무명인인 당신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함께 달리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