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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망 Jul 03. 2021

우리의 일기장은 안다

문장이 되어야만 했던 시간도 있더라

누군가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물었을 때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린 기억이 있다.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지, 무작정 시작했는데 아직 멈추질 못한 거야. 그렇게 말해 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돌이켜 보자면 나의 시답잖은 '기록 습관'은 초등학교에서 시를 배우면서 시작됐다. 그러니 나와 글을 분리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글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의 기록은 공책 속에 차곡차곡 담겼고, 쓰거나 읽는 과정에서 나는 한층 더 자랐다. 막연하고 조금은 무책임하게 쓰이는 단어, 성장. 물리적인 것 외에 무엇이 자랐을지, 내게 글은 어떤 의미인지 고민했다. 그 질문 덕분에 내 지난날을 돌아봤고, 어느 정도 이유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저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정리가 필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점은 같을 것이다. 나는 유난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글을 썼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종이 위에 걱정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 걱정이 생각보다 별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 한다. 생각을 문장으로 바꾸는 시간 속에서 고민은 어느 정도 정리된다. 또한, 잠시 스쳤다가 사라지는 생각과는 달리 글은 내가 꺼내보는 한 계속해서 남아 영향을 끼치곤 한다. 그 사실을 어느 순간 이해하고부터 행위에 기대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글로 써 내려가도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일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무척이나 깊은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때엔 내가 이해되지 않아서 무엇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기대 왔던 곳마저 더는 힘이 되어주지 못하면 내가 알고 있던 세계를 재배치해야 하는 막막함이 찾아온다. 그저 일기장에 조금도 정제되지 않은 우울만을 기록했던 것 같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향한 집착과 원망 때문에 늘 불안하고 우울했으며, 해야 하는 일들을 외면하기만 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더 미룰 수 없게 되면 두려움에 도망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안녕하지 않던 나날 속에서 나를 자각하는 일이 가장 힘들. 나는 나에게 이상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이었다. 다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나만 제자리네. 모두가 미래를 생각할 때 나는 과거에 갇혀 있네. 나는 쿨하지 못할까. 그만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질 못할까. 사랑하는 이가 우울해하면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며 안아줄 거면서 나에게는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우울이 차츰 잦아들 무렵부터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나의 과거에 집중했다. 그 당시의 감정을 구체적인 단어로 정의 내리고, 나의 크고 작은 사건을 시간 순으로 짚어보고, 원인과 결과로 나누어 늘어놓았다.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찾아보고 평을 읽거나 썼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그 시기의 나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상한 게 아니라 조금 아팠던 것이란 걸,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란 걸 알게 됐다.


그걸 다 지나고 나서야 안다.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이제야 모든 것이 또렷하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걸음씩 옮긴 순간들이 애틋해서 나는 나의 일기를 좋아한다. 하나의 시기를 통과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치 전과는 다른 시간을 선물 받은 것처럼 설렌다. 이제는 밖으로 눈을 돌려 소소한 글을 쓴다. 어지러이 얽힌 이야기를 해독하고 결론 내리기 위해, 새로운 희망과 가치관, 감정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글은 내게 그러한 것들을 해낸다. 이젠 그 사실을 이전보다 더욱 깊은 마음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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