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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망 Jul 18. 2021

[영화]가끔은 나와 작별하고 싶어

<크루엘라>를 관람하고, 문득 든 짧은 생각

가끔 이전의 나에게 미련 없는 안녕을 전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지나치게 걱정하다가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는 않다. 조금은 무례하고 이기적 일지 몰라도, 큰 꿈을 꿀 줄 아는 크루엘라가 매력 있게 느껴졌던 건 나에게도 이런 욕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당에게 손 놓고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은 매력 없다. 누군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줄 때까지 피나는 노력을 하는 이야기도 고루하기만 하다. 크루엘라 드 빌은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복수를 펼치고, 원하는 것을 세상에 소리칠 줄 아는 캐릭터다.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딘가 유난스러운 아이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맞서 싸웠다. 그 당찬 성격 덕분에 학교에서도 퇴학당하고, 엄마를 잃은 후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함께 골목 생활을 시작한다. 그 이후 성인이 된 그녀는 런던 패션계를 주름잡는 남작 부인의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우여곡절 속에 여러 가지 비밀을 알게 되면서, 감춰왔던 자신을 드러내고 패션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죄책감과 꿈을 향한 미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능력은 있었지만, 처음 백화점에 입사하게 된 것도, 남작 부인과 함께 일하게 된 것도 수동적으로 얻게 된 결실이었다. 그녀는 그 시절의 자신을 ‘에스텔라’라고 불렀다. 엄마와 약속했던 대로, 사고 치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던 자신을 말이다.



그녀는 두 가지 진실을 알게 되며 변한다. 첫 번째는 그녀의 엄마를 남작 부인이 일부러 죽였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녀의 친엄마가 사실 남작 부인이라는 것이었다. 죄책감은 분노로 변하고 그녀는 복수를 시작한다. 크루엘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에스텔라의 장례를 치르며 그녀는 말한다. 잘 가, 에스텔라. 나와의 가장 쿨한 이별이 아닐까 생각했다. 예전의 자신을 부정하거나 내가 바보 같았다며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절’로서 인정하고 보내주는 것. 그녀를 오랜 시간 괴롭혔을 죄책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듯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장면이 제법 좋았다.


크루엘라는 이상한 악역이다. 용서보다 복수의 가치를 알 뿐, 자신보다 더한 악과 싸운다. 좋은 점만큼 별로인 점도 꽤나 많은 캐릭터지만 분명한 건 그녀의 매력이고, 내가 하고 싶으나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는 점에서 내게는 또 한 명의 히어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처럼 더는 필요 없는 나를 묻고 작별 인사를 건네며, 그간 다져온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꿈을 꾼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나를 최우선으로 두고 사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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