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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ie Sep 08. 2022

내가 보드게임을 하려고 4인 가족을 만들었구나

좋아하면 하게 되고 하다보면 사게 된다

보드게임을 처음 접한건 2002년 겨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보드게임'이라는 용어와 이 용어가 지칭하는 보드게임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접했다고 해야겠다. 부루마불, 훌라, 체스, 화투 등이 80년대생인 나에게 익숙한 K-보드게임들이었다면 신문물인 이 '보드게임'들은 이전에 어디서도 본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새로운 놀이였다. 


심지어 그런 게임들 수십가지가 다양히 구비되어 있고, 여럿이 둘러 앉아 게임에 집중하기에 최적화된 높이와 넓이로 제작된 보드게임 전용 테이블과 의자가 세팅되어 있으며, (어떤 곳은 작은 컴포넌트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테이블 사방에 작은 턱이 세워져 있거나, 컴포넌트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테이블매트가 전체적으로 깔려 있기도 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음료를 주문할수도 있는데다 그곳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게임을 설명할 수 있는 전문 보드게임 알바까지 대기하고 있는 '보드게임까페'라는 곳은 정말이지 문화충격 그 자체였다. 


그 새로움과 다채로움, 보드판 위에서 펼쳐지는 난잡하고 궁색한 전략과 회피, 나는 망했지만 너도 망해라라는 식의 겐세이와 다신 안 볼것도 아닌데 태연하게 입만 열면 나오는 야바위와 거짓부렁의 세계에 나는 빠르게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대부분 보드게임들이 플레이 인원이 많을수록 더 재밌는 게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최고로 매력적이었다. 둘이서도 할 수는 있지만 네명, 다섯명이 모이면 훨씬 더 재밌다니!! 


심지어 건전하기까지 하다. 다 큰 성인들이 여럿 둘러앉아 복숭아 아이스티나 딸기쥬스를 마시며 온 힘을 다해 몸과 머리를 쓰고, 마침내 승리했을 때 팡팡 터지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건강한 황홀경에 도취되는 오락 문화가 또 어디에 있겠냐고. 국가적 차원에서 보드게임을 후원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아무튼, 그 해 겨울을 보내고 2003년 대학 새내기가 되어 교내 비공식 동아리인 보드게임동호회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경로로 아는 사람이 다수였던 그 동호회는 정말이지 보드게임을 열심히 하는 동호회였다. 가방에도, 차에도 보드게임을 가지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테이블만 있으면 게임판을 까는 덕후들과 함께한 내 대학 1학년은 학점과 맞바꾸어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피곤하고 진절머리나는 추억들로 하루하루 채워져갔다. 당시 싸이월드 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발표 모임이나 과제를 하는 장소인 학생회관 2층 까페나, 시내의 칵테일바 등지에서 테이블 가득 보드게임을 펼쳐놓고 심취해있는 동호인들의 사진이 다수 발견된다. 


그즈음 보드게임을 참 열심히 사모았다. 보드게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만원대의 카드게임류가 아니면 기본이 3만원, 비싼건 10만원도 넘었기에 많이는 못 샀다. 열 몇개에서 스무개 조금 안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중 그때 판본으로 아직까지 우리집에 남아있는 건 푸에르토리코와 와이어트어프, 뱅, 반지의 제왕(2인용) 뿐이다. 달무티와 보난자, 루미큐브는 결혼하고 나서 샀고, 최근에 카탄과 클루, 라(RA)를 구입했다. 졸업할 때 총학오피스에 파티게임 몇개 기증하고 온거 말고도 많았는데 그거 다 어디로 갔니...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경기도 안양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알바를 해야 했던 나는 A4용지 한장 가득 내가 설명 가능한 보드게임들의 목록을 죽 적어서 그걸 들고 근방의 보드게임까페들을 돌며 구직활동을 했다. 그렇게 집이랑 가까운, 범계로데오에 위치한 한 보드게임까페에서 시급 2500원을 받고 알바를 시작했다. 가게엔 내가 모르는 게임도 많았는데 문제는 사장도, 매니저도 아무도 할 줄 몰랐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무튼 박스가 거대하고 구성품도 많고... 아무튼 거대하고 많은데 한번 까면 날밤새기는 기본이라는 등, 진정한 보드게임의 고전이라는 등 수식어는 많은데 할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게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니까, 설명할 줄 아는 사람도 없지만 찾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장식용으로 갖다두는 보드게임들. 주로 박스가 크고 있어보이는, 전쟁 테마의 게임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 알바를 하는 두달동안 딱 한팀만이 그런 진열대 최상단 거대박스 게임에 관심을 보였었다. 

그리고 중간박스 크기의 중급자용 게임들이 대부분의 진열대를 채우고, 가볍고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파티게임류가 나머지다. 


손님이 오면, 우선 인원수와 구성원의 면면을 따져 게임을 추천해준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게임을 가져가는 팀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재밌는거 추천해주세요'라고 하기 때문에 나름 머릿속에 추천 리스트가 있어야 당황하지 않는다. 시작은 보통 가볍고 빠르게. 보드게임방 방문이 완전 처음이다 하면 보드게임 입문의 대명사, 젠가와 할리갈리로 시작을 한다. 몇번 와봤다고 하면 파티게임류로는 달무티나 피트, 로보77, 블로커스 정도를 추천해주고 그 정도는 시시하다 하면 루미큐브나 보난자, 클루, 카탄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손님 측에서 적극적으로 '우정파괴를 원한다'고 어필하면 처음부터 유아블러핑이나 뱅, 블러프, 시타델, 아임더보스 정도까지 분위기 봐서 한번 돌려본다. 사실 그렇게까지 들어가는 팀은 진짜 드물고, 와르르 깔깔 웃을 수 있는 할리갈리류의 게임들을 두세번 돌리고는 즐겁게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 


알바를 하는 동안 딱 한번, '진짜 복잡하고 어려워도 좋으니 두뇌 챌린지가 되는 전략게임'을 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요청한 팀이 있었는데 내가 아는 게임 중 가장 난이도가 높으며 손님의 니즈에 충족하는 유일한 게임이었던 푸에르토리코를 돌려본 적이 있다. 설명을 한번 듣는다고 바로 모든 노하우를 파악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기에 매니저의 허락 하에 거의 두시간동안 그 테이블에 붙박이로 눌러앉았는데, 내가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약간 덕질 영업에 성공한 느낌? ㅎㅎ



눈치를 제대로 못 챙겨서 추천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회사원으로 구성된 팀이었는데, 그들이 7명이라는 사실에만 꽂혀서 회사 안에서의 다이내믹한 인간관계와 상하관계에 대한 이해가 1도 없었던 스무살짜리 알바생이었던 나는 첫 게임으로 달무티를 추천해 버린 것. 계급에 대한 설명 없이 첫 판을 돌리고, 자리를 바꿔 앉은 다음 본격적으로 계급간 갑질을 선동하며 아래 계급에게는 막 대할수록 재미있다며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는데 분위기가 갈수록 뻘쭘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한 판이 끝날때마다 자리를 옮겨앉아야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결국 그 팀은 한시간을 채 못채우고 보드게임방을 나갔다. 


또 한번은 쉬운 카드게임을 시시해하길래 5인 팀에게 보난자를 추천했는데, 그중 한명이 설명하는 내내 자꾸딴짓하고 집중을 안하기에 좀 거슬렸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대놓고 옆에 친구에게 "아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네"하며 날 저격하길래 순간 나도 모르게 "아직도 모르시겠어요?"라고 말해버린 것. 킹받은 손님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지금 뭐라했어요?"라고 바로 응전해왔고 너무 무서웠던 난 "어..저기..잠시만요!!"하고는 카운터로 런한 뒤 매니저에게 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저좀 살려주세요 ㅠㅠ" 했다. 다행히 매니저는 "오빠만 믿어"라며 그 테이블로 가서 여차저차 상황을 정리했고 난 그 팀이 나갈때까지 주방에 틀어박혀 음료제조와 설거지만 죽어라고 했다는 이야기.



여튼 2003년은 보드게임으로 시작해서 보드게임으로 끝난 해였다. 해는 끝났지만 보드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겨울방학간의 알바를 마치고 난 1년 반의 긴 휴학을 했고, 공부하러 간 곳에서 만난 할일없고 무료한 한국인들이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몇 안되는 보드게임에 열광하는 것을 (왜냐면 우리는 심심했으니까...) 보고는 이걸로는 부족하다 싶어 미국 본토에서 보드게임 몇 개를 선박으로 배송받아 그들과 밤을 새우며 "나랑 거래하자!" 또는 "내가 보스다!"를 외치며 스물 한 살의 여름을 찰지게 보냈다. 그 보드게임들은 단기선교로 떠난 캄보디아까지 고이 모셔가서 말 그대로 카드가 닳을 지경으로 플레이했고, 그들은 보드게임의 본분을 다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말이지 그게 어디로 갔는지 미스테리다)


학교에 돌아온 건 2005년 가을이었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보드게임동호인들은 군대를 가거나,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하거나 하여 동호회는 어느새 쓸쓸히 사라졌고 그렇게 슬슬 보드게임들은 내 인생에서 존재감이 조금씩 잊혀져갔다. 졸업하기 직전 잠시 몸담았던 총학생회에는, 지난 한 학기동안의 내 만행을 용서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몇몇 인기 보드게임을 회의 테이블에 남겨두고 졸업했다. 총학을 이어서 했던 몇몇 친구들아 혹시 이 글을 본다면, 이후 내 보드게임들의 행방과 쓰임새를 알고 있다면 좀 얘기해주세요 ㅎㅎ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이사를 여러번 다니는 동안, 플레이할 일이 과연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보드게임들을 꼭꼭 챙겨 다녔다. 그러다가 2년전, 식당을 동업자들과 함께 오픈하게 되면서 자연히 4명이 모이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 이거 뭔가 보드게임을 슬슬 풀어도 되는 분위기인 것이지. 오픈 직전 다같이 통영에 1박 2일 여행을 가서 처음으로 보난자를 꺼내봤다. "이게 뭐냐면 말이야..." 하면서 간을 보는데 오호라, 다들 적극적이다. 이거 통한다! 


우리끼리는 물론이고, 첫째 연우가 슬슬 보난자와 루미큐브 정도는 무난하게 대적할 수 있는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카탄까지 섭렵했다. 무려 철광석 재벌로 무역왕이 되어 5인 중에 1등을 했다. 역시 내딸이다. 내가 보드게임 같이 하려고 4인 가족을 만들었나보다.


기세를 몰아 식당의 직원과 알바들에게도 영업을 했다. 다행히 딱히 싫어하는 기색들은 없다! 직원 회식을 하면 2차로 우리집에 와서 다같이 보드게임을 했다. 한번은 내가 루미큐브에 현금을 걸고 하자고 제안했다가 까였다. 얼마 전에는 진주에 있는 보드게임까페에도 다같이 다녀왔다. 나는 성덕이다.



그렇게 다시 보드게임이 일상에 자주 등장하게 되자 자연히 옛날에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게임들을 찾아보게 됐는데, 상당수가 이제는 구할 수 없거나 아니면 가격이 아주 비싸져버린 걸 알게 됐다. 혹은 예전엔 국내 수입사가 있어서 쉽게 살수 있었는데 이제는 해외직구를 해야 하거나. 


그래도 좋은 점 하나는, 아직 구할 수 있는 해외 보드게임들은 대부분 한글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창 보드게임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에는 오히려 한글판은 뭐랄까 좀 무시받았달까...영문 또는 독어판이 좀더 오리지날로 대접받던 느낌? ㅎㅎ 그래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으니 보드까페마다 자체적으로 설명서를 번역하거나 온라인에서 번역본을 공유하거나 했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보드게임까페는 옛날과는 많이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게임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룰이 복잡하거나 긴 설명이 필요한 게임 자체가 없다. 대부분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게임들만 준비되어 있고, 그마저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태블릿을 하나 빌려준다. 거기에 설명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태블릿에 있는 유튜브로 검색해서 보라고 하는데 그럴거면 뭐하러 빌려주나..다들 스마트폰 들고 있는데. 


그리고 1인 1음료 주문은 필수. 이건 사실 옛날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던 것 같다. 보드카페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망한 데는 보드게임의 인기가 급 시들해진 것에 더해서 매출이 너무 빈약해서 그랬을 거다. 다섯명이 한시간을 게임하고 나가면 겨우 만원. 음료는 안시키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또하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이전에는 까페 세팅부터 여기는 '게임에 몰입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 보드까페는 그냥 가볍게 들러서 커피 한잔 하면서 잠시 놀고 나오는 느낌?  보드게임이 더욱 흥하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보드게임이라는 놀이 자체는 우리 사회에 훨씬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모임에서 보드게임을 많이 하고 보드까페가 가볍게 즐기기 좋은 곳이 되었다는 건 보드게임에 대한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진 것일 수도 있다. 



학생 때는 누구든 같이 플레이할 사람을 늘 찾아 다녔는데, 지금은 집에 가만히 있어도 3인플이 가능하다. 연아가 좀더 크면 4인플, 가까이 사는 친구나 한 가족만 꼬드겨도 바로 5~7인플이 가능하다. 이래서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무리를 짓는 것인가. 20대 젊음의 일부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다 바치며 몰입했던 놀이이자 동시에 추억인 보드게임이 마흔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 다시 내 일상에 불쑥 찾아온 것이 기쁘기도, 행복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자 다음은 뭘 플레이해볼까. 늘 하는 말이지만 난 언제나 같이 할 사람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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