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 그리고 팀장이 되면서 직원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대학교 때 의례 대학교에서 많이 하는 선배 특강에서 한 선배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한다.
과연 나는 어떤 유형인가
때는 2012년,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가 말하길,
직원을 그래프에 놓고 X축에는 일에 대한 열정 / Y축에는 일을 잘 수행하는 능력으로 따져보았을 때 총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 열정도 없고 능력도 없는 유형 (고문관 형)
- 열정은 있으나 능력은 부족한 유형 (에너자이져 형)
- 열정은 없으나 능력은 있는 유형 (독고다이 형)
- 열정도 있고 능력도 있는 유형 (엘리트 형)
이 특강은 10년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도 생각이 날 정도로 뇌리에 깊게 박혔었는데 이후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느 유형이었는가를 늘 체크해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팀장이 돼서도 이 그래프는 직원을 파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한다.
(언급할 가치가 없는 고문관 형을 제외하고) 제일 컨트롤하기 좋고 함께 일하며 일의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유형은 당연히 '엘리트 형'이다. 일도 잘하는데 열정도 있으면 퍼포먼스는 기본이며 업무 성과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성만 좋다면,,,) 그리고 이런 엘리트 형은 평균적으로 에너자이져 형에서 출발하곤 한다.
현재까지 4가지 유형을 모두 만나보고, 나 또한 고문관부터 에너자이져, 독고다이, (때로는?) 엘리트 형으로 평가받았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평가를 받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하산 등으로 들어온 인재가 아니라면) 신입사원들은 에너자이져 형이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내 경험상 보통 1-2년 차 정도에 '에너자이져 형'이 어떤 유형으로 성장할지 판가름 나는 것 같다. 말만 하고 '가짜 열정'을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이 독고다이 또는 고문관이 되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마다 성장을 하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엘리트 형으로 성장했었다. 그럼 이들을 성장하고 관리해야 하는 선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뭘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내 밑 사원이 내가 따라오라는 대로 잘 따라오는 사람이길 바랄 수밖에...
다만, 팀장이 되고 나서 에너자이져 형과 엘리트 형을 잘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가진 '열정'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면서 업무 강도 또한 그에 맞추어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때 나도 미치도록 뜨거웠던 그 '열정의 온도'. 그 온도를 잘 다스려주지 못해서 생기는 애로사항, 이를테면 스트레스를 기반으로 한 '번아웃'이나 더 나아가 '퇴사'의 결론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직원보다도 팀장의 역량이라는 사실을 요새 들어 많이 느끼곤 한다.
열정의 온도가 평균보다 뜨거울 경우, 크게 2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 번째 문제는 모두 다 알겠지만 '번아웃'의 발생.
열정의 온도가 높을 경우, 제일 힘든 사람은 '본인'이다. 열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타인도 힘들지만 열정만 높을 경우,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거나 본인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게 번아웃은 지 성질을 본인이 못 이긴 자신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지만 '얜 원래 일 많이 하고 좋아하니까.' 하며 방치하는 주변인 또한 번아웃의 원인이라고 난 단언한다.
이럴 경우, 팀장이나 선배는 이 열정을 줄일 수 있도록 잘 달래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대게는 같이 협업해서 이 직원이 업무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실무를 도와주는 게 제일 좋고, 그것이 안 된다면 말이라도 '너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좀만 쉬엄쉬엄 해.' 등 말로 달래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건대 번아웃가 시작된 계기는 '불안'의 심리가 가장 크지 않을까? 내가 뭘 잘하고 뭘 못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대게는 그걸 모르니 때문에 열정을 불태우면 잘할 거라고 생각한 나머지 본인을 태우는 실수를 범하는 게 번아웃으로 이어지기에 불안을 잠재우는 건 나 자신보다도 선배나 팀장의 역할이지 않나, 난 그렇게 생각한다.
두 번째는 업무 운영의 혼선이다. 대게 열정이 많을 경우, 업무가 계속 추가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점점 힘들어지다 펑크가 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여기서 나는 묻는다. '열정이 많다고 업무를 더 준다?' 그것은 도대체 어떤 기준일까? 일에 대한 욕심과 한 명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다르다. 그리고 그릇의 크기는 개인의 역량을 넘어 본인의 업무 경험 등에 따라 그 크기가 작을 수도, 클 수도 있다. 그 크기를 자기 멋대로 정하고 일을 배분했으면서 그 책임을 온전히 일을 하는 담당자에게 주는 건 적어도 팀장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난 늘 다짐하며 산다.
이럴 땐, 그저 업무 R&R을 짜기 앞서 해당 직원들의 업무 배분이 필수다. 그러기 위해선 직원들의 업무 파악과 업무의 무게감을 무엇보다도 잘 알아야 한다. 업무 보고서에 적은 업무 1줄이 어떠한 무게를 가지는지 알아야만 그 직원이 감당하고 있는 무거운 짐의 무게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다. 그 무게를 모른다? 그럼 과연 그 사람을 팀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열정의 온도가 평균보다 낮을 경우, 발생하는 이슈는 하나뿐인 것 같다.
주변인이 힘들어진다는 것, 특히 팀장이나 선임이 힘들어진다.
업무에 대한 열정이 낮다면 이를 부스팅 할 수 있는 역할과 더불어 업무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게 이끌어야 하는, 이른바 리더십을 발현해야 한다. 제일 좋은 건,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계속 주시하고 적당히 일을 주는 것었다. 때로는 격려, 때로는 테스트를 통해 그 열정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본인 업무에 대해 적당한 책임감을 부여하면 더더욱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더라.
다만 이 방법이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가짜 열정'을 보여주는 이들의 눈속임에 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들의 업무를 쳐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도와주긴 하겠지만, 일단 이건 너의 업무고 네가 해.'라는 적당한 선을 부여하고 거기에 대해 도와줄 부분만 도와주며 끝났을 땐 '그래, 이건 네가 한 업무야.'라고 인정해주는 그 과정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데 효과적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래프에서 무엇인가 하나의 지표를 더 추가하고 싶다는 강한 니즈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이라는 하나의 축.
사원 시절, 나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매우 강하게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내가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건 지금도 유효한 생각이다. 하지만, 요새 와서 드는 생각인데 책임질 수 없는 열정과 업무는 좋지만은 않더라. 결국,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열정과 업무는 더 큰 이슈와 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걸 팀장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벌려놓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기에 나는 사원들에게 늘 책임감을 강조 하곤 한다.
또한 요새 와서 많이 느끼는 건데 열정과 능력이 있다고 책임감을 간과하는 직원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는 사실이다. 틀릴 수는 있다, 틀리는 건 당연한 거다. 우린 인간이고 실수의 동물이니까. 하지만 틀린 것에 대해 최소한 '아차차'하는 마음이 드는 것, 그 게 나는 진짜 '책임감'이지 않나 싶다. 애석하게도 대표, 팀장, 심지어 사원 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틀린 것에 대해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하지만, 팀장인 내가 내 밑 직원들에게 '죄송하다, 제가 틀렸다.'라고 사원들에게 말하고 난 후에야 나는 내 잘못된 판단으로 후에 일어날 수 있는 더 큰 이슈를 방지해줘서 고맙다는 의미있다는 걸, 잠깐의 고개숙임이 쪽팔린 것이 아닌 장기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가 잘났고, 자기가 다 맞았다면 회사에서 이슈가 왜 발생하겠는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아무리 열정과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 같다. 내 업무에 대한 성과만큼 실수에 대해 받아들이는 자세, 그것은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죄송하다고 말하진 않아도, 적어도 '다음에는 이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란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현시대에서 필요한 '책임감'이지 않나 싶다.
오늘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나, 어떤 직원이었는지 생각해본다. 때로는 고문관이 되기도 때로는 엘리트가 되기도 하는 지금, 현재 내 열정의 온도는 과연 얼마나 될까. 적어도 지금은 예전만큼은 그렇게 뜨겁지는 않다고, 그렇다고 춥지만은 않으리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앞으로도 적당한 뜨거움을 가진 열정의 온도를 가지리라고 다짐하면서.